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로코스트]아이히만은 칸트 철학을 어떻게 독해했나? Encyclopedie



한나 아렌트의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의 제8장 법을 준수하는 시민의 의무에는, 다음과 같은 흥미로운 대목이 나온다.

 

수백만의 유대인을 죽음으로 내몬 살인마, 아돌프 아이히만이, 재판과정에서 칸트 철학과 그의 정언명령에 대해 읽은 적이 있고, 그에 대해 논한 적이 있다는 점이다.

 

학살자의 심리와 독일이성철학이 결합되는 방식과, 독자와 철학자의 책이 오독되는 방식 그리고 그의 오독이 그를 흔들리지 않는 학살자로, 그리고 결국 그를 사형대 위에서 사라지게 만드는데 일조했다는 것이다. 아이히만의 난독증 에 대한 이야기… ^ ^

 

아렌트의 기록에 따르면, 재판과정에서 아이히만은 칸트의 정언명령에 대한 거의 완벽한 정의를 내렸다고 한다.

 

아이히만 ,“칸트에 대해 언급하면서 제가 말하려 한 것은, 나의 의지의 원칙이 항상 일반적 법의 원칙이 적용될 수 있도록 하라는 것이다.”

 

계속되는 질의과정에서, 그는 자신이 칸트의 <실천이성비판>을 읽었노라고 대답했다. 하지만, 그가 유대인 문제의 최종해결을 추진하라는 명령을 받은 그 순간부터, 그는 더 이상 칸트의 원리를 따르지 않았으며, 자신도 그 점을 잘 알고 있었다고 고백했다.

 

아렌트는 그의 고백을 다음과 같이 해석한다. , 아이히만은 그가 살던 나치 제3제국치하에서, 즉 국가가 범죄를 합법화한 시대에서, 칸트의 정언명령이 더 이상 적용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이고, 이 같은 판단은 칸트철학에 대한 오독이었다는 점을 지적한 것이다. 가령 나치의 법률가 한스 프랑크가 제3제국의 정언명령에 대해, “만일 총통이 당신의 행위를 알았을 때, 총통께서 승인할만한 방식으로 행위하라고 정의한 바 있다.

 

하지만, 아렌트에 따르면, 칸트는 이런 식으로 주장할 의도가 없었다는 것이다. , 칸트적 정신이란, 인간은 법에 대한 복종 이상을 행해야 한다는 것, 단순한 복종을 넘어, 법의 배후에 있는 원리와 자신의 의지를 일치시켜야 한다는 요구에 다름 아니다라는 것이다. 그리고 칸트 철학에서 그 원천은 바로 실천이성이었다. 결국 칸트에게는 모든 사람이 행위를 시작하는 바로 그 순간, 입법자이며, 인간이 자신의 실천이성을 사용하여, 법의 원칙이 될 수 있고, 또 되어야 하는 원칙들을 발견해야만 하는 것이며, 결국, 인간에게는 법에 대한 복종이상의 것이 요구된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유대인 문제를 최종해결을 수행하면서, 아이히만을 사로잡은 것은 실천이성이 아닌, 총통의 이성이었다.

 

아이히만의 내면에서는, 유대인 문제를 최종해결하라는 히틀러의 이성을 실천하기 위한 철저함이 보인다. 그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항상 최선을 다했다는 점에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 이 문제에 관한 불편한 진실이 있다면, 아이히만이, 종전 무렵 하인리히 힘러를 위시한 다수 친위대들이 유대인 문제에 대한 타협을 시도하는 과정에서, 그가 끝까지 철저하게 견지한 비타협성이고, 이를 가능하게 한 것이 그의 광신이 아니라, 그의 양심이라는 점이다.

 

종전이 가까워오고, 나치의 패배가 명약관화해 지면서, 친위대 내부에서는 그 수장 힘러를 위시해서, 유대인 문제에 대한 온건파들이 대두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연합군 과 유대인들과의 모종의 협상을 시도한 것이다. 하지만, 힘러와 그 부하 온건파들의 타협시도에 대해, 아이히만은 완강히 저항했다. , 총통 히틀러의 의지와 힘러의 의지가 충돌한 경우, 아이히만의 선택은 항상 히틀러의 유대인문제 최종해결 명령이라는 의지였음은 한치의 의심도 없었던 것이고, 협상을 모색한 친위대 온건파들의 관점을 그는 부패라 간주했다. 이 과정에서 만약 아이히만이 어떤 양심의 가책을 느꼈다면, 그것은 유대인 대학살을 명령한 그의 최고 상관인 히틀러의 명령을 어기는 것이라는 것이 바로 아이히만의 양심이었던 것이다.

 

결과적으로, 나치시대의 양심은 다음과 같은 역설을 가지고 있었다. 일반적으로 문명화된 나라에서 살인과 관계된 양심이란, “살인하지 말라라면, 히틀러의 독일 제3제국 시절의 법이란, 비록 살인이 대부분의 사람들의 정상적인 욕구와 성향에 반한다는 것을 유대인 대학살의 조직가들이 아주 잘 알고 있었다고 하더라도, 히틀러식 양심의 소리는 모든 사람들에게 너는 살인할 지어다라고 속삭였던 것이다.

 

아이히만의 칸트 읽기와 그 오독을 통해, 배울 수 있는 점은, 인간은 법에 대한 맹목적인 복종이상의 판단,실천을 해야만 하는 존재라는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이다. 그리고 나치의 전범재판 중 하나였던, <뉘른베르크 재판>의 판례에 따르면, 비록 상관 혹은 국가의 명령이라고 하더라도, 그것이 반인륜범죄라면, 명령을 단순히 수행한 자에게도 법적 책임이 있다는 것을 인정했다는 사실을 다시금 상기할 필요가 있겠다.




덧글

  • dunkbear 2009/12/07 14:42 # 답글

    난독증이 아니라 그냥 칸트를 인용해서 자기 앞가림 한 것 같네요. 제3제국 당시 '히틀러의 말과 의지가 곧 법'이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칸트의 철학을 잘못 이해했어도 버릴 이유는 없었던 것 아니겠습니까.

    결국 히틀러의 명령은 칸트의 '이성'과는 거리가 멀었다는 것을 스스로 까발린 셈이니 끝까지 히틀러에 철저하게 충성했던 그의 행적을 감안하면 앞뒤가 맞지않는 파렴치한 변명이라고 봐도 되겠죠. 차라리 그냥 '히틀러 만세!'나 외치면서 사형장에서 사라졌다면 더 나았을텐데... (아니, 별로 나은 것도 없겠네요.)
  • 파리13구 2009/12/07 14:47 #

    아이히만의 양심은, 히틀러의 명령에 무조건 복종하는 것이었고,

    만약 그가 총통의 명령을 수행하지 않았더라면,

    오히려 양심의 가책을 느꼈을 것이라 발언한 바 있습니다.

    이상한 "양심"을 가진 사람이 바로 아돌프 아이히만 이었습니다.
  • dunkbear 2009/12/07 16:46 #

    그런걸 '양심'이라고 정의내리는 마인드부터 이상하긴 합니다만... 참... ㅡ.ㅡ;;;
  • 파리13구 2009/12/07 16:56 #

    저도 이상합니다...

    다만, 나치 전범들의 심리 상태 와 그 절대악에 근접한 그들의 범죄적 성격이

    일반적 언어로 묘사하는데 큰 어려움을 느낍니다.


    몇몇 논자들의 지적처럼,

    나치의 홀로코스트 범죄를, 언어를 가지고 재현한다는 것이

    불가능할 수도 있겠습니다.
  • Wishsong 2009/12/07 17:18 # 답글

    무척 재미있는 "양심"의 정의입니다. 저게 바로 영혼을 히틀러에게 맡긴 사람의 모습이었군요.
  • Wishsong 2009/12/07 17:18 # 답글

    저런 사람이 있을 정도였으면 정말 히틀러가 악마적인 카리스마가 있었기는 하나봅니다;
  • ㄱㄱ 2011/04/21 15:58 # 삭제 답글

    본문의 글과 여기에 적힌 댓글들은 한나 아랜트의 의도를 오독한 것입니다.
  • 푸... 2014/07/08 21:41 # 삭제 답글

    승전국 입장에서의 시각으로 보니 그들이 이상한 것으로 보이겠죠. 아렌트가 의미한 내용은 이게 아닌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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