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문자 사회라고 무시하지 말자! ^ ^ Encyclopedie



만약 누군가가, 기록문화가 없는 선사 시대가 역사 시대보다 우월하다고 주장한다면,

그것은 정신나간 주장일 것이다. ^ ^


하지만, 거의 모든 역사책이 당연하게 주장하는, 비문자 사회를 열등하게만 바라보는 관점이

완전히 역사적 진실을 담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한번쯤 생각하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것이다.

우리가 항상 접하는 선사시대, 비문자 문명에 대한 고정관념이 잘못된 부분도 있는 것으로 보인다.


다음은 영국 인류학자 잭 구디의 몇가지 지적이다.

"역사가들은 종종 역사시대와 선사시대 간의 차이에 대해 이야기하고는 한다. 전자는 기록을 가지고 있지만, 후자는 그것이 없다는 것이다. 물론, 문자가 없는 상태에서 문자가 나타나는 상태로 이행한다는 것은 엄청나게 중요한 변화이다. 하지만, 사람들이 사건을 기록하기 시작했을 때 어떤 변화가 일어나는지 입증하지 않는다면, 이런 구분이 그다지 큰 의미를 가지지 못하게 된다.

 

사실, 구전 사회가 아주 정적이고 정태적이었다는 가정은 대단히 잘못된 것이라 생각한다. 왜냐하면, 그러한 사회는 종이와 연필을 가진 우리와는 달리 어떤 고정적인 저장체계를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에, 그들은 참고할 만한 책이 없기 때문에 , 계속해서 새로운 어떤 것을 만들어내지 않으면 안된다.

 

종교의 예를 들어보자. 구전문화의 경우, 종교는 다양한 의례들이 공존하는 가운데 매우 유동적인 모습을 보이는 것이 보통이다.

 

하지만, 문자는 종교를 보수적으로 만든다. 문자를 가진 종교라면 언제나 이런 저런 방식으로 책으로 돌아가기 마련이다. 성서가 고정적인 텍스트가 되는 것이다. "




이런 상상을 한번 해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우리가 비문자 사회를 살아가고 있는 관계로, 책이 없는 사회에 살고 있다.

그렇다면, 이런 문자가 없는 사회에서 기억과 지식은 어떻게 전승되었을까?


이런 맥락에서 흥미로운  이야기가 바로 플라톤의 <파이드로스>에 나오는...

토트 신과 타무스의 대화 일 것이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플라톤의 『파이드로스(Phaedrus)』에는 소크라테스가 자신의 친구인 파이드로스에게 선조들로 들은 이야기를 전해주는 장면이 있다. 이집트의 나우크라티스 라는 곳에 발명의 신이 살고 있었는데, 그의 이름은 '토트' 였다. 그는 수와 계산법, 기하학, 천문학, 문자 등을 발명했다. 그는 이집트를 통치하던 파라오 '타무스'를 만나, 자신이 심혈을 기울려 발명한 것을 이집트 사람들에게 널리 보급하라고 말한다. 이들의 대화는 다음과 같이 이어진다.


타무스는 각 물건들의 용도를 물었으며, 토트가 그것을 설명할 때마다 그 주장의 타당성을 고려하여 발명품에 대해 찬성과 반대를 표시하였다. 그런데 '문자'에 도달했을 때 토트는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왕이여, 여기에 내가 심혈을 기울려 완성한 작품이 있소. 이것은 이집트인의 지혜와 기억력을 늘려 줄 것이오. 기억과 지혜의 완벽한 보증수표를 발명해낸 것이지요."


이에 대해 타무스는 다음과 같이 대답한다.


"모든 발명가의 모범이 되는 토트여, 기술의 발명자는 그 기술이 장차 이익이 될지 해가 될지를 판정할 수 있는 최선의 재판관은 될 수 없습니다. 문자의 아버지인 당신은 자손들을 사랑하여 발명해 낸 그 문자의 본래의 기능에 정 반대되는 성질을 부여한 셈 입니다. 문자를 습득한 사람들은 기억력을 사용하지 않게 되어 오히려 더 많이 잊게 될 것입니다. 기억을 위해 내적 자원에 의존하기 보다 외적 기호에 의존하게 되는 탓이지요. 당신이 발명해낸 것은 회상의 보증수표이지, 기억의 보증수표는 아닙니다. 그리고 지혜에 대해서라면, 문자를 익힌 당신의 제자들은 사실과는 상관없이 지혜에 대한 명성을 계속 누리게 될 것 입니다. 그들은 적절한 가르침 없이도 많은 정보를 받아들일 수 있게 될 것이고, 따라서 실제로는 거의 무지하다 할지라도 지식이 있는 것으로 인정받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진정한 지혜 대신 지혜에 대한 자만심으로 가득 차 사회에 짐만 될 것 입니다."

  

이 이야기를 보면, 왜 소크라테스가 자신의 철학을 기록으로 남기지 않았나하는

단서를 발견할 수 있다.

잭 구디의 지적처럼, 문자는 종교든 사상이든 그것을 보수적인 것으로 변질 시킬 위험을 가지고 있고,

한 사상을 고정적인, 죽은 텍스트로 변질시킬 위험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소크라테스식의 이른바 산파술은...

즉, 서로간의 대화를 통해서 서로간의 무지를 깨닫는 것으로.

직접 얼굴을 맞대고 대화하는 방식의 철학은..

최소한 사상이 죽은 텍스트로 박제화 되는 위험은, 책을 통한 지식의 전승보다 작다고 보아야 하지 않을까?


그리고, 웹2.0 기술이 이상적으로 적용되는, 블로그를 통한 지식의 확산이라는 것도,

다른 형태의 지식전승 방식보다는,,

보다 소크라테스적인 방식이 아닐까 생각한다.

물론, 문자를 매게한 방식이기는 하지만,

글의 저자와 독자가 , 한 글을 대상으로 대화가 가능하고,

이 토론의 성과가 글에 바로 반영이 가능하다는 것은..

구텐베르크 이후의 문자텍스트 문화와는 다른 성격을 가진, 지식전승 문화를 가능하게 하는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튼... 비문자 사회라고 너무 열등시 해서는 안된다는 것이 내 생각이고,

특히 지식전승이 토론을 통해, 살아 꿈틀거리는 어떤 과정이었다는 점이,

이 문자없는 사회로부터, 블로그 시대의 우리가 배워야 할 점이 아닐까 생각한다.


덧글

  • rumic71 2009/08/20 18:34 # 답글

    사실 문자가 있고 없고의 문제보다는 문자가 있어도 그것을 특정 계급만이 활용하느냐 온 국민이 활용하느냐가 더 중요한 문제죠. (샤를르마뉴도 까막눈...)
  • 파리13구 2009/08/20 18:44 #

    역시 rumic71 님은 정말 훌륭한 역사가 이십니다 !

    문제를 단번에 집어내는 능력은 정말 탁월하다고 봅니다.

    하지만, 이글은 위의 지적과는 별로 상관이 없다는 점을 다시 한번 말씀드립니다.
  • 멍청한행복 2009/08/21 00:02 # 답글

    그리고 문자 역시 해석하는 사람이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완전히 달라지는 고로(왜곡 문제라던가 특정 부분만 발췌한다던가 그래서),위에서 언급하신 문제가 모두 맞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지금 세계는, 꼭 문자로 기록을 남기지는 않지요. 물론 멀티미디어적 기록 역시 문자로 봐야 하느냐은 것에서는요. 사실 동영상은, 그 언어라던가 문자를 배우지 않더라도, 어느정도 이해가 가능하니까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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