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위의 사진, 에브게니 칼다이, <제국의회에 휘날리는 붉은 기>, 1945년 5월 2일, 베를린
아래 사진, 조지프, 로젠탈, <이오지마에서 미해병대의 국기게양>, 1945년 2월 23일, 이오지마
로젠탈의 사진이 칼다이의 그것보다 먼저 촬영되었다.
이 글은 칼다이 사진에 관한 것으로,
이 사진의 간략한 역사이다..

-1945년 : 붉은 군대는 독일의 제국의회 지붕에 소련기를 게양하고, 사진가는 이 역사적 순간을 영원불멸의 것으로 만들었다.
- 소련인들에게, 미국인들과 다르게, 전쟁은 유럽에서 일어난 일이었다.
- 사진가 에브게니 칼다이는 이 사실을 자각하고, 그가 공격부대와 함께 베를린에 진입했을때, 이 전투를 영원불멸의 것으로 남기기를 원했다.
- 사진가 에브게니 칼다이(1996년) Evgueni Khaldei
- 이 유대계 우크라이나인은 소련의 공식 사진가였다.
- 포츠담 회담
- 뉘른베르그 재판

- 이오지마에 상륙한 미해병대를 찍은 조 로젠탈의 사진이 칼다이를 사로잡았다 : 이 전쟁을 상징하는 다른 사진이 필요하다.
즉 ,소련의 위대한 승리를 상징하는 사진 말이다.
- 로젠탈과는 다르게, 그는 그의 사진을 준비했다. 그는 그가 모스크바에 이를 위해 특별히 제작 의뢰한, 3개의 붉은 깃발을 가져갔다.
- 베를린에서, 그는 완벽한 사진을 찍기위해 다양한 시도들을 했다.
- 하나는 공항에서 촬영했고, 다른 하나는 브란덴부르그의 문에서 그랬다.
- 하지만, 가장 상징적인 장소는 최후의 전투가 있었던 독일 제국의회였다.
- 사진가 에브게니 칼다이는 그의 사진을 위해 모든 노력을 기울였다.
1) 그는 병사들 중에서 한 명을 선발했다.
2) 그는 그들에게 건물의 옥상에서 붉은 기를 게양하도록 요구했다.
그는 이렇게 폐허가 된 베를린을 굽어보는 멋진 구도를 가진 불멸의 사진을 제작한 것이다.
그는 완벽한 구도의 사진을 얻기 위해 노력했고, 몇장의 사진들을 남겼다.
밑의 사진은 뭔가 박진감, 긴박감이 없었다.
결국 선택된 사진은 우리가 모두 알고 있는 다음 사진이다.
하지만........
아뿔사!!!
모스크바로 돌아온, 칼다이는 타스 통신을 방문하고, 타스 통신의 편집장은 [사진 속에서 군인이 깃발을 걸 때 균형을 잡도록 도와주고 있는] 장교의 양 손목에 차인 두 개의 시계를 발견하게 된다.
다음 사진에서 소련군 장교의 양손목에 주목하라.
손목시계가 2개이다. ㅋㅋㅋ..
-로젠탈의 사진처럼, 그의 사진도 전세계에 배포되었다.
하지만, 그의 사진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정이 있었다.
- 한 장교가 양손목에 시계를 차고 있었고, 이는 소련군이 독일에서 자행한 약탈의 결과이자 상징이었다.
따라서 검열은 이 시계들 중 하나를 지웠다.
- 위의 사진 중 붉게 확대된 부분은 원본 사진의 이미지이다.
그리고 그 옆은 수정(조작된) 사진 이미지이다. 시계가 사라졌다! ㅋㅋ..
즉, 당시 소련군들이 약탈,강탈을 감행한다는 소문이 무성했던 상황에서, 타스 통신은 모든 논란을 피하기 위해서 장교의 오른팔 손목에 있는 시계를 지우는 수정(조작)을 감행했다.
칼다이가 그가 네가티프로 보관하고 있었던 원본 사진을 출판한 것은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이후 였다.
이 확대 사진은 이 사진을 읽는데 결정적일 수 있는데, 결국 이 사진은 소련 승리의 상징일까 아니면 소련군 약탈의 상징일까?
아무튼..
역사 사진은 우리에게 과거의 사실을 전달하는 탁월한 도구이지만,
그것도 연출에 의한 것임을 반드시 명심해야 하지 않을까... ^^
그리고,
사진도 하나의 역사를 가지기 때문에,
한 사진에 대한 해석도 시대가 변하면, 바뀌는 것이 타당해 보인다.
결국.. 사진을 읽기위해서는 역사비평적 시선이 필요한 것이 아닐까?
덧글
언급하신 사진 두점 외에도 여러 다른 전쟁및 역사의 순간의 사진들의 이야기가 있는 책입니다.
http://book.geld.kr/1108
'광기와 우연의 역사' 라는 책인데 1.2.3권중 1권은 슈테판 츠바이크가 지었고 원하시는 내용이 아닙니다. 2.3권이 그 사진 다큐멘타리 이야기이고 지은이는 귀도 크노프라는 독일 국영 TV의 프로듀서입니다. 그것이 말씀하신 그런 내용도 있고 실제 취재 뒤 방송을 만들면서 누락되었던 이야기가 담겨 있습니다. 원저는 아마도 다른 이름으로 독일에서 나와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들이 대체 왜 시계에 환장한 것인지 알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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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쿡이 먼저 찍은 사진은 '조작'되지 않았는지 궁금합니다.
소련군을 로스께라 부르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봅니다.
뭐.. 북한에 들어온 소련군은 모르겠지만,
소련군 과 소련 국민들의 거대한 희생이 없었다면,
나치에 대한 연합군의 승리도 없었거나, 매우 어려운 것이었다는
역사적 진실이 훼손되어서는 안된다고 봅니다.
이것은 단지 사진 한장이 그랬다는 것이지,
소련 승리의 역사적 업적을 폄하하고자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미국 사진에 대해선..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 영화가 한 편 있구요..
이 사진도 연출되었다는 것은 분명합니다.
전쟁 중의 급박한 상황이었다면 아무래도 저런 아름다운(?)사진은 찍기 힘들었을 거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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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련군을 '로스께'라 부르는 게 적절치 못하다고 지적하셨으나, 해방 시기 북한 지역에서는 갖가지 약탈을 하던 소련군을 '로스께'라고 불렀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저는 의도적으로 그렇게 약탈하던 소련군을 일러서 '로스께'라고 통칭해 본 것입니다.
확실히 '외국어'는 필요하면 익히게 되어 있나 봅니다. (ㅎㅎ)
심지어 로젠탈의 사진을 본 미 해병대에서는 '아아 이 사진은 정말 멋지다. 이 사진 하나면 앞으로 미 해병대의 50년을 상징하겠다' 하면서 여러 오브제를 제작하기도 합니다(실제로 미 해병대의 상징으로 우표뿐 아니라 동상까지 만들어져 있으니까요)
물론 먼저 격전끝에 스리비야산을 점령한 미 해병대원들은 분노하며 '제길 고생도 안한 재들이 왜 영웅이 되야해!' 하고 난리를 쳤다지만...먼저 찍혔던 사진의 성조기가 작았다는 것, 그리고 웅장함이 떨어지는 면 등을 보면 저러한 부분에서의 '연출'이라는 면은 필요한 면이기도 합니다.
사실 사진에선 그러한 '연출'을 놓고 '왜곡'이냐 '필요한 연출'이냐를 놓고 계속해서 논쟁의 연속에 있기도 합니다.
뭐 세계적으로 유명한 사진 중 몇은 너무 보정을 심하게 해 놔서 심지어는 사람 눈동자 방향까지 바꿔버린것도 있는지라요...-ㅅ-
아바이 동무의 깃발은 너무 티가 나서...
그래서 몇일뒤 사진사가 도착해서 다시 현장에 가서 찍은 사진이
바로 이 사진이라고 합니다.
아무튼..
긴박한 상황인데도 불구하고,
구도가 완벽하고, 너무 매력적으로 찍힌 사진들에 대해서는
한번쯤 의심해 봐야 한다고 봅니다.
물론.. 사진 한장이 조작되었다고,
전체 역사 해석, 평가가 바뀌게 되는 것은 아니겠죠.. ^ ^
근데 저런 전쟁사진에 있어선 종군사진가가 전투 현장에 있기가 참 힘들어, 잘못하면 같이 죽걸랑...-ㅅ-
사질 저런 전쟁사진중 최고봉으로 꼽히는게 더글러스 덩컨이라는 라이프지의 기자가 낸 '이것이 전쟁이다!' 라는 사진집이 있는데 그게 한국전쟁때 전투현장에서 찍은 사진들(그중 크리스마스의 GI는 걸작중 걸작으로 꼽히지)인지라 긴박감과 긴장감이 보이지만 그 순간 기자가 얼마나 가슴이 뛰었을지는 지금봐도 상상이 안가지...
그런 상황일거 같아서 당시 로버트 카파가 한국전쟁 찍으러 가겠다고 한 것을 라이프에선 결사 반대했고...결국 카파는 인도차이나 전쟁 취재하러 일선의 수색대와 같이 행동하다가 지뢰를 밟아 폭사하지...
아이러니한게 그 폭사한 순간 앞에 가던 프랑스 외인부대 병사가 이랬대지...
"젠장 저거야말로 카파가 원하는 장면인데!"
이오지마의 가장 높은 고지를 탈환하고 그 순간 올린 깃발을 찍은 사진이 있고 '그 사진이 원래 사진이다' 하고 올라와 있습니다만...
위에 제가 인용한 책에는 그 부분에 대해서 당시 지휘자가 '상징적이므로 깃발을 큰 것으로 바꾸자'고 지시해서 바꿨답니다. 로젠탈스는 그 순간에 있었기에 그 꽂는 장면을 찍을 수 있었을 뿐이라죠.
그것을 '연출'이라고 단순히 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러한 고지 점령의 '상징적인 순간' 그리고 이오지마의 최고지에 꽃힌 깃발인 만큼 더 크고 아름다운 깃발을 꽂고 싶은건 지휘관으로서도 병사들의 사기를 높이는데 분명 한몫할수 있는 것이므로 당연한 지시였을 겁니다. 그것도 연출이라면 연출이지만 필요한 연출이지요...^^
물론 그 때문에 열라 전투하면서 고지 점령하고 그 긴박한 상황에 깃발을 세운 그 전투원들은 '아쒸 고생은 우리가 절라 했는데 뒤에 온 것들이 영웅이 되어버렸네?' 해서 난리난것은 영화 '아버지의 깃발'에서도 잘 나와 있습니다. 제가 볼 땐 그 영화는 그런 갈등구도를 숨기지 않고 잘 내보낸 영화입니다.
그리고 로젠탈의 사진도 노출 오버입니다. 로젠탈 본인도 그점은 인정하고 있고 본인 스스로도 '그 사진 살아남은게 용하지' 할 정도였으니까요. 네거필름 중 살아남은 사진이 두장밖에 없었다던가? 나머지는 다 노출오버였고 그 '문제의 사진'도 간신히 살린 거라니까요.
만슈타인군의 질문에 답하신 것에 대해서 '한번쯤 의심해 봐야 한다'는 것은 맞는 말이지만 정말 진실인 경우도 있습니다. ^^
인용한 책에도 나온 것입니다만. 깃발을 든 것은 그루지아인이고 병사를 잡아주는 그 문제의 손목시계인은 러시아인으로 일부러 '설정' 했답니다.
그 이유는 스탈린이 그루지아인 출신이라서 일부러 그루지아인을 택했다더군요.
그 병사는 나중에 동베를린 명예시민증을 받았다는데 통독 이후 그게 박탈되서 다시 명예시민으로 인정해 달라고 청원했다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