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세계대전]종전 후의 대량이주- 독일인 문제의 최종해결? Le monde



글쎄, 최소한 유럽대륙에서 민족주의, 민족문제는 19세기적 문제라는 점이 분명하고,

이 문제가 20세기초반에 두차례의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극성을 부리다가,

종전후 갑자기 유럽무대에서 자취를 감추고,

이것이 재등장한 것은 동유럽 사회주의 진영의 해체 이후이다.


이 글에서 주목하는 것은,

제2차 세계대전 종전후, 유럽에서 민족문제라는 것이 언제 있었냐는 듯이

민족주의,민족문제는 사라졌거나, 적어도 이제 역사에서 미미한 차원의 문제인 것 처럼 보였다.

물론, 여기에는 동유럽이, 막강한 힘을 가진 소련 제국의 영향권하에 들어간 탓도 있고,

강력한 제국이, 변방의 민족주의를 수수방관할 리 만무한 것이다.


하지만, 이 소련이란 존재 이외에도,

민족문제와 관련해서 주목해야 할 것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발생한, 전유럽적 차원의 거대한 인구이동이다.

많은 유럽인들이 전쟁전에 자기가 살던 곳으로부터, 자의든 타의든, 아무튼 떠날 수 밖에 없는

역사적 환경이 조성되었다.

그리고, 이러한 이동은, 19세기를 뜨겁게 달군 민족문제를 정리해 주는 방향으로의 인구이동이었다는 것이다. 


다음은, 토니 주트의 <포스트 워>의 관련부분을 정리한 것이다. 


1945년에 벌어졌던 일, 그것은 전례 없는 민족 청소 와 주민 이주의 실행이었다. 이러한 상황은 부분적으로는 자발적인 민족 분리의 결과 였다.

 

가령, 유대인 생존자들은 폴란드를 떠났고, 이탈리아인들은 유고슬라비아의 통치를 받느니 차라리 이스트리아 반도를 떠나기로 결심했다. 나치 독일 점령지의 소수민족으로, 나치에 협력한 소수민족들은, 독일군이 패주하고, 소련군이 들어오면서, 현지인과 소련의 보복이 두려워, 이 지역을 떠났고, 이후 결코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이들에게 선택의 여지는 없었다.

 

우크라이나 와  폴란드, 그리고 루마니아 와 헝가리 국경지방들과 같은 지역에서는, 전쟁기간 동안, 몇 개월 사이에 한때 상이한 종교 와 언어, 공동체들이 서로 뒤섞인 지역이었던 곳이 , 두 개의 뚜렷이 다른 단일 민족의 영토가 되어 버렸다.

 

불가리아는 16만 명의 터키인들을 터키로 이주시켰고, 체코슬로바키아와 헝가리는 1946 2월의 협정에 따라, 헝가리에 거주하는 12만명의 슬로바키아인들과 슬로바키아의 다뉴브 강 북쪽 지역에 거주하는 동수의 헝가리인들을 주고 받았다. 폴란드와 리투아니아 사이, 체코슬로바키아 와 소련 사이에도, 유사한 이동들이 있었다.

 

하지만, 이런 시대 분위기에 가장 영향을 많이 받은 것은 독일인이었다. 1945, 수백 년 동안 독일인 가족들이 정주했던 나라들은 그들을 원하지 않았다. 각 나라 주민들은, 전쟁과 점령의 참화에 대한 보복으로, 지역 내 독일인들에 대한 처벌을 진정으로 원했고, 전후의 정부들은 이러한 분위기를 적극 이용했다. 따라서, 유고슬라비아, 헝가리,체코슬로바키아,폴란드,발트 지역,서부 소련의 독일어권 지역 사회의 운명은 명약관화했고, 독일인들 스스로 그것을 잘 알고 있었다.

 

동유럽 독일인들에게 선택의 여지란 없었다. 영국도 1942년 수데텐란트의 독일 주민을 이주시켜 달라는 체코의 요청에 동의한 바 있고, 1945 5 19,체코슬로바키아 대통령인 에드바르트 베네시 는 우리는 우리 공화국에서 독일 문제를 영원히 제거하기로 결정했다.”고 선포한 바 있다. 체코의 수데텐란트 출신의 약 300백만명의 독일인들이 이후 18개월 동안 독일로 추방당했다. 이 과정에서 약 26 7000명이 사망했다고 한다. 1930년에 독일인들은 보헤미아-모라비아 인구의 29%를 차지했지만, 1950년 인구조사에서는 1.8%에 불과했다.

 

헝가리에서는 62 3000명의 독일인이 추방당했고, 루마니아에서는 78 6000, 유고슬라비아에서는 50만명, 폴란드에서는 130만명의 독일인들이 쫓겨났다. 그러나 단연 최대의 독일 피난민들은 과거 독일 영토였던 곳, 즉 슐레지엔,동프로이센,서부 포메라니아,동부 브란덴부르크에서 왔다.

 

당시 몇몇 서유럽 지식인들은 연합국 및 전후 정부들이 독일인 지역 사회들을 취급하는 방식에 충격을 받았다. <뉴욕 타임스>의 특파원, 앤 오헤어 매코믹은 1946 1023일에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 이 재정착 규모와 진행과정의 상황은 역사상 유례가 없는 것이다. 이 참사를 목격한 사람은 누구라도 그것이 반인륜 범죄이며, 역사의 가공할 심판을 받으리라는 점을 의심할 수 없다.”

 

그러나, 역사는 그러한 심판을 내리지 않았다. 독일계의 1300만명의 추방자들은 서독 사회에서 놀라우리만큼 성공적으로 정착하고 통합되었다고 한다.

 

 




- 역사의 역설이란,

어떤 행동이 예상하지 않은 결과를,

특히 악한 동기의 행동이 긍정적인 결과를 초래하는 어떤 아이러니라고 보는데,

19세기 동안, 항상 유럽의 내부 안보에 대한 위협이었던,

민족문제, 유대인 문제가 해결된 것은,

히틀러,스탈린의 의도하지 않은 공적? 이 아닐까 한다.

물론, 히틀러의 경우,

그가 의도한 것은 유럽의 유대인 문제의 최종해결이었지만,

결국 확실하게! 최종해결된 것은, 독일 외부에 존재하는

독일계 주민들의 문제였다.

그들은, 고향을 떠나, 독일이라는 낯선 곳으로 이주할 수 밖에 없었다.

군소리없이....




덧글

  • 2009/10/30 09:17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파리13구 2009/10/30 09:25 #

    인용한 책에, 42년이라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비밀 협상이기 때문에, 합의차원에서는 충분히 가능한 일이라 봅니다.
  • 행인1 2009/10/30 10:08 #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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