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르조 재판을 지켜보는 한국측 반응을 알리는 한 프랑스 뉴스... Le monde



진행자 – “나탈리 투레, 당신은 지금 서울에서 생방송 중이신데, 당신은 과거 크루조 부부가 살았던 곳에 계신가요?”

 

투레- . 그럼요, 저는 서울의 프랑스인 거주촌인 서래마을에 있구요, 이곳은 한국의 수도인 서울의 남쪽에 자리잡고 있습니다. 바로 이 마을에서 사건이 발생했는데요,


여기 사는 프랑스인들끼리는 이 사건은 금기에 속합니다. 베로니크 쿠르조는 한때, 이곳의 프랑스 학교에서 자원봉사자로 일한 경력이 있기도 합니다.따라서 이 한국에 거주하는 프랑스인들에게 베로니크는 잘 알려진 인물입니다. 이곳 사람들은 어떻게 그녀의 임신사실을 몰랐을 수 있는지에 대해 아직도 의아해합니다.


사건이 발생한2006년에 한국에 거주한 프랑스인들에게는 물론, 지금 거의 떠나고, 그들을 대체한 새로운 프랑스인 거주자들도 이 사건에 대해 의아해 하고 있습니다. 즉 이 사건은 한국에서의 프랑스의 이미지를 실추시킨다는 것입니다.


결국 모든 사람들이 어떻게든 이 사건을 잊기를 바랍니다.

 


진행자- 방금, 당신은 이 사건에 대해 다시금 주지시켰는데, 당시에 이 사건이 큰 논란을 불러온 사실이 있죠?

 

투레- 그럼요. 왜냐하면, 한국에서의 논쟁, 말하자면, 당시 한국국민들은 큰 충격에 빠졌구요,

이 충격이 곧 분노로 바뀌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두 가지 이유 때문이었습니다.


첫째, 한국경찰의 조사를 받은 지 단지3일만에, 아버지인 장루이 쿠르조가 프랑스로 돌아갈 수 있도록 허가가 됐다는 점입니다. 당시 그는 용의자였었는데 말이죠.


따라서 한국 국민들은 이해하지 못했습니다.왜 한국 경찰이 쿠르조가 한국땅을 떠나는 것을 방관했는지에 대해서요., 그리고


두번째는 말하자면 외교적인 이유인데요.당시 프랑스 사회가 한국 경찰에서 실시한DNA조서 결과를 신뢰하지 않았었기 때문입니다.


얼마 뒤 쿠르조 부부와 그들의 변호사는 이 결과를 부인하며, DNA검사가 프랑스 땅에서 다시 진행되어야만 한다고 주장한 바 있습니다.


따라서 한국인들은 이 사실을 하나의 치욕으로, 오늘날까지 아직도 잊지 못하고 있습니다.

 

 


파리13구 추신 듣기에만 의존해 번역해서, 설혹 서툰 부분이 있어도 양해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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