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료]하라 세츠코 Setsuko Hara-오즈 야스지로 감독의 여성 페르소나... 영화



하라 세츠코 (1920 6 17, 가나가와 도의 요코하마에서 마사에 아이다 라는 이름으로 태어남) 는 일본의 유명 여배우이고, 국제적으로 인정받은 초창기 일본 여배우들 중 한 명이다.


Setsuko Hara (
節子, Hara Setsuko?, née Masae Aida le 17 juin 1920 à Yokohama dans la préfecture de Kanagawa) est une célèbre actrice japonaise, l'une des premières à connaître une renommée internationale.


Elle débuta sa carrière dans les années 1930, et apparaît notamment dans de nombreux films de Yasujiro Ozu, Akira Kurosawa, et Mikio Naruse. Elle est le symbole de l'âge d'or du cinéma nippon des années 1950.


그녀는 1930년대에 연기인생을 시작했고, 오즈 야스지로, 구로사와 아키라 그리고 미키오 나루세 같은 감독들의 많은 영화들에 출연했다. 그녀는 1950년대 일본 영화의 황금기의 상징이었다.


Elle a subitement stoppé sa carrière en 1962, et mène depuis une vie retirée à Kamakura, refusant d'être photographiée ou d'accorder la moindre interview. Pour cette raison, le critique Donald Richie, spécialiste du cinéma japonais, l'a surnommée la « Greta Garbo du Japon ».


그런데, 그녀는 갑자기 1962년에 영화계에서 은퇴하고, 가마쿠라에서 은퇴생활을 시작했고, 사진 찍히는 것을 거부하거나, 인터뷰도 최소한으로만 허락하는 은퇴 생활을 했다.이런 이유로, 일본 영화 전문가, 도널드 리치 는, 그녀를 일본의 그레타 가르보 라 불렀다.


On peut supposer que cette interruption brutale est liée à la relation très intime que Setsuko Hara semble avoir entretenue avec Yasujiro Ozu : celui-ci est en effet décédé en 1963, et ses cendres reposent à Kita-Kamakura dans le Temple Engaku-ji.


우리는 이러한 그녀의 갑작스러운 단절이 하라 세츠코 가 오즈 야스지로와 맺은 매우 친밀한 관계와 관련이 있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 오즈는 1963년에 사망했고, 그의 유골은 엔카쿠지 신사의 키타 가마구라에 안치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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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5녀의 막내로 태어나 어려운 가정환경으로 여학교도 중퇴할 수 밖에 없는 상태에 있던 하라 세츠코가 여배우의 길을 걷게 된 것은 요고하마 시립 고등학교 재학 당시 구마가이 히사토라(熊谷久虎) 감독의 눈에 든 것이 계기가 되어서였다.


전쟁 전부터 청결한 미모로 스타로서의 부동의 위치를 얻었던 하라 세츠코는 훌륭한 가문의 양갓집 규수의 역할을 도맡아 함으로써 독보적인 이미지와 인기를 얻었다. 하라 세츠코의 연기 인생에 있어서 전기가 되었던 작품은 Ozu <늦봄/만춘>이라고 할 수 있다. 그녀는 아머지에 대한 사랑이 지극하고 속이 깊은 정숙한 여성으로 Ozu의 영화 속 히로인의 전형적인 모습을 그려냈다. 쿠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우리 청춘에 후회는 없다(わが
靑春なし)>에서는 반전활동으로 남편이 옥사하자 농촌으로 가서 시부모를 도와 마을 청년들의 민주화 지도자 역할을 수행하는 신여성의 이미지를 선보였다. 그녀는 결혼을 앞둔 딸, 전쟁 중에 남편을 잃은 며느리, 딸을 출가시키려는
과부 등 오즈의 영화 속에서 속 깊고 살뜰한 여성상으로 어필했다.


그녀가 전통적이고 정숙한 여성의 모습을 부활시켰다는 평을 받으며 상징적인 존재로 부각될 수 밖에 없었던 이유를 사토 다다오는 『일본영화 이야기』에서 이렇게 밝히고 있다.


‘봉건시대 이래 일본의 서민이 무엇보다 소중한 미덕으로 생각해 왔던 것은 부모에 대한 효행이었다. 메이지 시대 이후 일본정부는 그러한 서민을 국가에의 충성심으로 결집시키기 위해, 천황을 일본인 전부의 부친이라고 가르치고, 충의와 효행을 하나로 결부시키려고 하였다. 충의가 부정되면 효행도 함께 부정되어야 한다는 분위기가 자연스러웠다.’


이런 시대적 배경과 함께 가족과 효행, 결혼이 주제였던 Ozu 영화 속의 하라 세츠코는 전통적인 여성상으로 향수를 자극함과 동시에, 부드러우나 나약하지 않고 쾌활하면서도 의지가 분명한 신여성상을 구축했다고 할 수 있다.


1962
년 쿠마다니 히사토라 감독의 <츄신구라>를 끝으로 돌연 은퇴를 선언한 그녀는 26년간의 여배우 인생에서 107편의 작품에 출연했다. 2004 2월에는 그녀가 21세 때 노기관사의 딸로 출연하여 청순미를 자랑하던 초기작 <지도 이야기> 20년 만에 극장에서 다시 상영되기도 하였다
 







덧글

  • 박혜연 2009/12/10 16:29 # 삭제 답글

    하라 세츠코 지금봐도 너무너무 예쁜여배우였네요? 1936년부터 1962년까지 영화에 출연하고 1963년이후로는 자취를 감춘 사람이니... 그녀를 영원한 성처녀로 기억할수밖에요!
  • 파리13구 2009/12/10 16:30 #

    그렇습니다.^ ^
  • 박혜연 2009/12/14 22:49 # 삭제 답글

    지금 생존해계시니까 우리나이로 90세가 되셨네요? 그정도면 아주아주 많이도 늙으셨을텐데... 끝내 얼굴을 안보이시니까 일본의 그레타 가르보라고 호칭을 얻을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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