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몽드]서래마을 영아살해사건 - 심리가 붕괴된 한 여성의 이야기 La culture francaise


[영아살해] 어제, 앵드르에르와르의 지방법원에서 세건의 영아살해 혐의로 구속중인 베로니크 쿠르조의 재판이 시작되었다. 정신병 전문가들에게, 그녀는 임신 거부를 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고 한다.

 

Infanticide. Le proces de Veronique Courjault poursuivie pour un triple

infanticide sest ouvert, hier, devant la cour dassises dIndre-et-Loire.

Pour les experts psychiatres, elle na pas fait de deni de grossesse.

 

프랑스 르몽드 지 보도....

 

Histoire dun naufrage psychologique

Proces de Veronique Courjault pour infanticides devant les assises

 

하나의 심리 붕괴의 이야기

지방법원에서 열린 영아살해 혐의의 베로니크 쿠르조의 재판

 

A maigrie, loeil morne mais la voix ferme,Veronique Courjault, 41 ans, a vecu, mardi 9 juin, le premier jour de son proces pour triple infanticide devant la cour dassises dIndre-et-Loire, a Tours. Elle risque la reclusion criminelle a perpetuite. Le verdict est attendu mercredi prochain.

 

여위고, 침울한 눈매지만 단호한 목소리로, 41세의 베로니크 쿠르조는 지난 6 9일 화요일 투르에 있는 앵드르에르와르의 지방법원에서 3건의 영아살해 혐의로 첫 재판을 받았다. 그녀는 무기징역형에 처해질 위험에 있다. 판결은 다음주 수요일에 있을 예정이다.

 

Le terrible secret de cette mere de famille avait ete devoile a lete 2006. Le 23 juillet, son epoux Jean-Louis Courjault, ingenieur specialise dans les moteurs diesel expatrie en Coree du Sud, decouvre dans le congelateur de leur domicile, a Seoul, les cadavres de deux bebes de sexe masculin dissimules dans des sacs en plastique opaques. Sa femme est en vacances en France avec leurs deux fils, Jules et Nicolas, alors ages de 9 ans et demi et 11 ans. Il previent la police sud-coreenne avant de se soumettre a des tests ADN, puis de rejoindre

sa famille en France.

 

이 한 가정의 어머니의 끔찍한 비밀은 2006년 여름에 드러났다. 7 23, 그녀의 남편 장루이 쿠르조,한국에 파견된 디젤 엔진 전문 엔지니어,가 서울의 자택의 냉동고에서 불투명한 비닐봉지에 은닉된 2명의 남자 아기의 시체를 발견한 것이다. 그의 아내는 그의 두 아들과 함께, 쥘 과 니콜라, 그들은 각각 9살 반 과 11살인데, 프랑스에서 휴가를 보내고 있었다. 그는 이를 한국 경찰에 신고했고, DNA검사를 받지 않고, 프랑스에 있는 그의 가족에게 갔다.

 

 

 

 

Debut aout, les resultats des expertises sudcoreennes designent les Courjault comme les parents des deux bebes morts. Le 22 aout, le couple convoque une conference de presse durant laquelle il nie tout lien avec ces derniers et toute implication dans laffaire, allant jusqua evoquer une possible manipulation liee a un complot.

 

8월초, 한국의 수사관들의 수사결과는 쿠르조 부부가 사망한 두 아이의 부모라는 점을 규명해 냈다. 8 22, 이 부부는 기자 회견을 열고, 이 아이들과의 어떤 관계도 부인하고, 이 사건과 일체의 관련도 없음을 주장했다. 그들은 어떤 음모의 희생양이라고 주장하기까지 했다.

 

Veronique Courjault avoue finalement, en octobre 2006, les deux meurtres perpetres en 2002 et 2003, a Seoul, apres deux grossesses menees a terme a linsu de son entourage.

 

베로니크 쿠르조는 결국, 2006 10, 2002,2003년에 발생한 두건의 살인을 자백했다. 이는 서울에서 있었던 일로, 그녀의 주변인들이 모르는 2번의 임신 이후 벌어진 일이었다.

 

Les questions des enqueteurs lont rapidement conduite a reveler un autre infanticide sur un garconnet

ne de son couple en 1999, alors que la famille residait en Charente-Maritime. Jean-Louis revait dune grande famille. Veronique, sixieme dune fratrie de cinq soeurs et deux freres dune rude famille de viticulteurs,

pas du tout.

 

경찰 조사는 얼마 되지 않아, 1999년 이 부부 사이에서 태어난, 한 남자아기에 대한 또 다른 영아살해를 밝혀내게 된다. 이 당시, 이 가족은 샤랑트마리팀에서 살고 있었다. 남편 장루이는 대가족을 이루기를 원했다고 한다. 베로니크는 완고한 와인생산자 집안의 5명의 자매와 두명의 남자형제 중에 여섯 째 였고, 결코 대가족을 원치 않았다.

 

Elle a raconte, lors de lenquete, setre sentie depassee par le fait detre mereapres la naissance de ses deux aines. Accusant 74 kilos pour 1,56 metre apres larrivee de Nicolas, elle a peu a peu bascule avec son epoux dans une torpeur conjugale, a la sexualite sporadique et terne.

 

조사시, 그녀는 그들의 두명의 자식들이 태어난 후에, 엄마가 된다는 사실에 큰 부담을 느꼈다고 진술했다. 니콜라 출산 이후 1미터 56의 키에 74Kg가 된 그녀는 점점 남편과의 부부생활에서 무기력감을 느끼게 되었고, 드물어지고 김빠진 성생활에도 권태를 느꼈다.

 

Le premier infanticide est survenu alors que son mari travaillait a Blois (Loir-et-Cher) et ne rentrait que les week-ends. Jules et Nicolas allaient respectivement a lecole et chez la nourrice. Veronique a accouche seule dans sa salle de bains, avant de calciner, le soir, dans sa cheminee, le petit corps tandis que ses aines dormaient.

 

첫번째 영아살해는 그녀의 남편이 르와르에셰르에 있는 브루아에서 일할때로, 주말에만 집에 오던 시절에 발생했다. 쥘 과 니콜라는 각각 학교와 유모에게 가고 있었다. 베로니크는 욕조에서 홀로 출산했고, 그날 밤 이 작은 시체를 굴뚝에서 태웠고, 그때, 그녀의 아이들은 자고 있었다.

 

En 2002 et 2003, dans la capitale sud-coreenne truffee de cameras video et adepte du tri selectif des dechets, Veronique Courjault na pas trouve de solution pour faire disparaitre les deux autres nouveau-nes.

 

2002년과 2003, 한국의 수도 서울에는, 감시 카메라와 쓰레기 분리 수거가 있기 때문에, 베로니크 쿠르조는 새로 태어난 두 아이의 시체를 처리할 해결책을 가지지 못했다.

 

Aux psychiatres qui lont rencontree en 2006 et 2007, elle a decrit ses trois grossesses clandestines comme desincarnees: Jai vecu comme si je netais pas enceinte, je ne parlais pas aux bebes. Ce netait pas

comme avec Jules et Nicolas.Aux yeux des autres, pourtant, et meme de leurs enfants, les Courjault ont

toujours fait figure de couple uni, discret, qui ne se dispute jamais.

 

2006년과 2007년에 그녀를 만난 정신과 의사들에게, 그녀는 아무도 몰랐던 3번의 임신을 마치 정신분열 상태에 있던 것처럼 묘사했다 : “나는 내가 마치 임신하지 않은 것처럼 행동했고, 뱃속의 아이들에게도 절대 말을 걸지 않았죠. 쥘 과 니콜라를 가졌을 때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주변인들, 심지어 그들의 아이들에게, 쿠르조 부부는 항상 사이좋고, 신중한 인물들이었다. 그들은 절대 부부싸움도 하지 않았다.

 

Soupconne dans un premier temps de complicite dassassinats, le mari a ete mis hors de cause et ne pense plus qua aider celle quil aime toujours.Les expertises psychologiques et psychiatriques, operees sur

son epouse elles seront developpees les 15 et 16 juin , sont moins amenes. Elles soulignent le clivage psychique, labsence daffectet les emotions refouleesde Veronique Courjault dans son recit des faits.

 

사건수사 초반에 살해 공범으로 의심받았던, 남편은 무혐의 처분을 받았고, 지금은 그가 항상 사랑한 아내를 돕기 위한 생각만 하고 있다. 그의 아내를 검사중인 심리,정신병 전문가들은 이들은 615,16일 법정에 출석할 예정이다- 덜 상냥하다. 그들은 사건 진술과정에서의 베로니크 쿠르조의 <정신 분열>, <감정의 부재>, <억제된 감정> 등을 지적하고 있다.

 

Ces expertises expliquent encore quen depit dun bon niveau intellectuelet dune bonne connaissance des moyens contraceptifs comme des possibilites legales dinterruption volontaire de grossesse , elle a use dun pouvoir de dissimulation conscient et inconscient extremement fort () reussissant a eloigner les soupcons et parvenant a donner lillusion dune vie normale pendant les trois grossesses dissimulees, y compris apres les accouchements clandestins et les infanticides.

 

이 전문가들은 또한 « 지식 수준이 높고, 낙태라는 합법적 수단과 같은 피임 방법에 대해 정확한 지식을 가지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매우 강력한 의식적 무의식적 은폐 능력을 사용했고, 의심들로부터 비켜나가는데 성공했고, 그녀가 은폐한 세번의 임신기간 동안, 정상 생활을 영위하고 있는 듯한 환상을 심어주는데 성공했고, 몰래한 출산들 과 영아살해들 이후에도 그랬다는 것이다. »

 

Pour les experts, Veronique Courjault na pas ete victime dun deni nevrotiquede grossesse, car

elle en etait parfaitement consciente les trois fois avec un souvenir relativement precis de laccouchement

et des infanticides, comme du mode de disparition ou du mode de camouflage du corps des nouveau-nes.

 

전문가들에게, 베로니크 쿠르조는 임신 공포증의 희생양이 아니었다. 왜냐하면, 그녀는 세번의 사건에 대해 완벽하고 의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즉 그녀는 출산,살해에 대해 비교적 정확한 기억을 가지고 있고, 새로 태어난 아이들을 숨기고, 그들의 시체들을 처리한 방법에 대해 소상해 기억하고 있다는 것이다.

 

En decembre 2003, victime dune grave infection apres le troisieme infanticide, Veronique Courjault avait subi, dans un hopital de Seoul, une ablation de luterus et des ovaires. Privee definitivement des attributs de la maternite, elle sest dite durant lenquete soulagee de ne plus pourvoir etre enceinte, decrivant cette periode comme des plus heureuses de son existence, au meme titre que celle du debut de sa vie de couple.

 

2003 12, 세번째의 영아살해 과정에서 심각한 감염을 당한, 베로니크 쿠르조는 서울의 한 병원에서 자궁 적출 수술을 받았다. 임신능력을 상실한 그녀는 조사과정에서 더 이상 임신할 수 있는 능력이 없다는 사실에 흥분했고, 이 시기를 그녀의 초기 결혼생활 만큼이나 그녀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시절이었다고 진술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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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붕괴된건개념 2009/06/14 14:14 # 삭제 답글

    심리붕괴가 아니라 개념붕괴같은데 한국과학 못 믿겠다고 도망친년놈들인데..
  • 흑범 2017/06/18 05:41 # 답글

    왜 많이 배운 인간들 중에 미친 인간들이 비교적 더 많이 나오는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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