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르헤스, 기억의 천재 푸네스 (발췌본) Encyclopedie

보르헤스, 기억의 천재 푸네스

 

드디어 나는 내 이야기의 가장 난해한 지점에 이르게 되었다.

 

(푸네스)에게는 가장 오래되고, 가장 사소한 일들까지 기억이 났다…. 이제 그의 지각력과 기억력은 완벽한 것이 되어 있었다.

 

우리는 한번 쳐다보고서 탁자 위에 놓여 있는 세 개의 유리컵을 기억한다. 그러나 푸네스는 포도나무에 달려 있는 모든 잎사귀들과 가지들과 포도알들의 수를 기억한다. 그는 1882 4 30일 새벽 남쪽 하늘에 떠 있던 구름들의 형태를 기억하고 있었다. 그는 기억들 속에서 그 구름들과, 단 한 차례 본 스페인식 장정의 어떤 책에 있던 줄무늬들, 그리고 께브라초 무장 항쟁이 일어나기 전날 밤 네그로 강 가에서 노가 일으킨 물결들의 모양을 비교할 수 있었다. 그러한 기억들은 간단한 것이 아니었다.

 

그는 꿈과 비몽사몽간의 일들을 모두 복원시킬 수가 있었다. 그는 두어 차례 하루 전체를 되덜이켜 보곤 했었다. 그는 전혀 머뭇거리지 않았지만 그러한 복원작업만으로도 하루전체가 소요되었다. 그가 내게 말했다.

 

나 혼자서 가지고 있는 기억이 세계가 생긴 이래 모든 사람들이 가졌을 법한 기억보다 많을 거예요.”

 

그는 또한 말했다.

 

나의 꿈은 마치 당신들이 깨어있는 상태와 똑같아요.”

 

그리고 새벽이 다가올 무렵 또한 말했다.

 

나의 기억력은 마치 쓰레기 하치장과도 같아요.”

 

사실 푸네스는 모든 숲의 모든 나무들의 모든 나뭇잎들 뿐만 아니라 그가 그것들을 지각했거나 그것들을 다시 생각했던 모든 순간들까지도 기억하고 있었다. 그는 과거의 날들의 하나하나를 7천개의 기억들로 축약시키기로 마음을 먹었다. 그런 다음 그는 기호들을 가지고 그 기억들을 정의해 보려고 했다. 두 가지 이유 때문에 그는 그것을 포기했다. 그 작업은 끝이 없을 거라는 생각, 그리고 해보았자 쓸모가 없을 거라는 생각. 그는 죽을 때까지 한다 해도 심지어 어린 시절의 모든 기억들을 분류하는 일조차 끝낼 수 없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우리는 푸네스의 현란한 세계를 어떻게 조명하거나 추측할 수 있을까. 우리는 푸네스가 일반적인, 그러니까 플라톤적인 생각들을 할 수 없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는 <>라는 기호가 다양한 크기와 형상을 가진 수많은 하나하나의 개들을 포괄한다는 사실을 이해하기 힘들었다. 또한 그는 정면에 있는 개와 측면에 있는 개가 왜 똑 같은 이름을 가져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는 다형적이고 순간적이고 그리고 거의 견딜 수 없을 정도로 정밀한 세계에 대한 고독하고 명중한 관찰자였다.

 

그는 잠을 자기가 힘들었다. 잠을 잔다는 것은 세상으로부터 마음을 거두어들이는 일과 같았다. 간이 침대에 등을 누인 채 어둠 속에서 푸네스는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정밀하기 그지없는 집들의 틈새와 골격 하나하나를 새겨보고 있었다.

 

그는 전혀 힘들이지 않고 영어,프랑스어,포루투갈어,라틴어를 습득했다.

 

그렇지만 나는 그가 사고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의심이 들곤 했다. 사고를 한다는 것은 차이점들을 잊는 것이며, 또한 일반화를 시키고 개념화를 시키는 것이다. 푸네스의 풍요로운  세계에서는  단지 거의 즉자적으로 인지되는 세부적인 것들 밖에 없다.

 

나는 내가 했던 한마디 한마디가 그의 완고한 기억 속에 영원히 남아 있으리라는 생각을 했다. 나는 괜스레 쓸데없는 몸짓들을 증식시키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두려움에 까마득한 현기증을 느꼈다.

 

이레네오 푸네스는 1889년 폐울혈로 죽었다.

 

 


논평 -

오늘날 수많은 논자들이 인용하는 텍스트기 때문에, 요약해 보았다.


시중에 기억술에 관한 책은 많이 나와 있고,

각종 다큐나, 오락프로에 기억의 달인이 나와 자신의 능력을 뽐내지만,

정신의학 쪽으로 시선을 돌리면,

망각도 기억만큼 통제하기 난해한 분야다.

(가령 외상후 스트레스성 증후군... )


이 텍스트를 처음 접하고 ,

나에게 무엇을 잊을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지 생각해 볼 수 있었다.
 

그리고 티비에서 기억의 신동으로 나오는 친구들의 삶이

어느정도는 푸네스적인 고통...

즉, 기억하지 않아도 되는 것을 기억하는 것에 의해 기만당하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절대로 부럽지 않음!! ㅋㅋ,,

(가령 어떤 다큐에서 한 초등학교 학생이 한나 아렌트의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내용을 줄줄 말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는데,

'악의 진부함'이란 개념을 과연 이 친구가 알아야 할 특별한 이유가 있을까라고 생각해 봄...

너무 어린 나이에 세상을 너무 많이 알면, 나중에 세상이 매우 지루해질 수가 있다!!)


이 텍스트가 흥미로운 이유는,

오늘날 푸네스란 인터넷 세상에 다름 아니기 때문이다. 


푸네스를 인터넷으로 바꿔 읽어 보시기를 바란다.


본질적으로 오늘날 인터넷도, 푸네스와 비슷한 한계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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