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항복조인식은 왜 미주리 호 에서 열렸을까? Encyclopedie



1945년 9월 2일,

일본의 도쿄만에 정박한, 미국 전함 미주리 호에서,

맥아더를 비롯한 9개국 연합국 대표들과 일본 관리들은 ,

일본의 무조건 항복문서에 조인했다.


그렇다면, 왜 미주리 였을까?

미주리는 히로시마 와 나가사키에 원폭을 투하하고,

전임 루스벨트 대통령의 무조건 항복 정책을 고수한, 당시 미국 대통령

헨리 트루먼의 고향이었다고 한다.


그리고, 당시 미주리 호에는 미국의 승리 와 일본의 패망을 상징하는 각종 상징으로 가득 했다고 한다.

미주리 호에 걸린 깃발들 중의 하나는

진주만이 공습당한, 1941년 12월 7일에 백악관에 게양된 바로 그 성조기였고,

아나폴리스에서 급히 공수된, 31개의 별이 그려진 다른 성조기는

과거 페리 제독이 함포 외교로 일본을 개항시켰을때, 그의 기함 파우해튼 호에 걸려있던 깃발이었다고 한다.


인상적인 것은,

파우해튼 호의 성조기는 대략 100년의 시간 간격을 두고,

두번[일본의 개항과 패망], 일본이 자신에게 무릎을 꿇는 역사적 순간을 목격하게 된 점이다.


덧글

  • 소시민 2009/11/25 18:21 # 답글

    과거 페리 제독이 함포 외교로 일본을 개항시켰을때, 그의 기함 파우해튼 호에 걸려있던 깃발이었다고 한다.

    - 이런걸 보면 상징성이라는게 참 의미있게 작용하는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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