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님이 영화감독이 될 수 있을까?

이 글은 시각장애인이 아니라 어떤 헐리우드 풍토를 비하하기 위한 것임을 분명히 해둔다!


우디 앨런 감독의 2002년 영화 <헐리우드 앤딩>을 보면,

장님이 된 감독 이야기가 나온다. 이는 감독의 권한이 대폭 축소된 헐리우드 영화제작 풍토에 대한 일종의 비판이라 할 수 있다. , 1970년대 헐리우드에서 미국 영화감독들은 작가, 예술가 대접을 받았다면, 21세기초 이 꿈의 공장의 감독이란 존재는 단지 대본대로 찍는 사람으로 전락했다는 어떤 푸념에 다름 아니다.

 

하지만, 실제로 1960년대말에 이 헐리우드 앤딩에 나올법한 감독이 있었다고 한다.

 

다음은 헐리우드의 영화 제작자, 어윈 윙클러 Irwin winkler 의 증언이다.

 

1931년 미국 뉴욕에서 출생한 어윈 윙클러는 1967년 엘비스 프레슬리가 주연한 [런던 대소동 Double Trouble ,1967]이래 ,<록키>,<분노의 주먹>,<좋은 친구들>, 50여편의 메이저필름을 제작하고 수많은 오스카상 후보작을 낳은 헐리우드의 전설적인 프로듀서이자 연출가이다.

 

1967년 그는 MGM 영화사에서 영화경력을 시작했다. 그리고 그는 엘비스 프레슬리 주연의 영화 런던 대소동 제작에 참여하게 된다. 열정에 넘친, 그는 당연하다는 듯이, 프레슬리의 매니저인 톰 파커에게 이 영화를 맡게될 감독을 만나게 해달라고 요청했다.

 

파커를 통해, 윙클러는 감독, 노먼 타우로그[ Norman Taurog ]를 만나게 된다.

약속한 날 아침, 오전 11

 

약속장소에 나간 윙클러 앞에, 한 흑인이 운전하는 시보레 Chevrolet 한대가 멈췄다. 운전수 옆에는 윙클러가 만나고 싶었던 1930년대 거장 감독 중 한명인 노먼 타우로그가 있었다. 그는 1938년 스펜서 트레이시가 주연한 <보이즈 타운>의 감독으로 명성이 자자했다.

 

이윽고, 타우로그가 차에서 내렸다. 가까스로 말이다.

그의 얼굴은 검버섯으로 덮였고, 윙클러에게 앙상한 손을 내밀며 악수를 청했다.

 

윙클러 : (더듬거리며) “타우로그 씨, 반갑습니다. 운전기사까지 두시니 참 부럽습니다.”

 

타우로그 : “부럽기는,,, 나는 운전을 하고 싶네만, 앞이 잘 보이지가 않아서 말이지…”

 

윙클러 : “뭐라구요? 앞이 잘 안보이신 다구요?”

 

타우로그 : “아니, 한쪽 눈은 완전 실명상태이고, 다른 한쪽도 시력이 급속히 나뻐지고 있네.”

 

이 영화를 감독한 후 2년 뒤, 타우로그 감독은 완전한 장님이 되었다고 하고, 하지만 당시 헐리우드 풍토에서 장님 감독은 전혀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고 한다.




덧글

  • caya 2009/08/08 14:41 # 답글

    이럴수가;;;
  • dcdc 2009/08/08 16:44 # 답글

    상징적으로 영감님이 뉴욕을 떠나는 엔딩이기도 하고요. 말그대로 헐리웃 '엔딩'이었을 영감님 심정을 생각하면 참 씁쓸해진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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