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공산당, 그 몰락의 40년 역사... La culture francaise



Il y a 40 ans,Jacques Duclos

40년전, 프랑스 공산당에는 자크 뒤클로 가 있었다.

 

프랑스 파리 르몽드 지 보도

 

40년 전의 일이다. 프랑스 공산당은 영원할 것처럼 보였다. 1969 61, 드골 장군의 사임으로 실시된, 대통령 선거 1차투표에서, 자크 뒤클로 가 21,3%를 득표했다. 이 거친 목소리로 조소를 내뿜는 전직 제빵사이자, 1920년대 스타일의 공산주의 청년 지도자 출신, 1930년대의 충격적 스탈린주의자 그리고 제2차 세계대전 동안 당을 비합법 상태하에서 지도한, 이 공산당 지도자가 간발의 차이로, 조르주 퐁피두와 대결하는 대선 결선투표에 나아가지 못했던 것이다.

 

Cetait il y a 40 ans. Autant dire une eternite pour le Parti communiste francais. Le 1er juin 1969, au premier tour de lelection presidentielle provoquee par la demission du general de Gaulle, Jacques Duclos recueille 21,3% des suffrages. Lancien petit patissier a la gouaille rocailleuse, jeune cadre communiste typique des annees 1920, stalinien de choc dans les annees 1930 et dirigeant clandestin du parti pendant la guerre, manqué dun rien la qualification pour le second tour face a Georges Pompidou.

 

Ce fut le dernier fait darmes electoral du PCF. Depuis, il na enregistre quune longue et comme inexorable succession de reculs, jusqua sa quasidisparition des radars. Durant les annees 1970, les communistes semblent encore en mesure de resister a la concurrence de plus en plus vive du nouveau Parti socialiste rassemble par Francois Mitterrand: ils maintiennent leur socle electoral au-dessus de 20%, mais sont pour la premiere

fois, depuis 1936, devances par le PS aux legislatives de 1978.

 

이 선거가 프랑스 공산당의 마지막 선거에서의 선전이 되었다. 이후, 공산당은 기나긴 그리고 냉혹한 후퇴의 시절을 겪게 되고, 프랑스 선거의 레이다망에서 거의 사리지는 수준까지 이르게 된다. 1970년대 동안, 공산주의자들은 프랑수아 미테랑이 지도하는 새로운 사회당의 점점 강력해 지는 도전에 맞설 수 있는 수단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 공산당은 20%대의 득표를 유지했지만, 1978년 총선에서, 1936년 이래 처음으로 사회당에게 추월 당했다.

 

La grande fracture se produit lors de lelection presidentielle de 1981. Au premier tour, le secretaire general du PCF, Georges Marchais nobtient que 15,3% des voix contre 25,9% au candidat socialiste. Cest un echec

retentissant que plus rien ni la participation au gouvernement de gauche entre 1981 et 1984, ni le retour dans lopposition ensuite ne parviendra a corriger. Pour les communistes, chaque election ou presque est la nouvelle station dun chemin de croix: 11% aux europeennes de 2004, 9,2% aux legislatives de 1986, 6,8 % pour Andre Lajoinie a la presidentielle de 1988, ce qui constitue alors son plus mauvais score depuis sa creation

en 1920.

 

그 쇠락의 정점은 1981년 대통령 선거였다. 1차 투표에서, 공산당 서기장, 조르주 마르쉐는 15.3%만을 득표했지만, 반대로 사회당 후보, 미테랑은 25.9%를 득표했다. 이것은 느리게 진행되는 실패의 역사였다. 공산당은 1981- 1984년까지 좌파 정부에도 참여하지 않았고, 그렇다고 야당 역할을 한 것도 아니었고, 이것은 돌이킬 수 없는 실책이었다. 공산주의자들에게, 거의 모든 선거가 골고다 언덕을 향해 나아가는 십자가의 길의 출발점이었다 : 2004년 유럽의회 선거에서 11%, 1986년 총선에서 9,2%, 그리고 1988년 대선에서 앙르레 라주아니 가 6.8%를 득표해서, 1920년 창당이래 최악의 득표를 기록했다.

 

Sept ans plus tard, en 1995, son nouveau secretaire general, Robert Hue, ne parvient pas, avec 8,6 % des voix, a relancer veritablement la machine. La participation du PCF au gouvernement de gauche plurielle de Lionel Jospin, entre 1997 et 2002, ny changera rien. Au contraire, au premier tour de lelection presidentielle de

2002, Robert Hue seffondre a 3,4%. Cinq ans plus tard, avec un score de 1,9%, Marie-George Buffet, qui lui a succede a la tete du parti, descend encore une marche, lavant-derniere avant la disparition.

 

7년 뒤인 1995, 공산당의 새 서기장인 로버르 위 가 8.6%의 득표하는데 그치면서, 이 쇠퇴의 역사를 다시 시작하게 만들었다. 1997-2002년 리오넬 조스팽의 좌파 공동 정부에 대한 공산당의 참여도 아무것도 바꾸지 못했다. , 2002년 대선 1차투표에서, 로베르 위 는 3.4%를 득표했다. 5년 뒤, 마리-조르주 뷔페는 1.9%를 득표했고, 그녀는 당권을 이어받았지만, 몰락은 계속되었고, 그녀는 공산당이 사라지기 전의 마지막에서 두번째 서기장인 것으로 보인다.

 

Dautant quau fil de ces trois decennies (1977-2008), les communistes nont cesse de perdre du terrain dans les villes dont ils avaient longtemps fait des bastions. Aux municipales de 2008, la chute de Montreuil (Seine-Saint-Denis) qui fut longtemps le fief de Jacques Duclos, est le symbole de ce long processus deffondrement de

lelectorat communiste

 

뿐만 아니라, 지난 30년 동안(1977-2008), 공산주의자들은 오랫동안 자신의 아성이었던 지자체들로 구성된 영토들을 상실을 멈추고 있지 않다. 2008년 지자체 선거에서, 센생드니의 몽트뢰이으 가 다른 당에게 넘어간 것은, 이곳이 오랫동안 자크 뒤클로의 영지였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공산주의 투표층의 기나긴 잠식의 상징이 아닐까 한다 




덧글

  • 비르투 2009/09/12 20:09 # 답글

    공산주의는 싫어하지만 마르크스학이 쇠퇴하는 건 참 안타까워요.
    마르크스의 자본주의 비판(노동소외 등)은 지금도 생각할 구석이 많은데...
  • aatheung 2009/09/13 17:54 # 답글

    얼마전까지 우체부 출신의 인심 좋은 대표가 등장해 인기몰고 있다던 그 프랑스 공산당 아니였나요?
  • 파리13구 2009/09/13 18:17 #

    그것은 공산당이 아니라, 올리비에 브장스노가 이끄는

    반자본주의 신당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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