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의 인도차이나 전쟁을 재정지원한 것은 미국 ! Le monde



프랑스의 클로드 샤브롤 감독의 영화 <도살자,1970>, 시골학교의 여교장인 여주인공 엘렌이 정육점 푸주한인 포폴이 잔혹한 살인범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그에 대한 묘한 이중적 감정을 느낀다는 것을 보여주는 영화다. 즉 그녀는 그를 두려워하면서도, 이 남성에게서 묘한 야성의 매력을 발견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 남성은 전직 인도차이나 전쟁 참전 출신 군인으로 되어 있다.

 

이렇게 프랑스가 제2차세계대전 이후, 제국을 유지하려는 마지막 몸부림으로 벌인 전쟁은, 포폴 같은 문명사회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하는, 야성의 인간을 탄생시켰던 것이고, 문명의 프랑스도 포폴에 대한 엘렌의 시선과 유사하게, 원칙적으로 식민지는 나쁘지만, 현실적으로 식민지 없는 프랑스는 상상할 수 없다는, 이중적 태도로 일관했던 것이다.

 

이렇게 전후 프랑스에 하나의 재난과 동의어 였던 , 1차 인도차이나 전쟁은 어떤 것이었을까? 한 백과사전에 따르면 다음과 같다.

 

“제1차 인도차이나 전쟁(The First Indochina War)이란 1946 12 19일부터 1954 8 1일 디엔비엔푸 요새 전투까지 프랑스와 베트민간의 전쟁으로 프랑스-베트남 전쟁(the Franco-Vietminh War) 등으로 불린다.

 

연합군은 베트남문제를 중국의 국민당 정부에게 베트남문제를 처리해달라고 부탁하였는데, 북쪽에서는 공산군이 내려오고 남쪽에서는 지도자공백 상태라 혼란이 계속되었기 때문에 프랑스인들을 풀어주어 재무장 시켰기 때문에 북은 베트민이 남은 프랑스가 장악하여 8년 동안 전쟁이 계속된것이다. 전쟁이 끝나고 북에는 호치민을 대통령으로 하는 베트남인민공화국이 수립되고, 남에는 괴뢰황제 바오 다이를 총리로 하는 베트남 공화국이 세워졌다.

 


이렇게 전후에 인도차이나에서 제국의 권위를 재확립하려 했던, 프랑스의 필사적인 노력은 정치적으로나 군사적으로나 파국을 낳았다.

 

이 전쟁에서 흥미로운 점은, 전후에 거의 재정파탄 상황에 있었던 프랑스가 이 전쟁을 수행할 수 있도록 재정지원한 나라가 미국이었다는 점이다. [전후 유럽 열강의 식민지 문제에 대해, 제국의 평화로운 해체가 기본입장이었던 미국이 프랑스 제국의 유지에 재정적 도움을 준 것은, 베트남의 공산화를 막아야 한다는 계산에서 가능했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공정했던 미국은 과거 호치민 세력도 비공식적 채널을 통해 지원한 바 있었다.]

 

다음은 역사가 토니 주트의 지적이다.

 

경제적 사정에 비추어 봤을 때, 당시 프랑스는 베트남과 같은 식민지에서 오랫동안 전쟁을 수행할 능력을 전혀 지니지 못하고 있었다. 프랑스의 인도차이나 전쟁에 재정 지원한 나라는 바로 미국이었다. 프랑스는 미국의 차관과 원조 덕분에 상당한 자원을 이 전투에 투입할 수 있었지만, 이 전쟁은 점점 더 많은 비용을 요구했다. 사실, 미국이 전후 프랑스의 경제 현대화를 위한 지원에 힘쓰고 있는 동안, 프랑스는 자신의 희소자원을 전쟁에 쏟아 붓고 있었던 것이다.

 

1954년에 가서야 워싱턴은 이 전쟁에 대한 지원 중단을 선언했다. 프랑스는 점점 패색이 짙어져만 가고 있었던 이 전쟁을 위해, 미국에 점점 더 많은 요청을 하기에 이르렀던 것이다. 8년 동안 별다른 성과없이 피만 흘린 이후, 워싱턴은 프랑스가 이 지역을 통제할 능력이 없을 뿐만 아니라, 군사적으로도 호치민의 적수가 되지 못한다는 점을 깨달았던 것이다. 미국의 입장에서 프랑스는 돈만 낭비했고, 점점 외교적인 정크본드가 되어갔던 것이다. 결국 1954 5월에 프랑스가 디엔비엔푸에서 완패를 하고, 휴전을 요청했을 때 놀란 사람은 거의 없었다.

 

이렇게 인도차이나를 상실하고, 프랑스의 관심은 북아프리카로 옮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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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의 인도차이나 전쟁이, 영화 <도살자>의 포폴 같은 야수적인 인간을 출현시키는데 일조했다면, 인도차이나 전쟁의 종전 직후인, 1954 11 1일에는 알제리 봉기가 시작되었다.

 

이 알제리 전쟁은, 또 한편의 프랑스 영화의 명작인 <셀부르의 우산>의 역사적 배경이 되었고,

아름다움 사랑을 실현할 수 있었던, 카르린 드뇌브의 꿈을 좌절시킨 것은 바로, 그녀의 애인이 알제리 전쟁에 참전하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이렇게, 전후 재정적인 파산상태에 있었던 프랑스가, 제국을 유지하려고 물의를 하는 과정에서 일으킨 두 개의 전쟁, 즉 인도차이나 전쟁 과 알제리 독립전쟁을, 이 두 편의 영화에서는, 전후 프랑스의 하나의 역사적이고 정신적인 상처로 기억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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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행인1 2010/01/05 15:09 # 답글

    이미 거덜이 난 상태에서 프랑스가 무슨 생각으로 전쟁을 지속했나 모르겠습니다. 암만 '제국'이 좋다지만.
  • 파리13구 2010/01/05 15:16 #

    더 거널날지도 모른다는 공포 때문이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이 공포 때문에, 국제적 망신만 더 당했다고 보지만 말입니다. ^ ^
  • dunkbear 2010/01/05 15:39 # 답글

    미국도 어리석었죠. 호치민이 공산주의자였는지는 몰라도 2차 대전 시절 일본에 맞서서 미국과 같이 싸운 인물인데 (미국 OSS팀이 그를 Uncle Ho로 불렀다죠.) 공산화된다고 무조건 소련과 중국에 보조를 맞췄을 가능성은 적었습니다. (게다가 나중에 중월전쟁까지 나지 않았습니까...)

    오히려 프랑스를 돕지않고 호치민을 지지했다면 베트남은 미국과도 교류하는 등 유고의 티토처럼 독자노선을 택했을 수도 있다고 봅니다. 그렇게 해도 공산화 도미노는 저지했을 수 있었을텐데.. 흠.
  • 파리13구 2010/01/05 15:42 #

    미국은 과거에 아프간에서, 소련에 저항하는 탈레반을 지원한 일도 있지 않습니까?

    몇몇 지역에서 미국의 일관성이 없는 정책을 보면,

    안스럽기까지 합니다.. ^ ^
  • 천하귀남 2010/01/05 16:52 # 답글

    적의 적은 친구!?
    친구의 적은 적!?

    친구고 적이고 얼굴을 맞대고 그 사람을 알아야 하는게 아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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