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2]알제리, 1958년 5월 13일... La culture francaise


 

알제리, 1958 5 13

 

알제리 프랑스가 봉기했다. 그들은 1958 5 13일 피에르 프리믈랭의 총리임명에 적대적이었다. 그들은 프리믈랭이 알제리 독립 세력과의 협상에 우호적이라 판단한 것이다. 알제리 군사정부의 본부에는 알제리 프랑스 옹호세력들이 모래주머니를 쌓아 올렸고, 그들의 지도자로 학생 피에르 라가이라르드 Pierre Lagaillarde 를 선출했다.

 

공안위원회 公安委員會, Comité de Salut Public 가 구성되었고, 자크 마쉬 Jacques Massu 장군이 의장을 맡는데 동의했다. 그는 파리에 드골 장군이 이끄는 공안위원회 정부의 승인을 요구했다.   

 

“드골 만세!”

-      살랭 장군, 1958 5 15

 

프랑스 하원, 1958 5 13,15, M. 앙드레 르 트로퀘 M. Andre Le Toquer 가 의장석에 있었다.

 

한 남자가 단상에 오른다 ; 다른 여러 의원들이 단상에 오른 뒤, 이번은 그의 하원 인준을 주장하는 내각의장[총리] 지명자였다. 그는 피에르 프리믈랭이었다. 4문단으로 구성되었고 , 90초 가량의 그의 발언을 통해서, 그는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4공화국의 난맥상을 밝히고,공인하고,인정하게 된다.

그가 뭐라고 말했을까?

 

또 한차례의 권력 공백이 나라를 마비시켰고, 우리가 전투 중 임에도 불구 말입니다. 또한 세계 속에서 우리의 적들이 우리에 대항하여 연합하고 있는 와중에 말입니다. 우리가 우리의 동맹국들의 지지를 확신할 수 없는 상황에서 말입니다. 지난 1년 동안 적어도 3차례나 국가의 노력이 3번의 내각 위기들로 방해를 받았습니다. 12개월 동안, 공화국은 지도부 없이, 정치 공백상태에서 3달 동안이나 방치되었습니다. 그러는 동안 역사의 리듬은 가속화되고 있었습니다. 이 세계는 뭔가를 하기 위해서 줄기차게 우리의 결정들을 기다리고 있어야만 했습니다.

 

이러한 불안의 광경은 그 에너지가 막대한 한 국민을 성나게 만들었습니다. 이 국민들은 국가의 영광을 위해 자신을 희생할 줄 아는 국민들임에도 불구하고 말입니다. 이 사태는 몹시 무서운 것이 되어 민심이반에 이를 정도로 프랑스인들의 체제에 대한 애착을 약화시킨 것입니다.

 

우리들 제도의 파괴는 공화국 그 자체의 존립을 위협하는 것입니다. 만약 권위,,특권이 조속한 시일 안에 권력의 권한과 함께 회복되지 않는다면, 우리의 자유들의 존속되지 않으리라는 것이 분명한 것이 되었습니다. 이러한 절박한 요구는 동시에 모든 정치적 성공의 조건입니다.  아주 정확히 어떤 열정이 되어버린 눈앞의 이익밖에 모르는 개별 행동이 내일을 모르는 충동이 되었고, 노력을 모르는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생각이 되어버렸습니다.

 

정부들은, 그것들이 출범하자마자, 죽어나가기 시작하고, 그리고 너무도 자주, 그들은 힘은 그들의 붕괴를 늦추어가면서 소진되어 갔습니다. 그것도 프랑스가 자기의 운명을 향해 하나의 민족으로 약진해야 할 때 말입니다.”

 

이 극적인 발언 후, 하나의 선언이 선서되었고, 논쟁이 일어났으며, 이는 22 40분에 내각 의장의 요청으로 휴회되었다. 따라서 회기가 연기되었다. 피에르 프리믈랭은 알제리에 전화를 거는 것으로 5 13일 하루를 종료시킬 것이었다. 프랑스에서 처음으로, 거대한 정치적 재앙이 파리를 비롯한 도처에서 방금 발생했던 것이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놀랄만한 사건들이 알려지게 되었고, 이것들의 진정한 성격에 대한 조사들이 이루어 졌다.

 

하원은 5 14일 새벽 1 15분에 논의를 재개했다. 하원은 이 문제를 종결 짓기로 결의, 이를 표결에 붙여서, 피에르 프리믈랭을 찬성 274, 반대 129표로 총리로 선출했다. 다음날, 5 15, 역사는 알제리의 포럼에서 다른 방향으로 전개될 것이었다. 살랭 장군이 바로 전에 드골 만세!”라고 외쳤다. 이 사건은 피에르 프리믈랭 정부를 제4공화국의 마지막 정부가 아니라, 마지막에서 두번째의 정부로 만드는 질서정연한 과정의 서막을 알리는 것이었다.

 

세월이 지난 후, 앙드레 말로는 5 13일 이날과 그 이후의 사태를 다음과 같이 정리했다 : “당시에 드골이 없는 공화국을 원하는 자들과 공화국이 없는 드골을 원하는 자들이 있었다 ; 결국 프랑스인은 결정적으로, 드골과 공화국을 모두 원했다.” 그리고 이렇게 제5공화국이 탄생했다.

 

<관련 문서>

피에르 프리믈랭에 대해서는 다음 문서를 참고할 것.

http://kk1234ang.egloos.com/2331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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