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차 세계대전의 개전일에 대한 유럽의 논쟁... Le monde


< 이 지도에서 파란색은 스탈린의 서명이고, 붉은 색은 리벤트로프의 서명이다.

중앙의, 작은 수정 흔적은 폴란드의 루박초프 지역을 가리키고 있고,

독일은 이 지역을 괴링을 위한 사냥터로 확보하기를 원했다고 한다.>


23 août, le jour où la Seconde Guerre mondiale a commencé


[
폴란드]8 23, 2차 세계대전이 시작된 날 !

 

Le Pacte germano-soviétique du 23 août 1939 a permis le dépeçage de la Pologne entre l'Union soviétique de Staline et l'Allemagne nazie. Moscou persiste à refuser de reconsidérer cet épisode peu glorieux de l'histoire soviétique. Dommage, estime Leopold Unger, grande référence du journalisme polonais.


1939
8 23일의 독소불가침 조약이 스탈린의 소련과 나치 독일의 폴란드 분할을 가능하게 만들었다는 것은 주지하는 바와 같다. 하지만, 모스크바는 이 소련 역사의 영광스럽지 못한 이 사건을 인정하기를 거부하고 있다. 이는 폴란드 언론의 위대한 기자인 레오폴드 웅거에게는 유감이다.

 

21.08.2009|Leopold Unger|Gazeta Wyborcza

A quel moment, au juste, la Seconde Guerre mondiale a-t-elle commencé ? Cela dépend pour qui. Pour les Polonais, c'est le 1er septembre 1939, date de l'invasion allemande, suivie par l'invasion soviétique de la partie orientale de la Pologne le 17 septembre 1939. Pour les Français et les Britanniques, c'est le 3 septembre, le jour de la déclaration de guerre à l'Allemagne par les deux pays. Pour les Belges, en mai 1940, au moment où la Wehrmacht a brisé le mythe de leur neutralité. Pour les Américains, c'est le 7 décembre 1941 – l'attaque japonaise sur Pearl Harbor. Pour l'URSS, c'est le 22 juin 1941, date de la trahison de leurs alliés nazis.

 

정확히 언제, 2차 세계대전이 시작되었을까 ? 이것은 누구냐에 따라 다르다. 폴란드인에게는 , 1939 9 1, 독일의 침공일이며, 이후 1939 9 17일 폴란드 동부지역에 대한 소련의 침공이 뒤따랐다. 프랑스인과 영국인에게는, 9 3일로, 양국이 독일에 대한 선전포고를 한 날이다. 벨기에인들에게는, 1940 5월로, 독일군이 벨기에의 중립신화를 파괴한 날이다. 미국인들에게는, 1941 12 7일로, 일본의 진주만 기습공격이 있던 날이다. 소련에게는, 1941 6 22일로, 그들의 동맹국 나치가 배신한 날이다. 

 

Pour moi, la guerre a commencé le 23 août 1939, avec un télégramme de mon père qui m'ordonnait d'interrompre mes vacances à Zakopane [dans les Tatras, dans le sud de Pologne] et de rentrer immédiatement à la maison, à Lvov [soviétique après le 17 septembre 1939]. Cet ordre était parfaitement inutile, car l'évacuation était déjà en cours. Mon père – comme la plupart des pères en Pologne à l'époque – avait raison. Le pacte de non-agression signé ce jour-là à Moscou par Ribbentrop et Molotov signifiait la guerre, car il laissait aux Allemands le champ libre à l'Ouest. Et, dans l'est et le nord de l'Europe, ce fut bientôt l'occupation soviétique. Pour la Pologne, ce fut une quatrième partition. On connaît la suite, même si certains n'y voient toujours pas très clair.


나에게, 전쟁은 1939 8 23일 시작되었다. 이날 나의 아버지는 폴란드 남부의 타트라스의 자코파네에서의 나의 휴가를 끝내고, 급히 라보프[이곳은 1939 9 17일 소련에 점령되었다]에 있는 집으로 돌아오라는 내용의 전보를 나에게 보냈다. 이 명령은 완전히 무용지물이었던 것이, 피난이 이미 진행 중이었기 때문이다. 나의 아버지는 당시의 많은 아버지들 처럼- 옳았다. 바로 그날 모스크바에서, 리벤트로프[소련 외상] 와 몰로토프[독일 외상]에 의해 조인된, 독소불가침조약이란 전쟁을 의미했고, 이는 이 조약이 독일에게 서쪽으로의 영토확장을 양해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유럽의 동북쪽 지역은, 잠시후 소련에 의해 점령될 것이었다. 이는 폴란드에게는, 네번째 분할이었다. 우리는 그 이후의 사태에 대해 알고 있고, 비록 몇몇 사람들은 항상 그것을 매우 명확하게 알지 못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Les historiens sérieux n'ont aucun doute. Il existe des textes et des cartes liés à ce traité, le défilé organisé conjointement par des troupes soviétiques et allemandes à Brest-Litovsk est un fait, tout comme le mépris de Molotov pour le "bâtard de Versailles" [la Pologne]. Il y a des microfilms, des copies de tous ces documents, 10 000 pages en tout, et une vingtaine de films. Juste avant la fin de la guerre, Hitler a donné l'ordre de les détruire, mais le diplomate et traducteur Karl von Loesch a passé outre, il a enterré les microfilms dans les jardins du château de Schönberg. Et, en mai 1945, il les a remis aux Britanniques.


진지한 역사가들에게는 추호의 의심도 없다. 이 조약 관련 문서들과 지도들이 존재하고, 브레스트-리토프스크에서 소련군과 독일군이 공동으로 진행한 행진도 역사적 사실이며, 폴란드라는 « 베르사유의 사생아 »에 대한 몰로토프의 경멸도 사실이다. 마이크로필름들이 존재하고, 이 모든 문서들의 복사본들, 전체 1000 페이지 분량이며, 20여 개의 기록영화들도 존재한다. 전쟁이 끝나기 직전, 히틀러는 그것들을 파괴하라고 명령을 내렸지만, 외교관이자 통역가인 칼 폰 로쉬가 이 명령을 거역, 그는 이 마이크로필름들을 쇤베르그 궁전의 정원에 묻었다. 그리고 1945 5, 그는 기것을 영국인들에게 넘겨주었던 것이다.

 

A présent, la controverse n'est plus que de nature politique. Pour l'Europe et l'Allemagne d'aujourd'hui, le pacte fut l'opération la plus cynique de toute la guerre et un acte fondateur de l'empire soviétique d'après 1945. Aux yeux de Moscou, il s'agit d'une manœuvre de Staline, qui a ainsi retardé de deux ans l'agression allemande et qui lui a permis de préparer sa défense (avec le résultat que l'on connaît).


현재, 이 조약과 관련된 논쟁은 정치 논란에 다름 아니다. 오늘날의 유럽과 독일에게, 조약은 전체 전쟁 중에서 가장 추잡한 작전이고, 1945년이후의 소련 제국의 토대가 된 것에 불과하다. 하지만 모스크바의 시각에서 보면, 조약은 스탈린의 책략으로, 이것이 독일과의 전쟁을 2년 지연시켰고, 이것으로 말미암아 소련의 방어를 준비하는 것이 비로서 가능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이 결과에 대해서 알고 있다.)

 

Le Premier ministre Poutine, pour qui l'éclatement de l'Union soviétique a été la plus grande tragédie du XXe siècle, ne veut pas reconnaître le caractère voyou de ce pacte. En ce qui me concerne, je le comprends. S'il le faisait, cela remettrait en question toute la version officielle russe de l'historiographie de la seconde moitié du XXe siècle, l'exégèse kremlinienne sur la "validation" de la politique de conquêtes menée par l'empire soviétique. Ce faisant, Poutine détruirait l'un des piliers du nouveau patriotisme russe – une tâche énorme à laquelle il s'est attelé – qu'il tente d'insuffler à la conscience nationale de la jeunesse russe.


러시아의 푸틴 총리는 소련의 붕괴를 20세기 최대의 비극으로 간주하는 사람이고, 이 조약이 가지는 추잡한 성격을 인정하기를 원치 않는다. 내 개인적으로는, 나는 이점을 이해한다. 만약 그가 그렇게 한다면, 이것은 20세기 후반의 모든 소련의 공식적 역사 해석을 물거품으로 만들 위험이 있는 것이다. 소련 제국이 자행한 정치적 정복들을 승인한 크레믈린의 역사해석도 무용한 것으로 만들 위험이 있다. 만약 조약의 추잡함을 인정한다면, 푸틴은 새로운 러시아 민족주의의 핵심축의 하나를 파괴하는 셈이고 이 민족주의는 그가 공을 들이고 있는 대상이다 푸틴은 러시아 청년들의 민족의식을 고조시키기 위해 안달이 나있다.

 

La question de l'interprétation de ce "pacte conclu entre les diables" est toujours dans l'œil du cyclone de la politique historique. C'est un sujet de controverse et un obstacle à l'amélioration des relations russo-polonaises. Le 1er septembre, la chancelière allemande Angela Merkel et le Premier ministre russe Vladimir Poutine seront les invités du Premier ministre polonais Donald Tusk à Westerplatte [à Gdansk], où ont retenti les premiers coups de canon. C'est un succès diplomatique de Tusk, mais surtout une preuve de courage de la part de Merkel et de Poutine. Personne ne va résister à la tentation d'évoquer la présence de leurs pays en Pologne, en septembre 1939. Aujourd'hui, les deux n'ont pas la même vision de ce qui s'est passé alors, mais ils savent parfaitement que la crédibilité russe restera douteuse, aussi longtemps que la vérité sur ce pacte satanique restera interdite à Moscou. Aussi longtemps qu'il n'y aura pas dans les manuels scolaires russes de carte de l'Europe orientale montrant les zones d'influence respectives des deux agresseurs tracées de façon détaillée.


이렇게 악마들간에 이루어진 이 조약에 대한 해석문제는 항상 정치사의 태풍의 눈이다. 이는 논쟁의 주제이며, 러시아-폴란드 관계개선의 걸림돌이다. 지난 91, 독일 총리인 앙겔라 메르켈과 러시아 총리 블라드미르 푸틴이 폴란드 총리 도널드 투스크의 초청으로 그단스크의 베스테르플라테를 방문했다. 바로 이곳에서 독일 ,러시아가 첫 전투를 벌인 바 있다. 이는 투스크의 외교적 성공이었지만, 이는 메르켈과 푸틴이 용기가 있음을 보여주는 증거이기도 하다. 이 정상들간의 만남은 1939 9월의 폴란드에 이들 두나라가 있었다는 사실을 상기시켜주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오늘날, 이 두나라는 과거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에 대해 동일한 시각을 가지고 있지는 않지만, 그들은 러시아에 대한 신뢰가 의혹투성이로 남을 것이라는 점을 명확히 알고 있고, 또한 앞으로도 이 조약의 악마적 진실이 모스크바에서는 금지될 것이라는 점이 명백해 보인다. 또한 러시아 역사 교과서에 나오는 지도에서, 당시 동유럽에서의 양 적대국 간의 영향권 분할을 자세히 제시해 주는 것은 앞으로도 기대하기 어려울 것 같다.


La carte originale, de 120 x 110 cm, est une annexe au traité d'amitié, signée par l'Allemagne et l'URSS le 28 septembre 1939, entérinant le partage du butin décidé le 23 août. Ribbentrop a soumis la carte à Staline. Et le généralissime l'a signée. Les lettres de sa signature ont 58 centimètres de hauteur. "Pensez-vous que ma signature est suffisamment crédible ?" a demandé Staline.


가로 120,세로 110 cm 크기의 원래 지도는 불가침조약의 부속자료이고, 1939 9 28일에 독일과 소련에 의해 서명된 것이고, 8 23일에 결정된 전리품 영토의 분할을 확인해 준다. 리벤트로프는 이 지도를 스탈린에게 주었다. 그리고 소련 총사령관은 이 지도에 서명했다. 그의 서명은 지도의 위쪽 58cm 에 위치하고 있다. « 당신은 나의 서명이 충분히 믿을 만 하다고 생각하십니까 ? »라고 스탈린이 질문했다고 한다.


Elle l'est encore aujourd'hui. C'est la raison pour laquelle, le jour de l'anniversaire de ce pacte


이 지도는 지금도 남아있다. 이것이 바로 이 날이 조약 기념일이 되어야 하는 이유이다.




덧글

  • 2009/08/24 14:37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파리13구 2009/08/24 14:49 #

    네.. 수정하지요.. ^ ^
  • 천지화랑 2009/08/24 16:23 # 답글

    음? 벨기에 중립신화는 이미 1차대전때 깨진 것 아니던가요?

    개인적으로 2차대전은 1937년에 시작되었다고 생각합니다.[먼바다]
  • 파리13구 2009/08/24 16:25 #

    글쎄요.. 기사에는 2차세계대전 중이라고 합니다.

    37년이면 어떤 사건을 시작으로 보시나요?
  • 천지화랑 2009/08/24 16:29 #

    중일전쟁이죠 ㅎㅎ~
  • 파리13구 2009/08/24 16:42 #

    네.. 한국사람 입장에서야 그렇습니다. ^ ^

    아무튼.. 제2차 세계대전이 몇 년에 시작되었는지도 ..

    합의를 보기가 매우 어려운 듯 합니다.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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