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8] ‘알제리’라는 드라마. La culture francaise

[연재] ‘알제리라는 드라마.

<1962년에 이르면, 무장군인들이 순찰하지 않으면 안될 정도로,
알제리에서의 치안상태가 악화되었다>

 

알제리는 프랑스 식민지라는 존재에게 가장 귀중한 것이었고, 그것의 영예였다. 그리고 백만 명의 프랑스인들이 그곳에 거주하는 유일한 식민지였다. 몇몇 프랑스 가족들은 1830년 식민지가 된 이래로 이 땅에서 살아왔다. 하지만 1954년 모든 성인의 날[불어로 Toussaint 투생 이라 함] 이래로, 알제리는 악몽이 되었다. 테러 공격들이 급증했다. 드골 장군이 권좌에 복귀하던 즈음, 9백만의 무슬림들의 통합이란 신화가 비현실적인 것으로 드러났고, 점점 이 나라는 독립을 향해 나아갔다.

 

이것은 징집되어 우리의 땅을 떠나, 그들이 더 이상 무엇을 위해 싸우는지 알지도 못한 채, 알제리의 오지에 배치된 병사들에게 드라마였다. 이것은 또한 프랑스의 영광을 지킨다고 믿었던 장교들과 하사관들에게 드라마였다. 이것은 제국의 상실이었고, 몇몇은 처절한 투사로 변신하게 된다. 이것이 바로 무자비하고 유혈이 낭자했던 비밀 무장 조직 OAS (Organisation armee secrete) 의 모험으로 변질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아르키 les harkis [프랑스에 충성을 맹세한 식민지 출신 알제리인들] 에게도 드라마였다. 이 병사들은 프랑스를 선택했고, 프랑스에 의해 배신당하게 될 것이었고, 동시에 알제리 권력당국에 의해서도 위협을 받게 되었다. 알제리의 권력은 결국 1962, 에비앙 조약에 따라, 알제리 민족해방 운동 FLN 의 손아귀로 넘어가게 될 것이었다.

 

이때부터, 프랑스 식민지라는 모험이 종료되었다. 아프리카 국가들, 즉 과거의 서아프리카 프랑스와 적도 아프리카 프랑스가 독립하게 되었다. 그리고 프랑스는 시대의 조류에 휩쓸려 표류하게 되었고, 더 이상 평화롭지도, 더 이상 젊지도 않은 국가가 되었다.

 

<위의 두장의 사진은 1960년의 알제리다. 마쉬 장군이 사면된 후,
알제리 프랑스의 옹호자들이 시위를 일으키게 되고,
이것은 폭력적 대치로 귀결되게 된다. 이것은 바리케이드 주간의 시작의
알리는 것이었다>


<1962년 6월. 알제리로부터의 난민들이 프랑스 마르세이유 항으로 쇄도했다.>


덧글

  • ghistory 2009/05/16 21:19 # 답글

    모든 성인의 날→만성절.

    연표에 나오는 것도 만성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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