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산당선언의 문체에 대해... Le monde

[공산당 선언]의 문체에 대해

 

출처 목련꽃이질때님 블로그

주소- http://blog.daum.net/gangseo/17954296

 

움베르토 에코

 

다음 글은 움베르토 에코가 [공산당 선언] 150주년을 맞아 1998 1 8일자 이탈리아 일간지 <레스프레소>에 기고한 글입니다. 여기서 에코는 [공산당 선언]이 문학적으로 얼마나 뛰어난 텍스트인지를 특유의 백과사전적 지식과 익살을 섞어가며 설명하고 있습니다에코는 특히 [공산당 선언]의 인상적인 도입부와 예민한 쟁점을 비껴가면서도 독자에게 진의를 각인시키는 기술, 현란하고 정교한 텍스트 전략 등을 거론하고 있습니다. 이 글을 읽다보면, 마르크스가 얼마나 뛰어난 문학적 재능과 선동가적 자질을 지닌 인물이었는지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됩니다. 번역문은 열린책들에서 펴낸 [움베르토 에코의 문학 강의](김운찬 옮김)에서 발췌했음을 밝혀둡니다.

 

몇 페이지의 멋진 글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주장할 수는 없다. 단테의 전체 작품으로도 신성 로마 제국의 황제는 이탈리아 코무네들에게 돌아가지 못하였다. 그렇지만 분명히 지난 두 세기의 사건들에 커다란 영향을 끼쳤던 1848년의 [공산당 선언]이라는 텍스트를 상기해 보면, 문학적 특징의 관점에서, 또는 최소한 -비록 독일어로 읽지 않을지라도- 그 특이한 수사학 및 논증적 구조의 관점에서 다시 읽어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1971년에 베네수엘라 작가 루도비코 실바(Ludovico Silva)의 소책자 [마르크스의 문학적 문체]가 나왔고, 이것은 1973, 봄피아니 출판사에서 이탈리아어로 번역되었다. 내가 알기로 이 번역본은 이제 찾아볼 수 없는데, 다시 인쇄할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실바는 마르크스의 문학적 형성기의 역사까지 보완하면서 그의 전체 작품을 자세하게 분석하였다(읽어 본 사람들의 말에 의하면 아주 형편없지만, 마르크스가 시들도 썼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선언]에 대해서는 단지 서너 줄만 할애하였다. 아마도 엄밀한 의미에서 마르크스 개인의 작품이 아니었기 때문이리라. 어쨌든 아쉬운 일이다. 그것은 종말론적 어조와 아이러니가 번갈아 나타나는 아주 굉장한 텍스트이며, 효과적인 슬로건이자 명백한 설명이며, (만약에 자본주의 사회가 이 많지 않은 페이지가 가져온 지겨운 것들에 대해 복수하고자 한다면) 아마 오늘날에도 광고 학교들에서 아주 꼼꼼하게 분석해야 할 텍스트이다.

 

그것은 베토벤의 <교향곡 5>처럼 가공할 만한 고막의 울림과 함께 시작된다. "하나의 유령이 유럽을 배회하고 있다"(당시 우리는 아직도 고딕 소설의 낭만주의적 번창과 가까이 있었으며, 따라서 유령은 진지하게 받아들여야 할 실체였다는 사실을 잊지 말자). 곧이어 고대 로마에서부터 부르주아지의 탄생과 발전에 이르기까지, 계급투쟁의 역사를 날아가는 독수리의 눈으로 훑어보는데, 그 새로운 '혁명적' 계급이 성취한 정복욕에 할애된 페이지들은 오늘날의 자유 시장 경제 지지자들에게도 유효한 건국 서사시처럼 보인다. 자신의 상품들을 판매할 새로운 돌파구들을 찾아야 할 필요성에 이끌려 전 세계를 섭렵하고(내 생각으로는 여기에서 유대인 출신에다 메시아 같은 마르크스는 <창세기>의 서두를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 낮은 상품 가격은 바로 중국의 모든 장벽을 무너뜨리고 외국인에 대한 증오로 무장된 야만인들을 굴복시키는 중무장 대포이기 때문에 머나먼 나라들을 전복하고 변화시키며, 자기 권력의 토대이자 징표로서 도시들을 세우고 발전시키며, 다국적화하고, 세계화하며, 심지어 이제는 더 이상 민족 문학이 아닌 세계 문학을 창안하기도 하는 이 걷잡을 수 없는 힘을 우리는 본다(말 그대로 영화를 보듯이 '본다').

 

이러한 찬사(진정으로 경탄함으로써 나오는)의 마지막에 극적인 반전이 등장한다. 자신이 주문으로 불러낸 어둠의 세력들을 더 이상 지배할 수 없게 된 마법사처럼, 승리자는 자신의 과잉 생산에 압도당하고, 자기 자신의 시체 매장인들, 즉 프롤레타리아트를 자신의 품안에서 생성시키고, 자신의 내장 속에서 탄생시킬 수밖에 없다.

 

이제 이 새로운 세력이 무대에 등장한다. 그것은 처음에는 분열되고 혼란스러우며, 기계들의 파괴 과정에서 와해되고, 부르주아지에 의해 자기 적의 적들(절대 군주제, 토지 소유자, 소부르주아들)과 싸우는 수단으로 이용되지만, 차츰차츰 대부르주아지가 프롤레타리아화하는 자신의 적들, 가령 수공업자들, 상인들, 토지 소유 농민들의 일부를 흡수하고, 폭동은 조직화된 투쟁이 되고, 노동자들은 부르주아지가 자신의 이익을 위해 발전시켰던 또 다른 힘, 즉 커뮤니케이션 덕택에 서로 접촉하게 된다. 여기에서 [선언]은 철도를 인용하지만, 새로운 대중 커뮤니케이션도 생각한다(마르크스의 앵겔스를 [신성 가족]에서 당시의 텔레비전, 즉 신문 연재소설을 집단적 상상계의 모델로 사용할 줄 알았으며, 또한 거기에서 널리 유행된 상황과 언어를 사용하여 그 이데올로기를 비판하였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이 시점에서 공산주의자들이 무대에 등장한다. 그들이 누구이며 무엇을 원하는지 계획적으로 말하기 전에, [선언]은 오만한 수사학적 움직임으로 그들을 두려워하는 부르주아지의 관점에 서서 몇몇 이론화된 질문을 제기한다. 정말로 여러분은 사적 소유를 폐지하고 싶은가? 여자들의 공유를 원하는가? 종교, 조국, 가족을 파괴하고 싶은가?

 

여기에서 게임은 섬세해진다. 왜냐하면 [선언]은 이 모든 질문에 대해 마치 상대방을 진정시키려는 듯이 안도감을 주는 대답을 하는 것처럼 보이다가, 결국에는 예상치 못한 움직임으로 그 급소를 때리고, 프롤레타리아 대중의 환호를 얻기 때문이다...... 우리는 소유를 폐지하고 싶어 하는가? 천만에, 소유 관계는 언제나 변화하는 것이었으며, 프랑스 대혁명은 봉건적 소유를 부르주아적 소유로 바꾸지 않았던가? 우리는 사적 소유를 폐지하고 싶어 하는가? 어리석은 소리, 사적 소유는 존재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것은 전체 국민 90퍼센트의 희생에 기초한 10퍼센트의 소유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당신의' 소유를 폐지하고 싶어 하는 것에 대해 우리를 비난하는가? 바로 그렇다. 그것은 정확하게 우리가 하고 싶은 것이다.

 

여자들의 공유? 아니 천만에, 우리는 오히려 여자에게서 생산 수단이라는 성격을 없애고자 한다. 그런데 우리가 여자들을 공유하는 것으로 보는가? 여자의 공유는 바로 당신들이 만들어 놓은 것이며, 당신들은 당신들의 아내를 사용하는 것 외에도 노동자들의 아내를 이용하고 있으며, 당신들과 처지가 같은 사람의 아내들을 유혹하는 것을 최고의 오락으로 삼고 있다. 조국의 파괴? 하지만 노동자들이 갖고 있지 않은 것을 어떻게 빼앗을 수 있단 말인가? 오히려 우리는 승리함으로써 민족으로 형성되기를 원한다......

 

그런 식으로 종교에 대한 대답으로 이루어진 그 침묵에 가까운 걸작에까지 이른다. 그것은 '우리는 그 종교를 파괴하고 싶다'는 대답이라는 것을 직관적으로 알 수 있다. 하지만 텍스트는 그렇게 말하지 않는다. 그토록 예민한 주제에 접근하는 듯하다가 스쳐 지나가면서, 모든 변화는 대가를 치른다는 점을 이해시킨다. 간단히 말해 우리는 너무나도 뜨거운 문제들을 곧바로 건드리고 싶지 않다는 것이다.

 

그다음에 가장 교의적인 부분인 공산주의 운동의 계획, 다양한 사회주의에 대한 비판이 나온다. 하지만 이 시점에서 독자는 이미 앞의 페이지들에 의해 유혹된 상태이다. 그리고 만약 이 계획 부분이 너무 어렵더라도, 바로 여기에서 최종적인 반전이 나온다. 그것은 숨 막힐 정도의 두 개의 슬로건으로, 떠들썩한 성공을 예고하는(내가 보기에) 아주 쉽고도 기억에 남을 만한 것이다. "프롤레타리아가 잃을 것은 쇠사슬뿐이다." 그리고 "전 세계의 프롤레타리아여, 단결하라."

 

기억에 남을 만한 은유들을 고안해 내는 시적 역량은 별개로 하더라도 [선언]은 정치적 웅변의 걸작으로 남아 있다. 그뿐만이 아니다. 그것은 키케로의 [연설집]이나, 셰익스피어의 작품에 나오듯 카이사르의 주검 앞에서 마르쿠스 안토니우스가 행하는 연설과 함께 학교에서 공부해야 할 것이다. 마르크스의 훌륭한 고전적 교양으로 보건대, 그는 바로 그런 텍스트들을 기억했으리라는 것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Copyright By 열린책들

[출처] [공산당 선언] 문체에 대해 / 움베르토 에코|작성자 기호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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