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움베르토 에코]식물성 그리고 광물성 기억 : 책의 미래 - 1편 Le monde

다음은 움베르토 에코가 2003년 11월 1일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의 개관을 기념해서 한 강연 영어원문을

번역한 것이다. 원문이 긴 관계로 여러 글로 나누어 올릴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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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성 그리고 광물성 기억 : 책의 미래

알렉산드리아 시는 11 1일 이탈리아의 유명 소설가이자 학자인 움베르토 에코를 초청했으며, 새로 개관한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에서, 그는 영어로 문학적 그리고 지리적 다양성에 관해 강연했다. 주간 알-아람 지는 이 강연을 전문을 개제한다.

Vegetal and mineral memory: The future of books

The city of Alexandria played host on 1 November to the renowned Italian novelist and scholar Umberto Eco, who gave a lecture in English, on varieties of literary and geographic memory, at the newly opened Bibliotheca Alexandrina. Al-Ahram Weekly publishes the complete text of the lecture


WE HAVE THREE TYPES OF MEMORY. The first one is organic, which is the memory made of flesh and blood and the one administrated by our brain. The second is mineral, and in this sense mankind has known two kinds of mineral memory: millennia ago, this was the memory represented by clay tablets and obelisks, pretty well known in this country, on which people carved their texts. However, this second type is also the electronic memory of today's computers, based upon silicon. We have also known another kind of memory, the vegetal one, the one represented by the first papyruses, again well known in this country, and then on books, made of paper. Let me disregard the fact that at a certain moment the vellum of the first codices were of an organic origin, and the fact that the first paper was made with rugs and not with wood. Let me speak for the sake of simplicity of vegetal memory in order to designate books.


우리는 세 종류의 기억을 가지고 있다. 첫째는, 신체기관적인 것이며, 이는 살과 피로 이루어 지는 기억이며, 우리의 뇌에 의해 조정되는 것이다. 둘째는, 광물적인 것이며, 이런 의미에서, 인류는 두 가지 종류의 광물적 기억을 알고 있다 : 수 천 년 전에, 이것은 점토판과 오벨리스크로 대변되는 기억이다. 이 나라[이집트]에서 아주 잘 알려진 것이다. 그것들 위에 사람들은 그들의 텍스트를 새겨 넣었다. 하지만, 이 두번째 종류의 것[광물적 기억]은 또한 오늘날의 실리콘에 기반한 컴퓨터의 전자적 기억이기도 하다. 우리는 또한 다른 종류의 기억을 알고 있는데 , 식물적 기억으로, 최초의 파피루스로 대변되는 것이며, 이것 또한 이 나라에 잘 알려져 있는 것이며, 그리고 종이로 만들어 지는 책도 여기에 속한다. 특정 시대에 최초의 송아지 피지 문서가 신체기관적 기원을 가지고 있고, 최초의 종이가 양탄자이지 나무로 만들어지지 않았다는 점은 일단 무시하기로 하자.


This place has been in the past and will be in the future devoted to the conservation of books; thus, it is and will be a temple of vegetal memory. Libraries, over the centuries, have been the most important way of keeping our collective wisdom. They were and still are a sort of universal brain where we can retrieve what we have forgotten and what we still do not know. If you will allow me to use such a metaphor, a library is the best possible imitation, by human beings, of a divine mind, where the whole universe is viewed and understood at the same time. A person able to store in his or her mind the information provided by a great library would emulate in some way the mind of God. In other words, we have invented libraries because we know that we do not have divine powers, but we try to do our best to imitate them.


이 도서관은 과거에도 그랬고, 미래에도 그럴 것이듯이 책의 보존에 헌신할 것입니다 ; 따라서, 이곳은 식물성 기억의 신전이었고, 신전일 것입니다. 도서관들은, 여러 세기를 거치면서, 우리의 집단적 지혜를 보존하는 가장 효율적인 수단으로 기능해 왔습니다. 그것들은 과거에도 미래에도, 일종의 보편적 두뇌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우리가 망각한 것을 다시 기억해 내고, 우리가 아직 알지 못했던 것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은유적 표현을 사용해 보면, 도서관은 인간이 할 수 있는,가장 가능성이 있는, 신성한 기억의 모방입니다. 이곳에서 우주만물이 보여지고, 동시에 이해될 수 있는 것입니다. 거대 도서관이 제공하는 정보를 그 혹은 그녀의 기억에 보존할 수 있는 사람이야 말로 어떤 면에서 보면 신의 기억에 필적하는 것입니다. 달리 말해, 우리는 우리가 신성한 힘들을 가지지 못한다는 것을 알아서가 아니라 그것들에 필적할 정도로 우리의 최선을 다하기 위해 도서관을 발명한 것입니다.


To build, or better to rebuild, today one of the greatest libraries of the world might sound like a challenge, or a provocation. It happens frequently that in newspaper articles or academic papers some authors, facing the new computer and internet era, speak of the possible "death of books". However, if books are to disappear, as did the obelisks or the clay tablets of ancient civilisations, this would not be a good reason to abolish libraries. On the contrary, they should survive as museums conserving the finds of the past, in the same way as we conserve the Rosetta Stone in a museum because we are no longer accustomed to carving our documents on mineral surfaces.


오늘,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도서관 중 하나를 건설, 아니 재건한다는 것은 도전 내지 도발로 보입니다. 신문 기사들이나 학술 논문들에서, 새로운 컴퓨터와 인터넷 시대를 접한, 몇몇 저자들이 책의 사망가능성을 언급하는 것을 자주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만약 책이 사라진다면, 오벨리스크나 고대 문명의 점토판이 그랬던 것처럼, 이는 도서관들을 없앨 타당한 이유가 되지 못하는 것입니다. 반대로, 도서관들은 살아 남아야만 합니다. 박물관이 과거의 유물을 보존하는 것처럼 말이죠. 비슷한 맥락으로 우리는 박물관에 로제타 스톤을 보존합니다. 이는 우리가 더 이상 광물 표면에 우리의 문서를 새겨 넣는데 익숙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Yet, my praise for libraries will be a little more optimistic. I belong to the people who still believe that printed books have a future and that all fears a propos of their disappearance are only the last example of other fears, or of milleniaristic terrors about the end of something, the world included.


아무튼, 도서관들에 대한 나의 찬사들은 아주 보다 낙관적인 것이 될 것입니다. 나는 인쇄된 책들이 미래를 가지고 있고, 그것들의 소멸에 관한 모든 공포들이 ,세상을 포함한 모든 것의 종말에 관한 세기말의 공포들과 같은 종류의 공포들 중의 마지막 사례가 아닐까 여전히 믿는 사람중의 하나입니다. [역자주 - 세상의 종말에 관한 세기말적 공포가 잘못된 것이 듯, 책의 종말에 대한 공포도 마찬가지로 잘못된 것이다.]


In the course of many interviews I have been obliged to answer questions of this sort: "Will the new electronic media make books obsolete? Will the Web make literature obsolete? Will the new hypertextual civilisation eliminate the very idea of authorship?" As you can see, if you have a well-balanced normal mind, these are different questions and, considering the apprehensive mode in which they are asked, one might think that the interviewer would feel reassured when your answer is, "No, keep cool, everything is OK". Mistake. If you tell such people that books, literature, authorship will not disappear, they look desperate. Where, then, is the scoop? To publish the news that a given Nobel Prize winner has died is a piece of news; to say that he is alive and well does not interest anybody -- except him, I presume.


많은 인터뷰 과정에서, 나는 이런 종류의 질문에 대답해야만 했습니다 : “전자 미디어가 책들을 사라지게 할까요? 웹이 문학을 사라지게 할까요? 신 하이퍼텍스트 문명이 저자라는 개념도 없애버릴까요?” 여러분이 볼 수 있는 것처럼, 만약 당신이 잘 균형 잡힌 건전한 정신의 소유자람ㄴ, 이것들은 다른 질문들이고, 질문들이 제기된 맥락을 헤아려 보면, 우리는 질문자가 당신의 대답이 아니요, 냉정해 지자구요, 모든 것이 잘될 것입니다.”라고 대답할 때, 그가 위안을 느낄 것이라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아니죠. 만약 당신이 이런 사람들에게 책들,문학,저자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고 말한다면, 그들은 당황해서 어쩔 줄 모르게 됩니다. 그렇다면, 특종은 어디에 있는 거죠? 노벨상 수상자가 죽었다는 뉴스를 발표한다는 것이 일종의 뉴스이지, 그가 살아있고, 잘지낸다는 것은 누구의 관심도 끌 수 없는 것입니다. – 그 작가를 제외하고는 말이죠,나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WHAT I WANT TO DO TODAY is to try to unravel a skein of intertwined apprehensions about different problems. To clarify our ideas about these different problems can also help us to understand better what we usually mean by book, text, literature, interpretation, and so on. Thus you will see how from a silly question many wise answers can be produced, and such is probably the cultural function of naive interviews.


내가 오늘 하고 싶은 것은 다양한 문제에 관해 뒤죽박죽 알려진 것이 주는 혼란을 해명하기 위해 노력해 보는 것입니다. 이들 다양한 문제들에 대한 우리의 생각들을 명확히 하기 위해, 우리에게 늘상 책,텍스트,문학,해석 등등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보다 잘 이해하는 것이 도움이 될 것입니다. 이렇게, 여러분은 어떻게 어리석은 질문을 통해 많은 현명한 답변들이 만들어 질 수 있는 지를 보게 될 것이고, 이것이야 말로 아마도 순진한 인터뷰들의 문화적 기능이 아닌가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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