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마니아] 독재자 차우셰스쿠 의 무덤에서... Le monde



[루마니아] 니콜라에 차우셰스쿠 를 위한 십자가 세 개

 

한 몰다비아 기자가 차우셰스쿠 부부 무덤 답사를 떠나서, 이 무덤을 둘러싼 의혹들에 대해 생각해 보고 있다.

 

Trois croix pour Nicolae

Un journaliste moldave part en quête de la tombe des Ceausescu, autour de laquelle planent bien des mystères.


10.12.2009 | Pavel Paduraru | 
Jurnal de Chisinau


[
연표] 차우셰스쿠 부부 최후의 나날들

 

21 décembre 1989, Bucarest:le président Nicolae Ceausescu organise une manifestation de soutien au pouvoir communiste. Devant une foule qui crie «A bas le communisme!», il prend la fuite en hélicoptère avec sa femme, Elena. Ils seront arrêtés près de la ville de Târgoviste.

 

1989 12 21부쿠레슈티 : 니콜라에 차우셰스쿠 대통령이 공산주의 정권을 지지하는 관제 시위를 지시했다. «공산주의 타도를 외치는 군중들에 놀라서, 그는 아내, 엘레나 와 함께 헬기를 타고 도주했다. 하지만 그들은 타르고비스트에서 체포되었다.

 

22-25 décembre, Bucarest:plus de 1000 personnes sont tuées, victimes des tirs des défenseurs du régime. Vingt ans plus tard, aucun coupable n’a été arrêté ou identifié.

 

12 22-25 : 공산 체제 유지 세력에 의해, 1000명 이상이 사망하고, 많은 부상자들이 발생했다. 20년이 지난 지금도, 이 학살로 인해, 아무도 체포되지 않았고, 누구의 소행인지도 밝혀지지 않았다.

 

25 décembre, Târgoviste:après un procès expéditif, les époux Ceausescu sont fusillés devant les toilettes de la caserne où ils sont incarcérés. Le procureur militaire, Dan Voinea, affirme aujourd’hui qu’il pense avoir été «manipulé»

 

12 25, 타르고비스트 : 급속 재판 이후, 차우셰스쿠 부부가 그들이 수감되어 있던 막사의 화장실 앞에서 총살 당했다. 군검사인, 단 보이네아는 최근 그가 당시에 뭔가에 홀렸었던 것 같다고 발언한 바 있다.

 

 

«Ceausescu et le peuple !”Lorsque j’étais enfant, chaque fois que j’allumais la radio, j’entendais cette expression scandée par des centaines de milliers de personnes. Je me disais qu’en Roumanie les gens n’avaient rien d’autre à faire qu’à rester toute la journée dehors pour crier. Mais, un jour, j’ai appris avec surprise que les Roumains avaient changé de vie. C’est alors que j’ai chanté moi aussi, des larmes de joie dans les yeux, aux côtés de millions de Roumains : “Olé-olé, Ceausescu nu mai e !” [Ceausescu n’est plus]. Ces dernières semaines, j’écoute souvent, le soir, une chanson que j’aime beaucoup : “Ceausescu n’est pas mort/L’histoire nous a dupés.” Il s’agit, bien sûr, de la chanson d’Ada Milea, et c’est donc sa faute si un jour j’ai tout laissé tomber pour aller à Bucarest voir Ceausescu, au cimetière Ghencea… Sur place, on nous indique le chemin : d’abord contourner la chapelle, puis à gauche pour Nicolae, à droite pour Elena – séparés pour l’éternité. Derrière la chapelle, Nicu, le fils du dictateur, décédé des suites d’une cirrhose dans une clinique à Vienne en 1996. Une femme au visage doux erre parmi les tombes. Je lui demande où je peux trouver Ceausescu. Elle me crie : “En enfer… par là-bas !” Et puis la voilà : une croix grise de 1 mètre de haut, sur une tombe entourée d’une clôture métallique noire. Je n’arrive pas à croire que ce soit Ceausescu. “Si, c’est lui”, me dis-je, à la vue d’une étoile rouge sur la croix : “Erigé par le Parti des travailleurs roumain”.


«
차우셰스쿠 와 인민어린 시절에, 라디오를 켤 때 마다, 나는 수많이 사람들의 이러한 외침을 들었다. 당시에 나는 루마니아에서 사람들은 하루 종일 밖에 나가 이런 소리를 지르는 것 이외에는 할 일이 없는 것이 아닌가 스스로 자문해 볼 정도였다. 하지만, 어느 날, 나는 갑자기, 루마니아 사람들이 입장을 바꿨다는 소식을 전해들었다. 이렇게 나는 «이제 차우셰스쿠가 사라졌다! »고 눈에서 기쁨의 눈물을 흘리는, 수백만 루마니아인들의 외침을 듣게 된 것이다. 그런데, 최근 몇 주 동안, 나는 저녁에 라디오에서 내가 좋아하는 노래 하나를 자주 들을 수 있었다. «차우셰스쿠는 죽지 않았다 / 역사가 우리를 속였다»라는 가사를 가진 노래이다. 이것은 물론 가수,에이다 밀레아의 노래이고, 내가 몇 일 전에 모든 일을 미루고, 루마니아의 겐체아 공동묘지에 있는 차우셰스쿠 무덤을 방문하게 된 것도, 모두 그 가수의 노래 탓이다. 묘지에 도착하니, 사람들은 우리에게 우선, 성당을 끼고 돌면, 그 왼쪽으로 니콜라에 차우셰스크의 무덤이고, 그 오른쪽에는 엘레나의 무덤이 있다고 알려 주었다. 이들 부부는 영원히 따로 떨어지게 되었다. 그리고 성당 뒤에는, 니쿠, 즉 독재자의 아들 무덤이 있고, 그는 1996년 비엔나의 한 병원에서 간경화로 사망했다. 온화한 얼굴의 여성이 무덤들 가운데 있었다. 나는 그녀에게 차우셰스쿠의 무덤이 어디에 있는지 물었다. 그녀는 내게 외쳤다 : «지옥에 있다. 저쪽...!» 드디어 그의 무덤을 찾았다. 그의 무덤은 검은 철제 담으로 둘러져 있었고, 그 위에는 1미터 높이의 회색 십자가가 있었다. 나는 이것이 차우셰스쿠의 무덤인지 믿을 수가 없었다. «맞다, 바로 그다라고 혼잣말을 했다. 십자가에 붉은 별이 있는 것을 확인하고 나서 였다. «루마니아 노동당이 세우다»라고 적혀 있었다.

 

J’ai quand même un doute. “Est-il vraiment là-dessous ?” La tombe est couverte de fleurs. Derrière cette croix grise, il y en a une autre, en marbre, avec une photo et cette inscription : “Une larme sur ta tombe, de la part du peuple roumain”. Et puis une troisième croix, noire, en métal, dénuée de toute inscription : c’est la première croix plantée sur la tombe du dictateur, en 1990.

 

하지만 나는 의문을 지울 수 없었다. «이 안에 있는 것이 정말로 그일까무덤은 꽃으로 뒤덮여 있었다. 이 회색 십자가 뒤에, 다른 십자가가 하나 더 있었고, 그의 사진과 함께, 다음과 같은 명문이 박혀 있었다 : «루마니아 인민을 대표해서, 당신 무덤 위에 눈물을 떨굽니다그리고 세번째 십자가가 있었는데, 검은색이고, 철로 되었고, 명문은 없었고, 1990년에 독재자의 무덤 위에 세워진 첫 번째 십자가라 한다.

 

Une passante, nous regarde et s’esclaffe. “Eh, vous là, vous êtes roumains ?” Je pense qu’elle n’arrive pas à croire que de jeunes Roumains viennent visiter Ceausescu. Comme je l’ai appris plus tard, ne viennent là que des vieux, des anciens de la nomenklatura… Arrive un Chinois. Il regarde Ceausescu, part en courant, revient avec une dizaine d’autres. Tous restent bouche bée. Un autre Chinois joint ses mains en un symbole de prière et s’incline, comme à l’église. Ils disent qu’ils élèveront un monument à Ceausescu en Chine, puis s’en vont et reviennent encore, portant des chrysanthèmes et des bougies. Je me souviens des déclarations du major Dorin Cârlan, le commandant du peloton qui a exécuté le couple de dictateurs. Selon lui, avant d’être emmenés devant les toilettes de la caserne de Târgoviste, où ils ont été exécutés, Ceausescu leur aurait demandé : “Nous vous avons élevés, et maintenant vous nous tuez comme des chiens ?” “Ceausescu m’a regardé, a déclaré Cârlan, les larmes lui sont montées aux yeux, puis ils n’ont plus été capables de marcher. Nous avons dû les porter. Pendant qu’on le portait, Ceausescu a crié : ‘Mort aux traîtres ! L’Histoire me vengera ! Vive la Roumanie socialiste libre et indépendante !’ puis s’est mis à chanter L’Internationale.”


한 여성이 지나가다, 우리를 보고 외친다. «.. 당신들이 거기 계시는군요, 당신들은 루마니아인들 입니까? » 그녀는 젊은 루마니아 사람이 차우셰스쿠를 방문한다는 것은 믿기지 않는다는 눈치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이곳을 방문하는 것은 노인들 과 전직 노멘클라투라 출신들 뿐이라 한다. ... 얼마 후, 한 중국인이 이리 왔다. 그는 차우셰스쿠 무덤을 힐끗 보더니, 다른 쪽으로 뛰어 갔다가, 10여명의 사람들과 다시 돌아왔다. 그들은 모두 입을 멍하니 벌리고 있었다. 다른 한 중국사람은 무덤의 돌 조각을 손으로 쓰다듬고, 마치 교회에서 처럼, 고개를 숙여 묵념을 했다. 그들은 자신들이 중국에서 차우셰스쿠 기념비를 건립할 예정이라고 말했고, 잠시 다른 곳에 갔다가, 다시 돌아왔고, 국화와 양초를 들고서 말이다. 나는 독재자 부부를 처형한, 부대의 사령관이었던, 도린 카를란의 발표를 기억한다. 그에 따르면, 그들이 처형된, 타르고비스트 군막사의 화장실 앞으로 끌려오기 전에, 차우셰스쿠가 그들에게 다음과 같이 물었다고 한다 : «우리가 너희들을 키웠다. 그런데 너희가 우리를 개처럼 죽일 수 있나카를란에 따르면, «차우셰스쿠가 눈가에 눈물을 머금고 나를 쳐다 보았고, 이윽고 그들은 더 이상 걸을 수 조차 없었다. 우리는 그들을 부축해야만 했다. 차우셰스쿠가 이렇게 외쳤다 : 배신자들에게 죽음을 ! 나를 대신해 역사가 복수하리라! 루마니아 자유 독립 사회주의 만세 ! 그리고 그는 인터내셔날가를 부르기 시작했다

 

Nous avons quitté Ceausescu sous la pluie, sans être sûrs qu’Elena et lui reposent effectivement au cimetière Ghencea… Nous savons seulement qu’il est responsable de la mort d’innombrables âmes innocentes, et qu’il est le seul chef d’Etat socialiste à avoir été mis à mort par son propre peuple. Nous savons également que, le 4 décembre 1989, Gorbatchev lui a demandé de céder le pouvoir, ce que Ceausescu a refusé, puis la révolution roumaine a suivi… Nous savons aussi que Gica Popa, le juge qui a prononcé la peine capitale, a été retrouvé criblé de balles deux mois plus tard. D’autres témoins de l’exécution et de l’inhumation sont morts quelques années plus tard, dans des accidents de chasse, de la route...

 

우리는 비를 맞으며 차우셰스쿠를 떠났고, 엘레나 와 그가 실제로 이 겐체아 공동묘지에 매장되어 있는지는 확신할 수 없었다. 우리가 아는 것은 다만, 그가 수많은 죄없는 영혼들의 죽음에 책임이 있다는 것과 자신의 인민들 손에 죽은, 유일한 사회주의 국가 지도자 라는 점 뿐이다. 우리는 또한, 1989 12 4, 소련의 고르바초프가 그에게 권력을 포기하라고 요구했을 때, 그가 그것을 거부했다는 사실 그리고 이후 루마니아 혁명이 발생했다는 것도 알고 있다. 우리가 또 알고 있는 것은 지카 포파, 그는 판사로 차우셰스쿠에게 사형을 언도한 바 있는데, 그가 재판 두 달 뒤에 총에 맞아 사망했다는 것이다. 다른 처형을 지켜본 증인들과 이 부부를 모욕한 사람들도 몇 년 뒤에 사냥 혹은 교통 사고 등으로 사망했다.

 

Les corps des Ceausescu ont été ramenés de la caserne de Târgoviste à Bucarest et enterrés nuitamment, sans que personne soit au courant. Certains affirment que les corps ont été brûlés. Il y a quelques années, le bureau du procureur général de la Roumanie a refusé de faire exhumer les époux Ceausescu pour vérifier la présence des corps, comme le demandait Valentin Ceausescu, le seul enfant des dictateurs encore en vie.

 

차우셰스쿠의 시신은 타르고비스트 병영에서 부쿠레슈티 로 이송되었고, 야밤에 매장되었다고 하고, 이는 아무도 이 사실을 모르게 하기 위해서 였다고 한다. 몇몇 증인들은 부부의 시신이 화장되었다고도 한다. 몇 년 전, 루마니아 검찰은, 시신이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부부의 무덤을 발굴하자는 요청을 거부한 바 있고, 이것은 아직도 생존해 있는 독재자 부부의 유일한 자식인, 발렌틴 차우셰스쿠의 요청이었던 것이다.

 

“Nous l’avons liquidé, mais à présent nous regrettons…”C’est ce que m’a dit à mon départ un vieil homme édenté, au cimetière. Est-ce qu’il regrette que Ceausescu ne soit plus ? Aucunement. “Je suis désolé que Ceausescu ait été communiste et qu’il ait commis d’ignobles méfaits, dit-il, mais je suis tout aussi inquiet du fait que nous, un peuple aux traditions chrétiennes, ayons tué deux personnes le jour de Noël, et que ce crime nous ait mis en joie, tels des antéchrists.”

 

«우리는 그를 제거했지만, 현재 우리는 후회하고 있다...» 이것은 내가 무덤을 떠날 때, 무덤에서, 한 이빨이 모두 빠진 한 노인이 나에게 한 말이다. 이 세상에 차우셰스쿠가 더 이상 살고 있지 않다는 점을 후회하는 것일까? 그것은 아니다. «차우셰스쿠가 공산주의자였고, 그가 많은 범죄들을 저질렀다는 점은 유감이다, 하지만 나는 또한, 기독교 전통을 가지고 있는 우리 루마니아 사람들이 성탄절에 이 두 사람을 죽였다는 점과 이 범죄가 우리를 기쁘게 만들었다는 점이, 마치 적그리스도 같은 분위기가 나서, 매우 마음이 편하지 못하다라고 이 노인이 말했다.



니콜라에 차우셰스쿠의 무덤


엘레나 차우셰스쿠 의 무덤


덧글

  • kinoko 2009/12/23 16:53 # 답글

    모자이크가 있었던 걸로 기억하지만,
    처형장면인지? 처형후 장면인지?
    뉴스에 나오는 거 보고 어렸을 때 살짝 충격 먹은 소식이였죠.

    앞에 글에서 차우셰스쿠와 엘레나 무덤 이야기가 나와서
    어떤 무덤일까? 궁금해 했었는데, 사진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런거 보면 인생 참 허망한 것 같습니다 ^^
  • 네비아찌 2009/12/23 22:14 # 답글

    차우셰스쿠가 살아있다는 음모론이 있나 보네요.....
  • 노는 건달 2009/12/24 01:10 # 삭제 답글

    저도 중 3 때 신문에서 차우세스크 처형 직후의 사진을 본 기억이 납니다

    아... 얼마 전에 케이블에서 <케이브>라는 영화를 잠깐 봤는데 그 동굴에서
    나온 괴물이 죽기 전에 '차우세스쿠~'를 외치며 죽어서 잠깐 이 사람 생각이
    나기도 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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