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움베르토 에코] 고전의 찬양 Le monde

[움베르토 에코] 고전의 찬양

 

움베르토 에코의 칼럼 모음집 '미네르바의 성냥갑'

 

지금 책의 위기 시대에 고전들이 잘 팔린다고 한다.

 

무엇 때문에 고전은 확실함을 주는가?

 

고전작가란 특히 손으로 필사하던 시기에 많은 사람들이 다시 필사하고 싶어하던 작가이며, 오랜 세월 동안 시간의 타성과 망각의 사이렌 소리를 물리친 작가이기 때문이다. 물론 양피지 값도 되지 않는 작가들이 살아남고, 반대로 아마 위대했을지도 모를 다른 작가들은 영원히 잊혀지기도 했다. 하지만 통계적으로 볼 때 인간공동체는 건강한 상식을 토대로 반응한다. 따라서 고전이 된 작가들은 틀림없이 아직도 우리에게 무언가 좋은 것을 말해 줄 수 있다.

 

[오늘과 같은 위기의 시대에는 우리가 누구인지 더 이상 알지 못할 위험이 있다. 그런데 고전은 머나먼 과거에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했는지 말해 줄 뿐만 아니라 ,무엇 때문에 오늘날 우리가 아직도 그런 식으로 생각하는지 깨닫게 해준다. 고전을 읽는 것은 우리의 당대 문화를 심리적으로 분석하는 것과 같다. 거기에서 흔적과 기억들을 찾아내고, 도식들, 원초적 장면들을 찾아내고그러다 이렇게 감탄한다. 아하. 이제 알겠어. 무엇 때문에 내가 이런지. 또는 무엇 때문에 다른 사람이 나의 이런 모습을 원하는지 말이야. 사건은 바로 지금 내가 읽고 있는 이 글에서 시작되었어. 그리하여 우리는 우리의 경험을 조직하는 방식에서, 심지어 실수하는 방식에서도, 여전히 아리스토텔레스 또는 플라톤 또는 아우구스티누스처럼 되기도 한다.

 

고전 읽기는 뿌리를 찾아가는 여행이다. 뿌리를 찾는다는 것은 이미 알고 있는 것에 대한 향수 때문이 아니라, 우리가 어느 미지의 근원에서 나왔을 것이라는 모호한 느낌 때문이다. 고전 작품들을 재발견하는 독자는 바로 수많은 세대전부터 미국인으로 살아 온 사람이 자기 선조에 대해 무언가 알아야 할 필요성을 느끼고, 그것을 자신의 생각, 몸짓, 얼굴 특징에서 재발견하려는 것과 같다.

 

고전 작가들이 우리에게 제공하는 또 다른 멋진 것은, 그들이 우리보다 더 현대적이었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이다. 나는 종종 대서양 건너편 몇몇 사상가들을 보고 깜짝 놀라기도 하는데, 문화적으로 뿌리가 없는 그들은 단지 최근 10여년 사이에 출간된 책들만 기록된 참고 문헌 목록들을 작고 어떤 생각을 펼치면서 종종 제대로 전개시키지도 못한다. 그와 유사한 생각이 1백년 전에 훨씬 잘 전개되었다는 사실(또는 이미 천 년 전에 쓸모 없는 것으로 증명되었다는 사실)을 모른 채 말이다.

 

며칠전 어느 철학부 학생이 나한테 와서, 잘 추론하는 방법을 배우려면 무엇을 읽어야 할지 물었다. 나는 로크의 <인간오성론>을 추천했다. 그러자 그는 무엇 때문에 그 책이냐 물었고, 나는 만약 그날 내 기분이 달랐다면 아마 플라톤이라 <방법서설>을 추천했을 수도 있다고 대답했다. 학생은 그 책을 읽으면 자기가 하고 있는 연구에 도움이 될는지 질문하였다. 나는 대답했다. 나중에 중고차 판매상을 한다고 하더라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최소한 알 만한 가치가 있는 사람을 알게 될 것이다. 고전 읽기는 그런데 도움이 된다.

 

1993 




덧글

댓글 입력 영역
* 비로그인 덧글의 IP 전체보기를 설정한 이글루입니다.


2014 대표이글루


2016 대표이글루

2015 대표이글루

2013 대표이글루

2011 이글루스 TOP 100

2010 이글루스 TOP100

2010 이글루스 TOP100

2017 대표이글루_history

방문자

광고

2018 대표이글루_hi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