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우디아라비아] 보수국가 사우디 ‘연애의 반란’ Le monde

뉴스메이커 776호

젊은 세대 적극적 남녀 교제 분위기 확산… 여성들 대학에서 맨얼굴 드러내기도

국제 사회가 사우디아라비아를 비롯한 이슬람 여성들의 인권 문제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지난달 미국 뉴욕에 본부를 둔 국제 인권감시단체인 휴먼라이트워치(HRW)는 ‘영원한 미성년자’라는 제목의 보고서를 내고 사우디에서 자행되는 여성 인권 침해의 현실을 파헤쳤다.

보고서는 사우디가 여성에 대한 ‘남성 보호자’의 역할을 법적으로 규정해놓고 있다고 지적했다. 여성들은 아버지나 남편, 아들, 사촌 등 남성 보호자의 허락 없이는 결혼하거나 취직할 수 없다. 학업이나 여행, 병원 치료 등도 남성들의 결정에 따라야 한다. 또 남성 보호자 없이는 여성 전용 구역이 없는 공공기관이나 식당, 백화점 등에도 발을 디딜 수 없다. 사우디 정부가 최근 45세 이상의 여성이 남성 보호자의 서면 동의서 없이도 여행할 수 있도록 허가했지만 공항 관계자들은 여전히 이를 요구하고 있다.

그만큼 사우디는 남녀를 구분해 이성간의 접촉을 엄격히 제한하는 이슬람의 규율을 철저히 시행하는 보수적인 국가다. 사우디 여성들도 이런 사회 분위기에 크게 거부감이 없다. 2006년 갤럽이 중동 8개국 8000명의 여성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대다수는 인권에 대해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남녀평등은 이슬람 발전에 도움이 안 된다거나 서양적 가치라고 믿고 있는 것이다.

휴대전화와 인터넷이 일상 탈출구

그러나 사우디에서도 자유연애를 향한 젊은이들의 갈망은 크다. 길 가는 여성의 연락처를 묻는 것조차 명예를 손상시키는 행위라고 생각하면서도 마음 한편에서는 ‘사랑’하는 사람과 자유롭게 만나길 바란다. 젊은이들의 의식 속에는 보수적인 이슬람적 가치가 뿌리 내렸지만 동시에 서구에서 몰려온 자유로운 연애도 꿈꾼다. 신·구 가치가 대립하고 있는 셈이다.

뉴욕타임스(NYT)는 최근 이런 사회적 분위기를 용인하면서도 정작 자신은 ‘일탈’을 꿈꾸는 사우디 젊은이들의 혼란스러운 모습을 자세히 소개하며 이들에게는 휴대전화와 인터넷이 탈출구라고 지적했다.

NYT가 소개한 리야드에서 살고 있는 청년 나데르 알-무타이리(22)는 얼마 전 해질 무렵 잔뜩 긴장한 상태로 주먹을 꽉 쥐고 한 치과 진료소의 텅 빈 로비로 들어갔다. 접수대에서 일하는 한 여성의 휴대전화 번호를 얻기 위해서다.

마음에 드는 여성에게 연락처를 묻는 것은 어디서나 젊은이의 특권일 수 있다. 그러나 사우디처럼 성(性)의 분리가 엄격한 사회에서는 매질을 당하거나 가문의 평판이 나빠지는 등 치욕을 당할 수 있다. 나데르도 사촌인 에나드(20)가 이 사실을 알아챌까 봐 두려웠다. 사우디에서는 약혼한 사이라도 결혼 전에 만나는 것을 금지하는데 나데르는 에나드의 여동생과 약혼했다.
기세등등하게 진료소에 들어갔지만 바로 나데르의 ‘결심’은 퇴색했다. 어깨는 움츠러들고 꽉 쥔 주먹은 풀리고 목소리는 떨리기 시작했다.

“오늘은 운이 없네요. 떠나야겠어요. 에나드에게 말하지 말아요, 날 죽일 거예요.”

약혼자와 통화도 점차 용인 추세

전화번호 하나 얻기 위한 ‘반란’이 바로 진압된 셈이다. NYT는 이슬람 세계 중에서도 가장 보수적인 이슬람에서 젊은이들은 종교적이고 문화적인 규제를 받아들인다고 했다. 나데르 같은 젊은이들은 자신들이 가문의 수호자로 여성 친·인척을 보호하고 자신들의 행위로 가문이 불명예에 처하는 것을 피하라고 배워왔다. 그래서 나데르는 약혼자의 전화번호를 묻지 못했다.

나데르와 에나드는 부유하지도 가난하지도 않은 평균적인 사우디 남자다. 구레나룻와 염소 수염을 기르고 전통 복장을 입는 데 익숙하다. 남자의 보호 없이 다니는 여성에 대해 손가락질하며 비난을 하는 ‘평범한’ 이슬람 청년들이다.

일탈을 시도했던 나데르와 달리 에나드는 ‘보수적’이다. 에나드는 “아랍 전통에서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가 명예”라고 말했다. “거리에서 내가 누군가를 불렀는데 여자가 대답했다면 사과해야 한다. 가문을 건드렸기 때문이다”라고 말할 정도다. “사우디에는 로맨스가 없다”는 나데르의 불평에 “로맨스는 결혼한 다음에 하라”고 야단쳤다. ‘용기’가 부족한 나데르와 전통을 고수하는 에나드의 모습은 자유연애의 가치가 확산되었음에도 아직은 전통적인 가치를 누르지 못하는 사우디의 현실을 보여준다.

리야드에 사는 알리야는 최근 집에서 연 파티에서 약혼 사실을 친구들에게 알렸다. 알리아의 피앙새는 군인인데 집안에서 결혼 전에 전화 통화를 해도 된다는 허락을 받았고 자랑했다.

15세부터 25세 사이의 사우디 여성 30명을 인터뷰한 결과, 약혼한 여성이 약혼자와 통화하는 것은 사회적으로 점점 용인되는 추세라고 NYT는 전했다. 물론 여전히 보수적인 가정은 약혼한 커플이라도 모든 접촉을 금지하고 있다.

알리야의 경우는 이런 변화하는 분위기를 보여주는 셈이다. 알리야는 가족이 아닌 남자와 처음으로 대화하는 것이라 무슨 말을 할지 친구들과 목록을 작성하기 시작했다. 알리야의 친구들은 자신의 일에 만족하는지, 어떤 휴대전화를 가졌는지, 차종은 무엇인지, 돈은 어떻게 쓰는지 물어보라는 선에서 그쳤다.

알리야와 친구들은 사우디에서 허용하는 그녀들 행위의 한계를 잘 알고 있다. 여성에 대한 사회적 제한에도 심각한 의문을 갖지 않는다. 그 대신 인터넷 인맥 사이트인 페이스북의 친구 리스트에 남자를 추가해도 되는지, 남자 사촌을 만날 때 얼굴을 가리지 않아도 되는지가 궁금할 뿐이다.

그러나 자유로운 연애의 분위기는 점차 확산되는 분위기다. 여성들 자신이 자유연애가 서구적 가치라고 치부하지만 사우디에서는 조금씩 ‘반란’의 분위기가 시작되는 것이다. 대학에서는 천으로 온몸을 가려야 하는 여성들이 맨 얼굴을 드러내기도 한다. 남자의 옷을 입고 사진을 찍고 휴대전화에 저장해놓는 ‘모험’도 늘고 있다. 일부 사우디 소녀들에게 남자와 은밀히 만나 이야기하는 것이나 남자들의 세계를 엿보는 것은 모험이자 게임이 되기도 한다.

남자들도 여성에게 ‘작업’을 거는 경우가 늘고 있다. 지난해 알 아라비아 TV는 일부 젊은 사우디 청년 사이에 ‘전자벨트’가 유행한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무선데이터 전송 기술인 블루투스를 응용한 전자벨트는 거리에서 지나가는 여성의 휴대전화 번호와 이메일 주소를 식별할 수 있는 벨트다. 그래서 젊은 여성들이 공공장소에서 휴대전화의 블루투스 기능을 켜지 못한다. 사우디 청년들이 사랑시와 꽃 사진, 아이 사진 같은 것을 휴대전화에 저장해 마음에 드는 여성에게 보내 블루투스 기능을 켜면 봇물처럼 밀려들기 때문이란 게 NYT의 해석이다.

<국제부┃김주현 기자 amicus@kyunghyang.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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