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나치 친위대원의 유언... Le monde



나는 애초부터 타고난 살인자는 아니었다. 나는 독일 슈투트가르트 출신이고, 올해 스물 한 살이다. 죽기에는 이른 나이다. 아직 하고 싶은 일도 하지 못했다.

 

우리 아버지는 공장 지배인이었고, 사회민주당 지지자였다. 어렸을 때는 어머니를 따라 가톨릭을 믿어, 성당에서 복사 服事노릇을 했다.

 

나는 히틀러 소년단에 가입했고, 그로 인해 성당과도 멀어졌다. 부모는 나를 두려워했고, 뭔가 대화를 나누다가도 내가 다가가면 즉시 입을 다물곤 했다. 부모님이 나를 믿지 않는다는 점이 괴로웠다. 히틀러 소년단에서 많은 친구들을 사귀었다. 정말 하루 종일 바빴다. 수업이 끝나면 반 친구 대부분이 클럽 회관이나 운동장으로 달려갔다.

 

전쟁이 터지자,나는 자연스레 친위대에 입대했다. 소년단에서 우리 분대의 절반 가량이 그렇게 자원 입대 했다.

 

우리는 우선 어느 육군 훈련소에 들어가, 라디오를 통해 폴란드에서 벌어지는 전투 소식을 들으며 열광했다. 나는 뭔가 새로운 경험을 하고, 이 세상을 구경하고, 나중에 이야기할 만한 어떤 모험을 하고 싶었다. 과거 우리 삼촌은 제1차 세계대전 때 어떻게 러시아 놈들을 쓸어냈는지 흥미진진 이야기 하곤 했다. 나도 그런 일을 하고 싶었던 것이다.

 

우리는 폴란드로 투입되었다. 우리는 뭔가가 진행 중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종종 우리가 뭔가 대단한 일을 하게 될 것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우리의 남자다움을 만인 앞에 증명해야 할 것이라고 말이다. 강인해져야만 했다. 이른바 인도주의니 뭐니 하는 바보 같은 짓을 꿈도 꾸지 말라고 했다. 총통께서는 진정한 남자만을 원하신다. 당시, 나는 이런 말에 큰 감동을 받았다.

 

러시아와의 전쟁이 시작되었다. 라디오 연설을 통해, 하인리히 힘러는 총통이 지시한 사명을 이루기 위해 최후의 승리를 이루어야 하고, 열등한 인간들을 쓸어버리자고 했다. 우리는 러시아와의 전쟁도 우리 지도자의 천재적인 능력 덕분에 금세 끝날 것이라 믿었다. 우리 독일인들에게는 살 공간이 필요했다.

 

그해 6월말에 우리는 나치 돌격대에 합류, 트럭을 타고 최전선으로 향했다. 우리 분대장은 히틀러가 하필이면, 지금 러시아와의 전쟁을 시작하는 이유는, 사려 깊게도 우리가 추수 때에 맞춰 고향으로 돌아올 수 있게 하기 위해서라고 했다. 우리는 이야말로 좋은 생각이라 생각했다.

 

전투는 그야말로 비인간적이었다. 상사가 우리에게 소리를 질렀다. “정신 차려! 러시아 놈들 이라고 우리에게 다르게 할 줄 아나? 그놈들이 제 동족한테 어떻게 하는지 보라구! 우리가 지나온 곳마다 감옥에는 죽은 자들이 수두룩했어. 도망치지 못하게 그냥 그 안에다 놓고 갈겨버린 거라고. 새역사를 위해 선발된 너희가 이 따위 하찮은 일에 놀라서야 되겠어!”

 

어느 더운 여름 날, 우리는 우크라이나의 드네프로페트프스크에 도착했다. 우리는 한 광장에 도착, 한 쪽에 한 무리의 사람들이 보초의 감시를 받고 있는 것을 보았다. 우리 중 누군가가 중얼거렸다. “저것들, 유대인이야!” 나는 어린 시절에 유대인을 그리 많이 보진 못했다. 물론 전에 몇 번 본적인 있지만, 대부분은 히틀러가 정권을 장악하자 마자 이민을 가 버렸다. 그나마 남아 있던 사람들도 게토로 보내졌다고 했다. 그 후 그들에 대해서는 잊어버리고 말았다.

 

당시 내가 유대인에 대해 알고 있었던 것은 확성기에서 나오는 이야기나, 우리에게 배급되어 나오는 읽을거리에 나오는 내용 뿐이었다. 유대인이야말로 우리의 모든 불행의 원인이라고 했다. 그들이 우리를 지배하려 하고, 이 전쟁을 비롯, 가난 과 기아와 실업 발생의 주범이라고 말이다.

 

그때 명령이 떨어졌다. 우리는 무리 지어 있는 유대인들을 향해 다가갔다. 150-200명 가량이었다. 그 중에는 우리를 불안한 눈으로 바라보는 어린이들도 많았다. 숨을 죽인 채 우는 사람도 있었다. 엄마 품에 안긴 아이들도 있었지만, 청년은 눈에 띄지 않았다. 대부분 여자와 노인 뿐이었다. 나는 그들의 눈에서 뭔가를 읽어낼 수 있었다. 그것은 공포였다. 그들은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나게 될지 알고 있었다.

 

우리는 유대인들을 한 집안으로 몰아넣었다. 그리고 유대인 남자들에게 석유통을 집안으로 운반하게 했다.그들은 두 말없이 시키는 대로 했다. 그 때 더 많은 유대인들을 실은 트럭이 도착하고, 그들도 집안으로 밀어 넣었다. 그리고 나서 문을 잠그고, 그 반대쪽에 기관총을 설치했다.

 

모든 준비가 완료되자, 우리는 수류탄을 핀을 뽑고, 그 집 창문 안으로 던져 넣었다. 그리고 그 불타는 지옥에서 누군가 도망을 치기라도 하면, 총을 발사할 준비를 했다. 집안에서 들려오는 비평은 정말 끔찍했다. 나는 당시 밖에 있었지만 숨이 막이 막혔다.

 

2층 창문에 어린아이를 안은 어떤 남자의 모습이 보였고, 그의 옷에는 이미 불이 붙어 있었고, 옆에는 그 아이의 엄마인 듯한 여자가 서 있었다. 그들은 뛰어내렸다. 그때부터 다른 창문에서도 몸에 불이 붙은 사람들이 뛰어 내리기 시작했다. 우리는 총을 발사했다. 오 하느님!

 

그날 저녁에는 브랜디가 배급되었다. 술을 마시다 보니, 그 기억을 잊을 수 있었다. 술에 취하자, 우리는 노래를 불렀고, 나도 같이 노래를 불렀다. 지금에 와서 보니, 내가 왜 그랬을까 후회가 된다. 어쩌면 내 자신을 마취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아무튼 그 사건을 점점 내 기억 속에서 사라져 갔다. 하지만, 밤이 되면, 다시 내게 찾아왔다.

 

 

<출처 시몬 비젠탈, 해바라기>

 

위의 이야기는 병상에서 임종을 맞이하고 있던 한 나치 친위대 병사가, 당시 유대인 수감자였던 저자인 시몬 비젠탈에게 한 이야기다. 그 독일병사는 이 유대인에게 용서를 구했지만, 비젠탈은 그냥 병실을 나와버렸다고 한다. 그리고 우리에게 질문을 던진다. “만약 그 자리에 당신이 있었다면, 당신은 어떻게 행동했을 것인가?”




덧글

  • 행인1 2009/11/17 12:48 # 답글

    딱 '보통 사람'의 후회담인듯 합니다. 내용 중에서 학살 이후의 술 배급에 눈길이 가는군요.
  • 파리13구 2009/11/17 12:54 #

    한국의 80년 광주에서도, 학살이후 술이 배급되지 않았을까 예상됩니다.
  • ......... 2009/11/17 13:27 # 삭제

    '전'에 배급됐음. 스팀팩 삼아서.
  • 카군 2009/11/17 17:35 # 답글

    흠.. 이책 기억해 놨다가 나중에 한번 떠들러 봐야겠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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