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세의 파리 를 간략히 개관하자면... La culture francaise



중세 파리의 조감도는 영역들의 단순한 배열을 보여준다. 시테 섬에는 왕의 거주지,법원,왕실 예배당,왕의 행정부의 소재지가 있었다.

 

세느강의 우안에는 시청사,시장,상인과 장인들의 집이 있었다. 그리고 좌안의 보다 작은 취락에는 대학과 교수 및 학생의 거주지구가 있었다. 하지만, 실제로는, 토지의 이용과 재판권 지역이 그처럼 단순하지는 않았다.

 

왕은 곧 시테 섬에서 옮겨가 강의 우안에 추가적으로 거주지를 획득했다. 이곳에는 또한 왕을 대표하는 파리 행정관인 프레보의 소재지인 샤틀레가 있었다. 상인들은 좌안에 부차적인 지역과 시장들을 가지고 있었다.

 

대학의 구성원들은 모두 성직 관련자들이었고, 법적으로 세속 재판권으로부터 독립적이었다. 왕은 주요 시장을 소유하고 운영했지만, 푸주한들은 샤틀레 옆에 자기 소유의 반독립적인 취락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거대한 종교기관들이 도시 전역에 산재해 있었는데, 생제르맹데프레, 생주느비에브,생빅토르,생제르맹록세루아,생마르탱데샹,탕플 등이 있었으며, 이들은 모두 고유의 재판권을 가지는 작은 구획의 땅을 가지고 있었다. 따라서 도시의 법으로부터 자유롭고 싶어하는 집단들이 이곳에 틀어박히곤 했다. 매춘부들은 생마르탱 수도원 구역인 부르라베 거리로 몰려들었다. 길드로부터 자유롭길 원했던 장인들은 마레의 북서쪽 변두리에 있는 템플 기사단 소유였다가, 이후 예루살렘의 성 요한 기사단의 소유로 바뀐, 탕플의 영역과 로마의 산 조반니 성당의 소유지 구역으로 몰렸다. 산조반니 인 라테라노 성당은 세느 강의 좌안에서 또 다른 독립 구역을 획득했다.

 

많은 종교 기관들이 정기시를 열수 있는 권리를 왕으로부터 승인을 받았고,   중에서 가장 오래 지속된 것은 생제르맹데프레 수도원이 유치했던 6주간의 생제르맹 정기시 였다. 이 정기시는 자체의 상설 건물을 획득했고, 대부분의 정기시 처럼, 시장이 열리는 기간 동안은 자체의 법정과 재판관이 있었다.


<출처-마크 기로워드, 도시와 인간>




덧글

  • 숙제중 2011/09/11 21:57 # 삭제 답글

    좋은 자료 참고하고 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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