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의역사] 파리의 오스만화 La culture francaise

파리의 오스만화

                                <파리, 오스만 대로> - 전형적인 오스만풍 대로..

                  <파리의 오스만화 이전의 전형적인 거리>

 


<
사진과 그림으로 보는 케임브리지 프랑스사> 중에서

 

파리는 프랑스의 심장이다. 모든 노력을 기울여 이 위대한 도시를 아름답게 만들자. 신작로를 내고 빛과 공기를 잃고 붐비는 도심을 건강하게 바꾸고 은총의 빛이 도시 곳곳을 비추도록 하자.”

 

파리를 근대화하려는 나폴레옹 3세의 시도는 ,1853년에서 1969년까지 센 지역의 도지사를 맡았던 오스만 남작에 의해 실행되었다. 발자크가 살았던 파리 오래되어 쓰러질 듯한 건물들과 슬럼들,콜레라가 창궐할 듯한 비위생적이고 북적거리는 거리 의 모습이 현대화 되는 것이었다. 미학적인 견지에서 변화를 거부하는 사람도 있었고, 무정부주의자인 프루동과 같은 이는 오스만 씨의 새롭지만 단조롭고 지겨운 도시를 비난했다. 그리고 좌파 중 다수는 변화와 관련된 숨겨진 정치적 의제가 있을 것이라 생각하였다. 즉 오스만의 도시계획은 급진파와 상퀼로트 등 파리의 혁명적 전통을 낳은, 오래된 노동자 주거 지역을 파괴하려는 음모라는 것이다. 바리케이드와 대로화는 공존할 수 없는 것이었다.

 

파리의 근대화란 제국의 영화를 보여 주기 위한 더 큰 과정을 위한 일부에 불과했다. 새로운 도시 계획에 포함된 호화건물로는 오페라 하우스, 국립 도서관, 루브르 궁의 부설건물, 레알 Les Halles (파리의 중앙시장)의 철조 건물, 그리고 야외 레저 공간 (뱅센 숲,불로뉴 숲)이 있었다. 이러한 변화는 강력한 선례가 되어, 1차 세계대전 직전까지 세계 주요 도시들이 오스만화”,즉 대로화의 궤적을 밟아 나갔다.

 

근대화는 파리를 국가의 경제적 중심으로 만드는 과정을 포함하는 것이었다. 파리를 새로운 철도망의 중심으로 만드는 것은 사실 나폴레옹 3세가 의도한 바였다. 철도가 국내 시장을 통합하고 국가 경제에 동력을 제공하는 역할을 수행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중세의 좁은 길들이 만들어 낸 미로 사이로 새로 뚫린 불바르 (Boulevard,가로수가 심어있는 넓은 도로) 와 넓은 아브뉘 (Avenue,불바르 보다 넓은 도로)들이 서로 연결되어 보다 통합된 도시와 사회와 경제를 창출했다. 실제로는 이러한 변화들이 계급간의 사회적 간극을 심화시키는 효과도 낳았다. 전통적으로 계급들은 도시에서 수직적인 통합을 이루고 살았다. 즉 부르주아지는 건물의 1층과 2층에 살고, 제일 위층과 다락방은 빈민들의 주거지였다. 하지만 오스만화는 빈민과 부자촌 사이의 새로운 차별을 낳았다. 중산층은 도시 안쪽으로 모여들고, 빈민들은 도시를 둘러싼 프롤레타리아의 <적색 벨트>를 형성하여 도시외곽으로 밀려난 것이다. 오스만은 사회적,정치적 문제들을 해결한 것이 아니라 단지 다른 방식으로 배치하였을 뿐이다.

 

 

파리의 시테 섬 도로 지도..

위는 오스만 이전이고, 아래는 오스만 이후다.

과거 구불구불한 도로가, 오스만 이후 반듯하게 정비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덧글

  • 들꽃향기 2009/05/05 17:08 # 답글

    데이비드 하비는 이러한 블럭화를 통해, 아랫층의 노동자, 빈민층이 윗층의 부르주아들을 볼모로 잡는 상황에서, 역으로 특정 구획에 몰리게 되어 그 구역을 봉쇄하면 군경의 진압이 용이해지는 역전이 일어났다고 하더군요.

  • 파리13구 2009/05/05 17:47 #

    좋은 지적 감사합니다.
댓글 입력 영역
* 비로그인 덧글의 IP 전체보기를 설정한 이글루입니다.


2014 대표이글루


2016 대표이글루

2015 대표이글루

2013 대표이글루

2011 이글루스 TOP 100

2010 이글루스 TOP100

2010 이글루스 TOP100

2017 대표이글루_history

2018 대표이글루_history

2019 대표이글루_역사

방문자

광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