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21] 스포츠가 무슨 죈가 Le monde

[2009.04.10 제755호]

열정
- 몰입은 절박한 생존 의식의 다른 표현, 젊은 세대들 사이에서 ‘태극 마크’는 빛바랜 것

스포츠에 대한 과도한 열정, 그것도 온 나라가 떠들썩해져버리는 현상에 대해 그동안 ‘진보’ 일각의 비판이나 경계가 자주 제기됐다. 일리 있는 지적들이 없지 않았으나 다음의 두 가지 경향은 다시 점검할 필요가 있다.


월드컵과 지방선거가 같은 해라서?


첫째는 우리 사회의 구태나 병폐의 한 원인으로 대규모 스포츠 제전에 대한 무비판적인 몰입을 지적할 수 있다. <88만원 세대>로 유명한 우석훈(연세대 문화인류학과 강사)씨가 지난 2월2일 <오마이뉴스>에 기고한 ‘월드컵이 결국 지방자치를 망쳤다’라는 글이 대표적인 경우다.

우석훈씨는 이 정권의 살인 철거 만행, 대운하 강행 기도, 토목건설 일변도의 경기 부양 등을 비판적으로 언급하면서 “나에게 솔직하게 이유 하나만 대보라고 한다면 ‘이게 다 월드컵 때문이다’라고 말하고 싶다”고 썼다. 물론 그 자신이 바로 뒤에 월드컵이 이 모든 문제의 ‘핵심’인 것은 아니라고 단서를 달기는 했지만, 아무튼 이어지는 글은 비슷한 흐름이다. 그는 지방선거와 월드컵 주기가 4년마다 겹쳐지면서 그해 6월마다 주권자들이 지방선거에 참여하기보다는 ‘월드컵 16강’에 매몰된다고 우려했다. 또한 2010년에도 지방 토호들의 ‘개발연합체’가 기승을 부리는 동안 사람들은 ‘이번에야말로 16강을’을 외치며 텔레비전 앞에 앉아 있을 것이라고 걱정했다.

나는 지방선거가 토호세력의 잔치판이 됐다는 점에는 동의하지만 그 원인(비록 첫 번째 이유는 아니라 하더라도)이 월드컵에 있다는, 그것도 월드컵과 시기가 겹쳐지기 때문이라는 주장에는 동의하기 어렵다. 월드컵 때문에 투표소에 가지 않는다? 그렇다기보다는 지방선거 자체의 본질적인 문제, 그것이 처음 시행된 이후로 경향적으로 투표율이 낮아졌다는 점, 이미 토호세력의 분점으로 실망이 만연됐다는 점을 더 주목해야 할 것이다. 이명박 정부의 행태로 보건대 2010 지방선거에서도 온 나라를 크고 작은 ‘개발 공약’으로 들쑤셔놓을 게 뻔하지만, 그럼에도 ‘한국 민주주의의 발전에 2010 월드컵이 장애물’이라는 주장은 납득하기 어렵다.

만약 법을 손질하거나 아니면 국제축구연맹에 부탁해서 지방선거와 월드컵 시기를 조절한다면, 과연 투표율이 올라가고 지방 토호의 권력 분점을 흔들어버릴 수 있을까. 아니 적어도 어떤 사람이 출마했는지 사전에 꼼꼼히 살펴보는 일이 발생할 수 있을까.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문제’는 문제의 내부에 있을 것이며 그 해결의 열쇠 역시 문제 내부에 있을 것이다.

두 번째로 스포츠에 몰입하는 열정을 ‘집단증후군’로 보는 경향. 이 역시 섬세하게 살필 필요가 있다. 혼자서 자전거를 타거나 한강변을 달리는 것은 레저일 뿐 스포츠가 아니다. 스포츠는 단지 ‘몸을 사용하는 격렬한 행위’가 아니라 사회제도 안에서 특별하게 교육받고 수련한 개인이나 조직이 정기적으로 크고 작은 대회를 통해 경쟁하는 구조를 말한다. 이 점에서 보면 일요일 아침의 조기 축구는 레저 행위일 뿐 스포츠는 아니다.


물론 이러한 레저 행위 역시 ‘한가로운 일상’이라기보다는 저 1997년의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사태의 ‘뼈저린 교훈’, 그러니까 더 이상 조직(회사·국가)은 개인을 보호하지 않으며 냉혹한 세상의 마지막 보루는 ‘내 몸’이라는 절박한 인식에 의한 것이기도 하다. 한 개인이 수영·자전거·달리기에 몰두하고 국가 대항전에 몰입하는 것은 ‘국가주의’의 잔영이 아니라 절박한 생존 의식의 다른 표현인 측면도 있는 것이다.


월드컵 열릴 때 덴마크 사람은 숲속 산책할까


아무튼 월드컵, 올림픽, 선수권대회 같은 대규모 국가 대항전에 몰입하는 열정을 ‘집단증후군’으로 파악하려는 시선이 ‘진보’ 일각에 지배적이다. 스포츠는 ‘3S 정책’의 일종이라며 비판한다. 하지만 이 섹스(Sex)·스크린(Screen)·스포츠(Sports) 속에는 인간의 욕망과 자유와 열정이 깃들어 있다. 권력자들은 오히려 그것을(특히 섹스·스크린) 탄압하고 검열한다.


2002 월드컵 때 많은 사람들이 빨간 티셔츠를 입고 똑같은 구호와 동작을 외치는 것을 보고 옛 나치즘의 섬뜩한 ‘국가주의’ 행렬을 떠올렸다는 글을 읽은 적이 있다. 글쎄, 그렇다고 우리 사회보다 더 ‘열린’ 사회인 네덜란드나 아마도 현재 상황에서 사회주의 개념에 가까운 덴마크·스웨덴·노르웨이 사람들이 똑같은 복장이나 구호가 ‘국가주의’의 잔영이라는 이유로 월드컵이 열릴 때 숲 속에서 산책하며 소일하지는 않을 것이다. ‘오렌지’니 ‘롤리건’이니 하는 말을 듣는 사람들 역시 똑같은 색깔의 옷을 입고 구호를 외친다. 그렇게 한다고 곧장 저 1930년대 뉘른베르크 전당대회를 떠올린다면, 우리의 집합적 트라우마는 더욱 짙어질 뿐이다.



물론 큰 대회가 열릴 때마다 방송과 신문은 ‘대~한민국’으로 시작하는 기사를 끝도 없이 쏟아낸다. 그들에게 스포츠는 ‘국위 선양’의 도구인 듯하다. 많은 사람들이 국가 대항전이 열릴 때면(심지어 개인 경기인 김연아 선수의 피겨 종목마저도) 과도한 열정에 휩싸이는 것도 사실이다. 앞서 언급한 우려들은 현상적으로는 상당한 근거가 있다.

우리 사회의 근원적인 문제를 스포츠, 특히 일반적 의미의 스포츠가 아니라 올림픽이나 월드컵 같은 국가 대항전으로 환원하거나 혹은 국가 대항전 과정의 몇몇 인상적인 장면들(예컨대 시상대 위에서 눈물 흘리는 김연아 혹은 마운드 위에 태극기를 꽂는 야구 선수들)을 따로 떼어내 ‘국가주의’의 잔영으로 보는 것은, 국가주의의 잔영을 씻어버리는 데 그리 효과적이지 않다. 김연아의 눈물은 고진감래의 소녀가 흘리는 따스한 액체이지 국가 간의 상징적인 전장에서 무훈을 세운 ‘애국영웅’의 눈물은 아니다.


‘국가주의’의 망령을 씻기 위해 국가 대항전을 외면하기는 어려운 구석이 있다. 무엇보다 스포츠에 내재된 미학이나 열정을 섬세하게 해석하고 그 씨앗에 담긴 가치를 적극적으로 살려내는 과정이 필요하다.


나는 지난 2008년에 국가인권위원회가 주관하는 ‘스포츠와 인권’ 특강 프로그램에 참여한 적이 있다. 전국 12개 지역을 순회하면서 현장 지도자와 유소년·학생 선수들과 함께 스포츠의 가치, 인권, 다양한 미래 등을 함께 모색하는 프로그램이었다. 그 과정의 후일담이지만, 어느 지역 단체장이 “여러분도 각고의 훈련을 하여 태극 마크를 달고…” 운운했을 때, 이미 그것이 빛바랜 것임을 제 삶의 어려운 형편으로 깨달은 지도자들은 물론이고 새로운 공기를 마시며 성장하는 학생 선수들 대부분도 그같은 ‘국위 선양’을 정서적으로 부정하고 있었다.


‘아오지’ 발언에 따가운 눈총


최근의 일만 해도, 아무리 김연아를 응원하고 월드컵 본선 진출을 원해도, 아사다 마오가 실수하기를 바라거나 정대세의 ‘헤딩슛’이 골이 아니라며 잡아떼는 일은 드물었다. 지난 4월1일 서울 상암경기장에서는 어떤 관중이 “북한 선수들, 이제 다 아오지 탄광행이야” 하고 나름 기세 좋게 외쳤는데, 그런 저열한 농담을 접한 주위 관중들은 따가운 눈총을 보냈다.


송능한 감독의 영화 <넘버3>는 주옥같은 명대사로 가득찬 작품인데, 그 가운데 하나, 마동팔 검사(최민식 분)가 외친다. “내가 제일 ×같아 하는 말이 뭔 줄 아냐?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는 말이야, 정말 ×같은 말장난이지. 솔직히, 죄가 무슨 죄 있어?”

스포츠에 내재된 미학, 그 용광로 속으로 몰입하는 ‘다양한’ 열정, 6만 관중이 모여들었지만 그 6만 명이 국가주의 때문에 ‘집합’한 것이 아니라 저마다의 사연과 열정과 가슴 통증 때문에 모였을 수도 있다는 새로운 가능성. 그리하여 바로 그 힘으로 여전히 ‘국가주의’ 언어에 갇혀 있는 방송과 신문의 스포츠 ‘너절리즘’을 서서히 약화시키는 일, 그것이 우리 사회의 국가주의 망령을 씻어내는 일이 아닐까. 나는 스포츠는 ‘죄’가 없다고 생각한다.


정윤수 스포츠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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