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상수 영화의 지루함을 사랑하는 이유는? ^ ^ 영화


조만간 홍상수의 신작, <잘 알지도 못하면서>가 개봉한다고 한다.
이 소식을 듣고, 내가 왜 이 감독 작품을 좋아하는지 생각해 보게 되었다.

사실, 홍상수 감독은 흥행과는 거리가 먼 감독이다.
최근작 <낮과 밤>(밤과 낮?)은 유료관객 2만을 동원하는데 그쳤다고 한다.
신기하는 것은, 나를 포함한 내 주위 친구들은 한결같이 이 작가의 영화들을 좋아 한다는 점이다.(물론홍상수를 모르는 친구들은 과감히 다 인간관계에서 정리한 느낌도 든다.ㅋㅋ,,)

내가 가장 재밌게 본 작품은 <생활의 발견>이지만,이 글에서는 그의 1998년도 영화 <강원도의 힘>이 재미있는 이유를 말해 보고자 한다.(홍상수 관련 논문들을 참고했음을 미리 밝힌다. ^ ^)

이 영화도 앞에서 언급했듯이, 공식적인 통계에 따르면, 유료관객 만 오천명이었다. 역시 평론가들의 지적처럼, 홍상수의 영화는 국내외 평단에서는 “1990년대 한국 일상을 가장 잘 포착한 수작”으로 인정받지만, 막상 그 1990년대 한국의 일상을 살아가는 대중들에게 외면을 받았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그렇다면, 이 만 오천명이 본 영화가 흥미로운 부분이 무엇인지 알아보자.

이 영화는 여주인공 지숙 과 남자주인공 상권의 여행에 대한 것이다.  , 한 때 불륜의 연인이었던 여자와 남자는 같은 시간 각자 강원도로 여행을 떠나고, 지리한 여행이 끝난 후에도 일상은 반복된다.
 
이 여행을 바라보는 관점이 우선 흥미롭다. 보통 영화에서나 우리의 일상에서나 여행은 지루한 일상에서의 탈출의 의미가 있다. 특히, 영화가 여행을 만나면, 우리는 이 여정에서 무슨 흥미로운 일이 생길 것이라 기대하기 마련이다.하지만, 홍상수의 이 영화에서, 거의 아무일도 생기지 않는다.. ㅋㅋ..  또한 그의 영화에서 여행이란, 일상의 탈출이 아니라, 그것의 반복이며, 오히려 일상의 모순들이 더욱 증폭되기도 한다.

맞다. 일반 관객들이 옳다.
그래서 홍상수의 영화는 지루하다.
왜냐하면, 그는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는 여행에 관한 영화를 만드는 감독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의 입장에서는 그 반대다. 나는 그의 지루함이 재미있다.
최근 한국 영화판 같이 경기가 안좋은 상황에서, 이런 지루한 영화들을 만들어내는 것이, 그의 재능이라고 생각한다. ㅋㅋ..
그리고 일반 영화들은 말초적인 흥미를 유발하려고 너무 과잉한 나머지 지루하다면,홍상수의 영화는 너무 지루하게 만들려고 노력하기 때문에, 오히려 흥미가 있다는 것이다. ^ ^

그렇다면, 그의 지루함은 왜 미학적이고, 이것이 흥미로운지는.. 장르영화의 관점에서 <강원도의 힘>을 분석해 보면 알 수 있다.
 

이 영화에는 가족 멜로드라마, 로맨스, 살인 미스터리,탐정 영화, 경찰 수사극, 버디 무비, 청춘물, 기행영화 등 여러 장르의 요소를 고루 갖추고 있다. 솔직히 이중의 한가지 테마만 가지고도, 헐리우드 등 상업영화쪽에서는 손에 땀을 쥐는 재미있는 영화를 만들 수 있다.

1. <
멜로드라마> - 영화에는 상권의 사랑을 놓고 경쟁을 벌이리라 예상되는
두 여자 –부인과 정부-가 등장하지만, 영화에서 한번도 만나지 않는다.

2. <
불륜> - 불륜 영화 하면, 여자들이 머리채를 서로 쥐어뜯는 장면이라 든가, 불륜남 혹은 녀가 언제 배우자에게 걸릴까 하는 것이 서스펜스를 유발하기 마련이데, 이 영화에는 이런 것이 전혀 없다 

3. <
여행영화> - 영화는 자연의 아름다운 이미지에 전혀 관심이 없다. 강원도 관광 홍보과에서 보면, 열받을 영화다.

4. <
로맨스영화>- 로맨스 영화는 보통 한 쌍의 남녀를 중심으로 전개된다.
하지만, <강원도의 힘>은 주인공 커플이 헤어진 다음에 영화를 시작해, 영화가 끝날 무렵에야 만난다.

5. <
버디무비> - 버디 무비 영화는 보통 우정으로 모든 역경과 고난을 견디는 남성 영웅 2인조의 이야기다.  하지만, <강원도의 힘>에서, 남성2인조 상권과 재완의 관계는 연대가 균열되다가, 결국 연대의 부재 상태에 이르게 된다. 또한 둘은 용기 있는 자들이 아니라, 설악산 절벽에 서서 아래를 바라볼 만큼의 담력도 없는 나약한 자들이다.

6.<
경찰 수사극> - 상권이 강원도에서 만난 정체 불명의 여자가 죽는다.
하지만, 영화는 여기에 거의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 경찰도 등장하지만,
살인 사건 이야기 축과는 거리가 있는 시공간에 배치되고, 이 경찰은 이 직업이 적성에 맞지 않아 그만둘 예정인 인물이다

7. <
청춘영화>- 지숙,미선,은경이 강원도 여행을 떠난다. 여행 중 뭔가 일어날 법도 하다. 하지만, 거의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그녀들은 청춘 영화에서 기대하기 마련인 신선하고 쾌활하고 예쁘장한 여학생들과는 거리가 멀다. 그리고 그녀들끼리 많이 친해 보이지도 않는다.

8. <
기행영화> - 주인공들은 멋진 경치를 자랑하는 관광지 강원도에 간다. 하지만, 영화는 강원도의 자연미와 웅장한 산맥과 고장의 명소를 포착하는 대신, 우울하고 황폐한 광경만을 제시할 뿐이고, 일부러 관광객을 매혹하는 풍경을 지운 듯한 인상을 준다.


결론적으로, 이런 장르 영화적 요소들의 종합세트를 갖추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전혀 흥미롭지 않고거의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으며,  아주 지루하다. ㅋㅋㅋ..
이것이 그의 영화의 아주 놀라운 점이며, 그의 미학적 재능이라고 하겠다.
이것을 영화평론에서는 영화의<부정적 장르화>라고 한다고 함!

아무튼, 글이 생각보다 많이 길어졌다.
변명을 하자면, 지루함의 미학의 대가 홍상수 영화에 대한 글을 흥미롭게 쓴다는 것은 그에 대한 배신이 아닐까? ^ ^

나는 홍상수의 지루함을 사랑한다! ㅋㅋㅋ..




덧글

  • 노는 건달 2009/05/09 01:19 # 삭제 답글

    작년 2-3월 경 시네마테크 프랑세즈에서 <강원도의 힘>을 상영했었습니다

    그 때 시간이 대략 오후 2-3시 정도였고 관객은 80-90명 정도 들어왔던 것
    같습니다. 한국 유학생으로 보이는 분들이 2-3분 계셨고 전부 프랑스 사람들
    이습니다

    관객들 수도 세어보고 반응도 살피려고 제일 뒷 좌석에 않아있었죠
    기억이 정확한지 모르겠는데 영화 상영 도중 세 분 정도가 나가시더군요

    어떤 부분에서 프랑스 사람들이 반응할까 많이 궁금했는데 생각만큼
    웃지도 않고 그냥 조용히 영화 보고 나가더라구요

    조금 용기내서 제 뒤에 있는 프랑스 사람 붙잡고 이 영화를 어떻게 봤냐고
    물어보고 싶었는데.... 아쉽게도 불어가 안 되는지라.....




  • 파리13구 2009/05/09 10:44 #

    ^ ^ 그래도 홍상수는 프랑스에서 비교적 알려진 한국 감독입니다.

    이 나라에, 그의 거의 모든 영화가 DVD로 출시되었구요,,

    제가 보르드에서 어학할때, 담임 여선생도,

    엄청난 한국영화 마니아이자, 홍상수 팬이었습니다.

    (과거 칸느 영화제때 카트린 드뇌브 통역비서로 일한 적이

    있다고 제게 자랑하더군요,, ㅋㅋ,,)

    학기말에 <생활의 발견> dvd를 뇌물로 주니,

    엄청 좋아하더군요.. ㅋㅋ..

    언제 기회가 되면, 홍상수 영화에 대한 프랑스 평론가들의 글을

    소개해 드리리로 하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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