프랑스 역사교육이 제국주의를 미화하는 방식은? La culture francaise

위의 포스터는 프랑스 식민주의 선전을 위한 것이다.
프랑스는 6천만 식민지인들에게 평화와 문명의 번영을 가져다 주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지난 2005년 프랑스 의회는
북아프리카 에서의 프랑스 의 식민지 지배가 긍정적 역할을 했다는 점이,
역사교육에 포함되어야 한다는 것을 규정한, 한 역사 관련법을 통과 시킨 바 있다.



ENTRE MÉMOIRE ET HISTOIRE

기억과 역사 사이에서...

 

역사교과서가 감추고자 하는 것

 

만약 프랑스에서, 식민지 과거에 대한 논쟁이 역사적 금기들을 파괴하는 것일 때에만, 이 논쟁은 성과를 가지게 되는 것이라고, 독일의 한 위대한 일간지가 보도하고 있다.

 

2006 1 19독일 뮌헨 쥐트도이체 차이퉁 보도

 

Ce que cachent les manuels

Si, en France, la polémique sur le passé colonial fait tomber des tabous, elle aura été bénéfique, estime le grand quotidien allemand.

19.01.2006 | Jeanne Rubner | Süddeutsche Zeitung

 

Les enfants aiment les belles images. Elles se gravent immédiatement dans leur cerveau et y restent stockées toute la vie. Vercingétorix, le courageux chef gaulois aux longues tresses dépassant de son casque, Jeanne d’Arc sur le bûcher du martyre, le grand Napoléon saisissant la couronne impériale des mains du pape, ou encore l’héroïque général Lyautey recevant l’hommage des indigènes d’Afrique du Nord. Autant d’images qui ont marqué des générations d’écoliers français dans les années 1950 et 1960. Tous ont appris que Napoléon était un héros, et, si l’on ne cachait peut-être pas que des centaines de milliers d’hommes avaient péri sur les champs de bataille d’Aspern et de Borodino [ces batailles sont plus connues en France sous le nom de batailles d’Essling et de la Moskova], la souffrance de tant de Français s’effaçait devant la gloire nationale. Ils éprouvaient de l’admiration pour les Savorgnan de Brazza et les Lyautey, tout en se disant secrètement qu’il avait bien fallu que viennent les conquérants pour civiliser les terres sauvages de l’Afrique. Plus l’enfant est jeune, plus il absorbe, c’est une autre règle d’or. C’est pourquoi, en France, l’enseignement de l’histoire démarre dès le cours élémentaire. Les enfants de 8 ans digèrent ainsi le passé du pays et s’approprient les images des manuels scolaires. Comment ces générations, qui ont aujourd’hui entre 40 et 50 ans, peuvent-elles avoir une vision relativement critique de l’expansionnisme français ?


어린이들은 좋은 그림들을 좋아하기 마련이다. 이 이미지들은 즉시 그들의 뇌에 각인되고, 평생동안 그들의 머리속에 저장되게 된다. 이렇게, 베르킨게토릭스, 투구밖으로 비죽나온 길게 따은 머리모양을 가진 용맹한 갈리아족 족장, 희생양으로 화형을 당한 성녀 잔다르크, 위대한 나폴레옹은 교황의 손에서 황제의 관을 빼앗아 스스로 썼고, 그리고 전설적인 리오테 장군은 북아프리카 토착민들의 존경을 한 몸에 받았다. 이러한 역사 인식들은 1950-1960년대 프랑스 초등학생들을 특징 지울 수 있는 것들이었다. 모든 학생들은 나폴레옹이 영웅이라 배웠고, 아마도 수만 명의 프랑스인들이 아스페른 이나 보로디노 전투에서 사망한 것이 은폐되지는 않았다고 하더라도 [프랑스에서 이 전투들은 에스링 , 모스코바 전투로 알려져 있다], 이들 프랑스인들의 고통은 민족적 영광 앞에서 굴복해야만 했던 것이다. 당시의 초등생들은 브라자 [프랑스의 탐험가 이자 식민지 행정관리, 프랑스령 모로코의 창설자] 와 리오테 에 대한 존경심을 가질 수 밖에 없었고, 이는 프랑스의 식민지 정복이 아프리카의 미개한 땅을 문명화시키는 사명을 가진 것이었다는 주장을 합리화 시키기 위해서 였던 것이다. 아이들이 더 어릴수록, 그들은 보다 더 이런 이야기들에 빠져든다는 것은 [역사적 세뇌를 위한] 하나의 법칙이었다. 프랑스에서 역사교육이 초등학교 때부터 시작되는 것은 바로 이 같은 이유 때문이다. 8세의 아동들은 나라의 과거를 배우게 되고, 역사 교과서에 등장하는 이미지들에 압도당하기 마련인 것이다. 그런데, 당시의 초등생들이 오늘날에 40-50세가 되었는데, 이들이 프랑스의 제국주의 팽창에 대해 비교적 비판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는 것은 참으로 역설적인 것이다.

 

Certes, les images des livres d’histoire modernes n’ont plus rien à voir avec les descriptions pittoresques des héros d’autrefois. Le bienveillant général Lyautey, qui, dans les années 1960, était encore célébré comme le plus grand colonisateur du pays et auquel les Marocains auraient fait des adieux déchirants en 1925, n’est plus au programme. Cela faisait déjà longtemps que l’approche timorée du passé colonial déplaisait aux députés de l’aile droite de l’UMP au pouvoir. D’où l’amendement qu’ils avaient discrètement introduit dans une loi portant reconnaissance de la Nation et contribution nationale en faveur des colons français d’Algérie, les pieds-noirs, et des harkis, les anciens supplétifs locaux de l’armée française. L’article 4 prévoyait ainsi que soit mis en avant le rôle positif de la présence française outre-mer, en particulier en Afrique du Nord.


명백하게도, 현대 역사책들이 제시하는 역사인식들은 과거 영웅에 대한 이상야릇한 묘사들과는 거리가 있다. 과거에 각광을 받았던 리오테 장군은 1960년대 까지, 여전히 프랑스의 가장 위대한 식민주의자로, 이 사람에 대해 모로코인들이 1925년에 눈물의 작별인사를 한 것으로 유명했지만, 이같은 묘사는 더 이상 역사교과서에 등장하지 않는다. 프랑스의 식민지 과거에 대한 이 같은 소심한 역사해석이 프랑스의 집권 여당 의원들을 불쾌하게 만든 지 이미 오래다. 바로 이 같은 불만으로부터, 알제리 프랑스, 피에-느와르,아르키,그리고 식민지 주둔 프랑스 군대를 옹호하는, 이 지역에 대한 프랑스 국가와 국가적 공헌을 인정하기를 강제하는 법안이 제안된 것이다. 이 식민지 과거를 미화하는 법의 4조는 해외영토, 특히 북아프리카에서의 프랑스 제국의 존재가 미친 긍정적인 역할을 강조하는 것을 그 골자로 하고 있다.

 

Le 23 février 2005, ce texte est devenu une loi promulguée par le président Jacques Chirac. Depuis, le débat autour de l’article 4 fait rage. Des centaines d’historiens et d’enseignants ont protesté. En juin dernier, le président algérien, Abdelaziz Bouteflika, a refusé de signer un traité d’amitié prévu de longue date. Enfin, à la mi-décembre, la gauche, faisant preuve d’une unanimité inhabituelle, a exprimé son désaccord.


2005
2 23, 이 법안은 당시 대통령,자크 시라크에 의해서 법으로 선포되었다. 그리고 그 이래로, 이 법의 제4조에 대한 논쟁이 그치지 않고 있다. 몇몇 역사가들과 교사들이 이 법에 대해 항의하고 있는 것이다. 지난 6월에, 알제리 대통령, 압델라지즈 부트폴리카 가 오랫동안 공을 들여왔던 양국간의 우호조약을 거부했다. 또한, 12월 중순에, 프랑스 좌파는 보기 드문 당론분열을 드려내면서, 이 법에 대한 반대입장을 표명하기에 이른 것이다.

 

On pourrait ne voir dans l’événement qu’une farce si la situation à l’arrière-plan n’était pas si sérieuse. Les banlieues ont flambé pendant des semaines, et les incendies en question ont clairement montré à quel point la France a mal digéré son passé colonial, à quel point les descendants des Bédouins pacifiés par Lyautey se sentent peu français, en dépit de leurs papiers d’identité français, et en dépit des écoles françaises. La transformation par l’éducation des petits immigrés en républicains capables de chanter La Marseillaise par cœur ne s’est manifestement pas opérée aussi aisément qu’on voulait le croire à l’Elysée et à Matignon.

 

그리고 이 법안 통과 이후 프랑스의 상황은 매우 심각한 것이었다. 2005년 말, 프랑스의 교외빈민가들에서 수 주 동안 불길이 타올랐고, 이러한 방화들은 프랑스가 얼마나 잘못된 방식으로 자신의 식민지 과거를 정리하고 있는지 보여준 것이며, 리오테가 이미 평정한 것으로 알려진 식민지인들의 후손들이 스스로 프랑스인으로 거의 느끼지 못하고 있는 것을 보여준 것이었고, 그들이 프랑스 시민증을 가지고 있고, 프랑스 학교에서 교육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서 말이다. 교육을 통해서 이들 이민자 2세들을 공화국 시민으로 만들어, 프랑스 국가인 «라 마르세예즈»를 자연스럽게 부를 수 있도록 만들겠다는, 프랑스 엘리제궁과 총리실의 바람이 그렇게 쉬운 것이 아니라는 점이 드러난 것이었다.

 

D’une part, c’est faire preuve d’une naïveté presque sans bornes que de croire qu’il suffit d’une loi pour ordonner aux professeurs et aux instituteurs ce qu’ils doivent enseigner et comment. D’autre part, la droite française part du principe que le passé colonial n’est aujourd’hui présenté que de façon négative et critique, ce qui est faux. Il a fallu attendre 1999 pour que la guerre d’Algérie soit enfin appelée officiellement par son nom (auparavant, on ne parlait que d’“événements”), et les tabous sont encore très répandus dans l’enseignement de l’histoire.
Même dans les grandes classes, l’histoire coloniale occupe une place de plus en plus réduite, le plus souvent englobée dans les chapitres portant sur les “relations internationales”. On présente ainsi sous un jour favorable l’image de la mission civilisatrice de la Grande Nation dans ses colonies. Les jeunes Français ont donc d’autant plus de mal à percevoir le malaise des enfants d’immigrés. Ayant trop peu appris sur le colonialisme, ils ne sont pas en mesure de comprendre les mouvements anticolonialistes.

 

다른 한편으로, 법을 통해서, 일선 교사들과 교장들에게 어떤 역사를 가르쳐야 하고, 어떻게 가르쳐야 하는지를 강제할 수 있다고 믿은, 이 같은 프랑스 우파의 순진함을 어떻게 보아야 할까? 우선, 프랑스 우파는 식민지 과거가 오늘날 부정적이고 비판적인 방법으로 소개되고 있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한 것으로 보이지만, 이것은 잘못된 것이다. 알제리 전쟁이, 공식적으로 «알제리 전쟁»으로 불리게 된 것은 1999년에 가서야 발생한 것이고, 그 이전까지는 «알제리 사태»라 불렸고, 프랑스 역사교육에서 많은 금기들이 존재한 적이 있었다.

심지어 고등교육에서도, 식민지 역사는 점점 입지가 줄어들고 있고, 자주 국제관계들을 다루고 있는 장에 자주 등장하고 있다. 이런 추세대로 라면, 어느 날인가 위대한 프랑스 민족이 자신의 식민지에서 문명전파자의 역할을 담당했다고 가르칠 날도 멀지 않았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이런 상황에서 프랑스 청년들은 이민자 출신 청년들의 불만을 이해하는데 큰 어려움을 느끼게 될 것이다. 식민주의에 대해 거의 교육받은 것이 없는 그들은, 반식민주의 운동도 이해할 수 없게 될 것이다.

 

La France n’est évidemment pas le seul pays où les manuels scolaires servent à l’endoctrinement. Ceux qui sont allés par exemple à l’école en Bavière dans les années 1960 ont appris l’histoire dans un manuel qui, avec des intitulés tels que “La conquête du Danemark et de la Norvège” ou “La campagne à l’Ouest”, ne prenait que fort peu de distance vis-à-vis de la funeste politique d’expansion de l’Allemagne. Et encore aujourd’hui l’Afrique est la plupart du temps décrite dans les manuels d’histoire allemands comme le continent des Pygmées et des Bochimans, à en croire une étude réalisée par la fondation Konrad Adenauer. L’histoire de l’Afrique y est d’ailleurs essentiellement vue à travers le prisme des puissances coloniales européennes. Au Japon sont parus en 2005 des manuels d’histoire pour les collèges et les lycées qui présentent l’invasion de la Chine comme une “progression” et le massacre de Nankin comme un “incident”. [Plusieurs centaines de milliers de Chinois de Nankin furent tués par les Japonais en 1937.] Si, dans les manuels turcs, la chute de Constantinople est dépeinte comme une grande victoire, en Grèce elle est vue comme une perte et une défaite. Les enfants palestiniens n’apprennent pratiquement rien de l’Holocauste. Et, quand le Brandebourg a voulu mettre au programme le massacre des Arméniens, l’ambassadeur de Turquie à Berlin est intervenu. Il s’est d’ailleurs passé la même chose aux Etats-Unis, le gouvernement d’Ankara mettant le plus grand soin à présenter l’image la plus positive possible de son pays à l’étranger.

 

물론 프랑스만 역사 교과서를 통해, 자국중심의 이데올로기를 강요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가령, 1960년대 독일 바비에르 주에서는 역사교과서를 통해 «덴마크 와 노르웨이 정복» 혹은 «서쪽으로의 원정» 같은 역사를 교육시킨 바 있고, 이는 과거 독일의 팽창정책을 무비판적으로 교육시킨 것에 다름 아니었던 것이다. 또한 오늘날에도, 독일 역사교과서에서 아프리카는 역사상 대부분의 시대를 통틀어, 피그미 족 같은 사람들이 거주하는 대륙으로 묘사되고 있고, 이런 교과서가 토대로 삼고 있는 것이 콘라드 아데나워 재단의 연구성과 라는 것이 믿겨지지 않을 정도이다. 이 책에서, 아프리카 역사는 본질적으로 유럽 식민지 열강이라는 프리즘을 통해 바라보는 시각에 다름아닌 것이다. 일본에서 지난 2005년에 중고생을 대상으로 발간한 역사교과서에서, 일본의 중국침략을 «팽창 혹은 진출»이라고 묘사하고 있고, 남경 학살은 일개의 «사건»이라 규정되고 있다. [지난 1937년 수십만명의 남경거주 중국인들이 일본군에 의해 학살된 바 있다.] 만약, 터키 교과서에서 콘스탄티노플 함락을 위대한 승리로 묘사한다면, 그리스 쪽에서는 이것을 상실 혹은 패배로 묘사할 것이다. 팔레스타인 아동들은 홀로코스트에 대해 거의 배우지 않고 있다. 그리고 만약 베를린이 역사교육에 아르메니아 대학살을 추가하려 한다면, 베를린 주재 터키 대사가 개입을 할 것이다. 이것은 미국에서도 마찬가지로, 터키의 앙카라 정부는 외국에서 자국이 가능한 최고의 긍정적인 이미지를 가지도록 하기 위해, 혼신을 힘을 다하고 있는 중이다.

 

Les manuels scolaires véhiculent la version officielle de l’histoire. Ils montrent donc avec une remarquable précision quelle mémoire l’Etat souhaite entretenir ou pas. Dans les régimes autoritaires, ils se muent parfois en armes d’une redoutable subtilité. La France aurait intérêt à faire preuve de davantage d’ouverture sur le passé colonial dans l’enseignement de l’histoire, sur les pertes et les gains qu’il a impliqués. Une histoire présentée comme le patrimoine commun des ex-colonisateurs et des ex-colonisés ne suffira certes pas à panser toutes les plaies. Mais elle pourrait au moins contribuer à consolider le sentiment d’appartenance. Si le débat sur l’enseignement de l’histoire fait effectivement un pas en ce sens, alors l’article 4 n’aura pas eu que des défauts.

 

역사 교과서는 공식적인 역사가 무엇인지 보여주는 것이다. 따라서 교과서들은 한 국가가 어떤 기억들을 보존하기를 원하고, 어떤 기억을 지우기를 바라고 있는 가를 정확히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권위주의 체제에서, 교과서들은 의혹이 제기될 만한, 미묘한 문제들에 대해서는 침묵으로 일관하기 마련이다. 아마도 프랑스는 역사교육에서 식민지라는 과거에 대해 더 문호를 개방하기를 원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고, 그것은 식민지 지배로 프랑스가 얻은 것은 무엇이고 잃은 것은 무엇인지를 분명히 하기 위한 것일지 모른다. 하지만, 지금 같은, 옛 식민주의자들만의 기념물에 다름 아닌, 역사만으로는 모든 상처들을 달래는 것이 불가능할 것이다. 하지만, 이런 역사가 최소한 귀속감정을 공고히 하는데 공헌할 것이라는 점은 분명해 보인다. 하지만 역사교육에 대한 논쟁이 실제로 생산적인 것이 된다면, 이 법의 4조는 결점투성이 라는 것이 드러나게 될 것이다.




덧글

  • 강약 2010/01/05 17:33 # 삭제 답글

    허..프랑스도 역사문제에선 미묘하게 구는군요..
    이 글 보니 영국이나 다른 유럽국가의 제국주의에 대한 역사서술이 어떤지 궁금해집니다.
  • 다복솔군 2010/01/05 17:49 #

    파리13구님 이글루스에서 나온 기사를 검색해 보면 영국의 경우엔 제국주의의 명분이 된 계몽주의에 대한 반성을 가르치고 있더군요. 참 놀랍고도 부러운 일입니다.
  • 파리13구 2010/01/05 18:05 #

    /다복솔군 님...

    감사합니다..^ ^
  • 들꽃향기 2010/01/05 17:59 # 답글

    그러고보니 프랑스의 제국주의는 그 어느 세력보다도, 스스로의 '문명성'을 강조하고 그를 통한 '동화'를 강조했었죠.
    (어디서 동아시아의 많이 듣던 얘기........?)

    그래서 생고르와 같은 흑인 지식인들이 아카데미 프랑세스에 적을 둘 수 있었던 것도, 겉으로는 프랑스의 '관대함'으로 보이지만, 실재로는 프랑스의 '문명'의 우월성과 그에 대한 '동화'를 상징하는 것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그런 시대의 유산이 결국 사라지지 못하고 작금에 반영된다니 씁쓸하기 그지 없습니다.
  • 파리13구 2010/01/05 18:04 #

    프랑스 우파들의 전반적인 수준이 , 사르코지의 득세와 함께,

    하락하고 있다는 것을, 이 나라 사회 곳곳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물론 좌파라고 이러한 대세에서 예외라고 볼 수도 없다는 것이 더 문제입니다. ^ ^
  • ㅇㅁㄴㄹ 2010/01/05 18:37 # 삭제 답글

    역시 국사같은건 애들한테 가르치면 안되
  • dunkbear 2010/01/05 20:10 # 답글

    백날 저렇게 해봐야 소용 없습니다.

    저렇게 가르쳐도 알제리 전투로 귀결되는 알제리 독립이나 디엔비엔푸의 패배로
    물러나야 했던 베트남의 경우는 식민지 지배의 긍정적인 측면이라는 점과는 상반
    되는 것이니 말이죠. 그렇게 긍정적인데 저들이 왜 피 흘리면서 싸웠겠습니까?

    오늘날의 40-50세 프랑스인들이 식민지 지배에 비판적인 것도 저런 식으로 식민지
    지배를 미화하려면 아이들을 세뇌시켜야 하는데 교육은 선진국처럼 시키면서 정작
    식민지 지배에 대한 교육은 주입식으로 시키니 씨가 안먹히는 것이죠.

    그러니 저런 법 백날 통과시켜봐야 씨도 안먹히는 겁니다.

    어떤 면에서는 저런 측면이 프랑스의 부러운 점이라고나 할까요.
  • 파리13구 2010/01/05 20:18 #

    동감입니다...
  • Luthien 2010/01/05 20:41 # 답글

    그놈의 문명 교화 외치다 중동에선 영국보다 먼저 털리고 시리아에서 물러났죠.
  • 아랍 2010/01/07 10:36 # 삭제 답글

    영국에게 밀려서인지 식민지의 거의 대부분이 아프리카쪽이군요. 영국이나 스페인처럼 영양가 있는 식민지도 없었으면서 제국이라고 거들먹거리다뉘....
댓글 입력 영역
* 비로그인 덧글의 IP 전체보기를 설정한 이글루입니다.


2014 대표이글루


2016 대표이글루

2015 대표이글루

2013 대표이글루

2011 이글루스 TOP 100

2010 이글루스 TOP100

2010 이글루스 TOP100

2017 대표이글루_history

방문자

광고

2018 대표이글루_hi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