움베르토 에코, 철학의 위안 Encyclopedie

움베르토 에코, 철학의 위안

 

매일마다 모든 신문의 1면 머리기사를 장식하는 문제를 따로 논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고등학교 강의안의 개혁문제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논란은 현실적으로 매우 중요하며, 그 중에서도 특히 철학강의의 개혁문제가 중요하다.

 

사람들은 인문과학을 개혁하든지 아니면 없애버리라고 말하고 있다. 최근 나는 볼로냐에서 열린 철학대회 도중 단지 지배자들의 관행이라는 이유만으로 그것을 내팽개쳐서는 안된다는 발언에 마음을 빼앗겨 버렸다. 어쨌든 철학사 강의는 의당 그래야만 한다. 다른 나라와 비교해 볼 때 아직은 이탈리아의 철학 강의방식이 가장 진보적인 것으로 보인다. 이탈리아에서의 철학강의가 다른 방식으로 진행되고 또 그람시가 실천을 주도했더라면 오늘날 고등학교에서도 철학사가 강의되고 있으리라고 믿는다.

 

이제까지와 다른 방식 방식이라고? 분명히 그렇다. 만약 그렇게만 되었더라면, 추상적 사유를 발전시키기 위한 강의는 문화사 일반이나 사회사 일반과 훨씬 더 긴밀하게 결부되었을 것이고, 따라서 사람들은 철학자들의 논쟁 속에는 언제나 현실적인 문제가 강력하고도 핵심적인 쟁점으로 자리잡고 있다는 사실을 훨씬 더 능숙하게 간파해 낼 수 있게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소크라테스는 말할 것도 없고, 파르메니데스에 대해서까지 현실적인 개념을 가지고 이들의 철학을 논하는 것이 과연 가능할까? 나는 그렇다고 믿는다. 인문과학을 위해서는 추리소설이 마치 파르메니데스의 책이라도 되는 양 읽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으며, 파르메니데스 또한 추리소설인 양 읽지 않으면 안된다.

 

그러면 파르메니데스에 대해 좀더 자세히 살펴보기로 하자. 위대한 사상가들로 채워지는 철학사의 상투어로부터 시작해 보자. 파르메니데스는 부동과 존재 일자의 사상가이다. 반면, 헤라클라이토스는 이와 정반대의 견해를 표명한다 : 만물은 유동한다. 삶은 여러가지 변증법적 유희 속에서 그리고 이와 더불어 역사 속에서 진행된다는 것이다.

 

이 거룩한 두 사상가 중에서 누가 반동이고, 누가 맑스주의 역사주의의 선구인가?

 

인문과학에 손이나 한번 대보려면 순수이론적인 사유의 고공비행을 문화인류학의 세밀화와 결합시켜야만 한다. 이를 위해 이 두 사람의 전설을 재구성해 보기로 하자.

 

한 철학사전에 따르면, 우리는, 프랑크푸르트 학파의 몇몇 맑스주의자들처럼 거만하고 명예심에 잔뜩 부풀어 올라 있던 헤라클라이토스는 대중들을 보기만 해도 소름이 쫙 솟으며, 천민들의 민주주의적 도시정부에 참여하려 하지 않았고, 교육받지 못한 민중들이 이해할 수 없도록 일부러 글을 애매모호하게 썼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그렇다면 파르메니데스는? 그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의 제자이자 연인이었던 제논, 엘레아의 그 제논, 스승의 명제를 지지하기 위해 운동은 증명될 수 없다고 주장한 바로 그 제논을 살펴보아야 한다 : 그는 아킬레스는 결코 거북이를 따라잡을 수 없으며, 날아가는 화살은 아무리 날아가봐도 움직이지 않는 공간에서는 단 1mm도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고 주장했다.

 

아무튼, 제논은 어떤 일을 했는가? 그는 저항운동에 나섰다가 목숨을 잃었다. 그는 네아르코스의 전제군주에 맞서 봉기를 조직했다. , 부동의 불변성 속에서, 제논, 엘레아의 제논은 무언가 변화시켜야만 한다는 사실을 발견한 셈이다. 체포되서 고문기구에 묶여서 공모자들의 이름을 불 것을 강요당하자, 그는 혀를 깨물어 독재자의 얼굴에 뱉어버렸다고 한다. 죽기전에 그는 탁월한 사상을 하나 피력했다고 한다. “그가 밀고한 사람들은 모두 전제군주의 친구들로, 그가 그렇게 한 것은 전제군주를 철저하게 고립시키려는 의도에서 였다.”

 

어떻게 된 일일까? 변증법적 흐름의 철학자는 반동이고, 부동의 우주의 철학자는 혁명가라니? 철학에 막 입문한 초심자에게는 경이롭기 짝이 없는 문제다! 왜냐하면, 무엇보다 이러한 사실로부터 이론과 실천 사이에는 결코 거울상처럼 정확하게 일치하는 상응관계가 아니라, 단지 매개와 왜곡 그리고 불일치만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간파해 낼 수 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이러한 사실로부터, 하나의 이데올로기로부터 곧바로 철학을 도출해 낼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보수주의자인 발자크는 도대체 어떻게 마르크스와 엥겔스와 유사한 방식으로 사회를 묘사할 수 있었을까?), 하나의 철학에서 무조건 하나의 이데올로기를 도출할 수 없다는 결론을 끌어낼 수 있다. (루이 알튀세르가 스피노자적 마르크스주의자라는 것을 어떻게 확인할 수 있을까?)

 

이렇게, 이러저러한 태도가 반드시 그에 상응하는 철학을 보장해주는 것은 아니다. (반동적인 견해를 가진 사람도 반나치투쟁에 적극 임했다.) 동시에, 역사는 정치적 실천을 근거로 이러저러한 사상에 무죄판결을 내리는 태도에 그냥 방긋 웃음을 보낼 뿐이다. 소위 반역사적인 사유에 대한 경솔한 유죄판결에 대해서도 똑 같은 이야기를 할 수 있다.

 

귀족주의자인 헤라클레이토스는 우리들로 하여금, 대립물간의 형이상학적 투쟁에 열을 올리게 하지만 막상 자신은 당대의 경제흐름에 대해 쌍심지를 돋우고 있었다. “상호간의 거래 : 모든 상품을 금과 바꿀 수 있고, 또한 금을 모든 상품과 교환할 수 있듯이, 모든 것을 불과 바꿀 수 있으며, 또한 불은 모든 것과 교환될 수 있다.”

 

그가 말하는 범우주적 투쟁이란 당시의 상업흐름에 대한 은유인가 아니면 역사는 계급투쟁으로 이루어진다는 사실에 대한 예비적인 묘사라고 할 수 있을까? 헤라클레이토스의 철학에 일정한 의미를 부여해 주는 것은 무엇인가 : 그의 귀족적 삶인가 아니면 다른 사람들이 그를 두고 흔히 평가하는 것처럼 민주주의적 쓰임새인가? 사상가들의 실천은 그의 사상을 다른 관점에서 보도록 강요하지 않는가? 그의 실천은 그의 사상을 확증시켜 줄까? 아니면 양자는 서로 모순될까? 그리고 자신의 사상과 모순된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 제논과 그의 스승인 파르메니데스는 정말 부동의 철학자였을까? 즉 그들은 정말 현실 세계는 변화될 수 없다고 가르쳤을까?

 

결국, 미래의 학생들에게 이러한 사실을 가르치지 말아야 할 무슨 이유라도 있단 말인가? 이처럼 문화사라는 관점에서 볼 때, 철학사가 드러내주는 것보다는 훨씬 박진감 넘치는 이러한 사건의 연대기들을 말이다.

 

코리에레 델라 세라, 1975




덧글

  • ddd 2009/06/12 10:22 # 삭제 답글

    코리에레 델라 세라가 쓴 글이란 거죠? 울 나라에 저 만큼 고민하게 만들 사람이 없을 거 같아서리...
  • 파리13구 2009/06/12 10:25 #

    이탈리아의 잡지이름이고, 저자는 움베르토 에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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