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7]<새로운 헌법 – 대통령 직선제 개헌>, 1962년 La culture francaise


< 위의 두 사진은 1962년 10월 28일 개헌 국민투표를 위한 포스트와 벽보이다. - 찬성합시다.

그러면, 공화국 대통령을 뽑는 것은 바로 당신이 됩니다! >


<새로운 헌법 대통령 직선제 개헌>, 1962

 

필자 레이몽 바르 Raymond barre – 지스카르 데스탱 정부 시절의 총리 (1976-1981)

 

1962 10 28, 프랑스인들은 국민투표(62.5%가 찬성했지만, 유권자의 46,65%만이 투표에 참여했다)를 통해, 보통 직접 투표를 통해 공화국 대통령을 선출한다는 개헌안을 승인했다. 그 이전까지 공화국 대통령은 대략 8만 명의 선거인단에 의해 선출되었다 : 상하원 의원들,지방의회 의원들,시장들,지방의회 의원들의 대표들.

 

 

사람들은 나에게 국화꽃을 피울 재능이라도 있는 것처럼 믿고 있는 것인가?”

그리고 사람들은 67살의 내가 독재자의 경력이라도 시작하려는 것이라 믿고 있는 것인가?”

-      드골 장군, 국민투표 선거운동 중에

 

 

위의 사진은 공화국 대통령을 직접 선거로 선출하자는 것에 찬성하자고 독려하는 사진이다. 드골 장군은 그것을 1962년에 결심했다.

 

하지만 이미 1958년에 이런 변화가 시작되었다. 그 해에 제4공화국이 붕괴되었다. 권좌에 복귀한 드골은 프랑스를 위해 가장 중요한 일은 그에게 정부의 안정과 정치 권력의 효율성을 보장해 주는 제도를 안겨주는 것이라 선언한 바 있다. 그리고 그는 정부가 직접 그에게 종속되는 제도의 도입을 추진했다.

-      공화국 대통령이 총리와 그 장관들을 임명한다.

-      의회는 총리를 지명하지 못한다. 의회는 단지, 의회가 그것을 원할 때, 내각 불신임안을 제출할 수 있을 뿐이다. 그리고 만약 내각 불신임안이 통과될 경우, 공화국 대통령은 의회를 해산할 수 있다.

 

4공화국 하에서, 의회 해산권은 한번도 사용된 적이 없었다. 드골 장군은 이것을 정부의 안정과 효율성을 위한 무기로 사용하기로 굳게 결심했다. 이를 위해서는 공화국 대통령은 국민의 신임을 가지고 있어야만 했다. 즉 정당들의 신임이 아니라, 국민의 신임 말이다. 그리고 국민의 신임이 표출될 수 있는 것은 보통 직접 선거 밖에 없었다. 가령 국민투표 같은 것을 통해서 말이다. 드골에게 국민투표는 국민들의 의사를 묻는 신임의 문제였고, 그는 그 점을 분명히 보여주었다. 왜냐하면,이후 그에게 주어진 이러한 신임이 거부되었을 때, 그는 대통령직을 물러나게 되기 때문이다. 드골 장군은 그가 말했던 것처럼, 공화국 대통령은 정국의 동요의 희생양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희망했다. 이를 위해 총리가 존재하는 것이었다.

 

5년 임기의 대통령을 규정하는 헌법은 지속될 수 있을까? 사람들은 공화국 대통령과 총리를 존속시킬 수 있을까? 대통령제를 향해 사람들이 나아가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 드골은 다음 논점을 끊임없이 제기하기를 멈추지 않았다. 대통령제는 프랑스를 위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고 이 제도는 공화국 대통령과 의회간의 대치들로 귀결될 수 있다는 점을 항상 분명히 했다.

 

 


덧글

  • ghistory 2009/05/16 21:40 # 답글

    포스트와 벽보→포스터와 포스터. 포스터는 붙이라고 만든 것입니다.
  • 파리13구 2009/05/16 22:21 #

    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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