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료] 호네커[ Erich Honecker ] Encycloped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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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2. 8. 25 독일 노인키르헨~1994. 5. 29 칠레 산티아고.

독일의 정치가.

동독의 독일사회통일당(Sozialistische Einheitspartei Deutschlands/SED) 제1서기를 지낸 공산주의 관료로서 1971년부터 1989년 동유럽을 강타한 민주화 바람이 그의 정권을 무너뜨릴 때까지 동독의 지도자로 군림했다.


공산당 간부였던 광부의 아들로 태어난 호네커는 14세의 나이에 공산주의 청년운동에 가담했고, 1929년에는 정식 당원이 되었다. 그의 직업은 슬레이트 공이었다. 1933년 나치가 정권을 장악한 후 그는 독일의 각 분야에서 젊은 공산주의자들을 규합하여 불법적인 행동단체들을 조직했다. 1935년 국가비밀경찰(Gestapo)에게 체포된 그는 '반역음모죄'로 10년의 중노동형을 선고받았다. 그는 공산주의적 신념을 버리도록 강요받았지만 전향을 거부했다. 1945년 동독에 진주한 소련 적군(赤軍)에 의해 석방된 그는 재빨리 소련 적군에 소속된 독일 공산주의자들과 합류했다. 당시 소련 적군에 소속된 독일 공산주의자들은 소련이 그들의 점령지역에 공산주의 정부를 세우기 위해 소련에서 훈련시킨 사람들이었다. 그는 자유독일청년운동(Freie Deutsche Jugend/FDJ)의 발기인 중 한 사람이었으며, 1946~55년 이 운동단체의 의장을 지냈다. 그는 1946년 공산당 중앙위원회 위원이 되었으며, 동독의 공산당과 사회민주당을 새로 구성된 SED로 흡수·연합할 수 있도록 막후에서 힘쓴 주요정치가들 중 한 사람이다. SED에서의 그의 영향력은 급속히 성장했고, 1967년에는 동독의 지도자 발터 울브리히트의 후계자로서 주목받았다. 1971년 SED 당수와 국가평의회 의장직을 겸임하게 됨으로써 그는 당과 정부를 모두 통제할 수 있게 되었다. 호네커의 통치기간 동독은 상대적으로 억압적인 국가 중 하나였으나 다른 한편으로는 동유럽의 소련 위성국가들 중 경제적으로 가장 번영을 누렸다. 그는 서독과의 무역 및 관광 교류를 증진시켰고, 그 대가로 서독의 경제원조를 받았다. 그의 아내 마르고트는 동독의 교육장관이었다.


1989년 10월, 개혁가적인 성향을 지닌 소련의 지도자 미하일 고르바초프의 지원을 상실했을 뿐만 아니라 늙고 융통성이 없었던 호네커는 동독의 여러 도시에서 벌어진 대대적인 민주화 시위 속에 사임했다. 높아가는 대중의 여론에 직면하여 그는 부패와 권력남용, 기타 여러 가지 책임을 지게 되었다. 1990년 4월 건강이 좋지 못한 그는 베를린 근교 소련군 기지로 도피했다.호네커를 인도하라는 독일의 요청을 거부한 소련은 1991년 호네커의 소련 망명을 승인했고, 1992년 독일에 일시 귀국했던 그는 1993년 칠레로 다시 망명했으며, 그곳에서 죽었다.




덧글

  • 대한민국 친위대 2009/11/05 21:18 # 답글

    어떤 책을 보니깐 에리히 호네커의 마누라이자 인민교육장관인 마고트 호네커가 욕을 많이 먹더군요. 호네커 재임시기 억압적인 교육정책을 펼쳤다고 말입니다. 웃기는 교육정책 하나가 무의식을 검열한다는 것이더군요.....(머엉)
  • 萬古獨龍 2009/11/05 22:19 # 답글

    이것이 역사라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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