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전후 프랑스 사회의 풍경 하나... 레지스탕스

"벨기에인 과 프랑스인, 네델란드인은

속이고, 거짓말하고, 암시장을 열심히 열며,

의심하며, 사기를 치는 것이 ..

자신들의 애국적 의무임을 전쟁에서 배웠다.

이러한 습관은 5년 후에는 고질이 되었다."


- 폴 앙리 스파크

벨기에 외무부 장관...



- 결국..

점령하에서 나치를 상대로, 제대로 사기치지 않으면 , 생존이 어려웠던 사람들이

나치가 물러갔다고 해서,

그 사기치던 습관도 같이 사라진 것은 아니라는 지적으로 보인다.


나의 판단으로는,

프랑스의 레지스탕스 신화는,,

나치 점령하에서 프랑스 사람들이 일치단결해서 독일에 저항했다는 신화를 만들면서,

프랑스 사람들은 남이 아닌, 자기 자신 마저 속이는 단계로 까지 발전한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든다.

동유럽 과 비교해 보면,

나치의 프랑스 통치는 비교적 순탄했던 것으로 보인다.

자료에 따르면,

나치는 프랑스 경찰과 친독 의용군을 믿을 만 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3천 500만명에 달하는 프랑스 국민의 순응을 보장하는데,

단지 6000명의 독일인 경찰,헌병을 배치하는 것만으로,

통치가 가능했다고 한다.


덧글

  • 슈타인호프 2009/10/30 21:22 # 답글

    1941년까지는 말 그대로 평화로웠고, 적극적인 저항의 싹이 나타나기 시작한 건 1941년 6월 22일 소련 침공 이후입니다. 그 전에는 손도 까딱하지 않던 프랑스 공산당이 소련이 침략당하자마자 급흥분-_-

    거기에 그나마 레지스탕스가 본격적으로 활동에 들어간 건 1943년 이후죠.
  • 파리13구 2009/10/30 21:42 #

    그렇군요... ^ ^

    시험 잘 보시기 바랍니다!
  • 수정 2010/01/05 11:49 # 삭제 답글

    제가 알기론 독일에 대한 감정이 급격히 나빠지기 시작한 건 독일이 비시 프랑스를 무력으로 점령한 1942년 말부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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