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민주노동당 그리고 환단고기... Le monde

글쎄, 유사역사학에 대해서는 솔직히 아는 바가 없다.

그리고 유사역사학 비판과 관련해서,

우리 블로그 세계에는 초록불님이 계시기 때문에,

나같은 문외한이 간여할 테마는 아니라 생각해 왔다.


지난 주말, 오랜만에 친구들과 만나서 긴 수다를 떨었다.

후배로부터, 흥미로운 제보를 접수하는데 성공했다.


이 후배에 따르면, 지난 12월 프랑스 파리에서, 파리포럼이라는 행사가 열렸다고 한다.

주로 민주노동당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주축이 된 포럼으로,

한국과 세계의 진보를 위한, 비판적인 테마들의 토론회 자리였다고 한다.


하지만, 눈길을 끈 것은,

토론 주제 중, 조금 튀어보이는 한 사랑방 좌담회 주제였다.



바로 강희남 선생님이 강연한,

<
우리 민족의 정리된 상고사와 환단고기> 였다.


아니.. 민주노동당 행사에 왠 환단고기?????? ㅋㅋㅋ..

참 생뚱맞아 보였다.

처음에는 이른바 유사역사학의 바이블인 환단고기식의 역사인식을 비판하는 자리인 줄 알았다.

그리고 파리포럼 홈페이지에 소개된 강연자의 약력을 봐도, 진보운동의 한 길을 걸어오신 분이 

바로 강희남 선생님이셨다


하지만, 나의 이러한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다음은 강희남의 포럼발제문이다.



파리 포럼 (17)

우리 상고사의 개요

 강희남 (기사입력: 2009/01/04 20:52)    

* 이글은 평소 필자 고유의 어법체계에 따라 교정없이 원문을 그대로 게재하였다._편집자주
------------
1.
환국

① 지구의 배꼽(중심부)이라 할 수 있는 Pamir고원이 최초 인류의 발상지라는 것은 동서양이 공히 인정하는 통설로 되어있는 것 같다.
② 환단고기에 따르면 9200개년 전에 환인천황이 파내륵산하에 나라를 세웠다 했는데 그 파내류산을 Pamir고원으로 과수학자들이 비정하고 있는 터이다.
③ 당시는 환인(桓仁)천황의 환국 밖에 나라가 없음으로 그 나라 령토가 카스피해 이동 전체 아시아를 포함했던 것으로 남북이 2만리요 동서가 5만리라 했다.
④ 이 나라가 6, 3300개년 계속했다 한다(환단고기 등 고서를 저작한 학자들이 참고한 수많은 고서들은 지금 점해지지 않기 때문에 상고할 길이 없음). 한편 필자는 그 환국이 우랄알타이어족의 조상이 아닌가 생각한다.

2. 신불 배달국

① 이것으로 환인천황의 환국은 끝나고 다시 환웅천황이 일어나 1차민족대이동으로 중국 본토 지역으로 옮겨 신불 배달국을 세웠으니 이것이 B.C. 3900개년 전이다. 환웅천황이 태백산에서 나라를 세웠다 했는데 전통적으로 그 태백산을 우리 백두산(태백산)이라 하지만 필자는 그 태백산이 중국 섬서성에 있는 태백산이라 주장한다. 3(三危) 태백(泰白)이라 했는데 3위는 지금 돈황 부근에 있고 흑수로 역시 그렇다. 그렇다면 3위 태백이라 할 때 그 3위에서 가까운 태백을 말함이요 우리땅의 태백을 말함이 아니었음이 분명하다. 그리고 백두산에는 그런 유적이 없지만 중국 태백산 위에는 풍백, 운사, 우사 등을 모신 사람이 있고 또 대야해(大耶海)라는 작은 못이 있는데 그 대야라는 말은 큰 어른이라는 뜻으로서 그 큰 어른은 환웅천황을 의미함이 분명하다고 보는 것은 그의 부하 풍백, 운사, 우사 등의 사당이 있는 것으로 추리될 수가 있는 바이다.
② 여기서 3국유사와 환단고기 등에 나오는 웅녀의 황당한 신화에서 추리되는 것은 환웅천황의 무리가 이주해 온 처지에서 그곳 토착세력인 웅씨족과의 관게로 보아지며 특히 웅씨녀와 환웅천황의 부부관게 설화에서 필자는 그것을 토착세력과의 정략적 국혼관게를 추정하는 바이며 그 웅씨족이 그후 게속해서 1종의 속국으로 세움을 받아 유지된 것으로 보는 바는 바이다.(후술)
③ 중국 력사에 나오는 복희씨와 신농씨 등이 사실은 우리 력사의 인물로서 복희씨는 5대 태우의 천황의 아들이고, 신농씨는 앞의 웅씨족의 후예인 것이다.
④ 이 신불 배달국이 13대 사와라천황까지 약 1100개년 지속되 끝난 것으로 보는 것이 필자의 견해이다.

3. 청구국(靑丘國)

① 배달국의 13대 사와라천황후 14대 자오리(치우)천황 때에서는 자우리천황이 청구국을 세웠다(3성기전 하편) 했는데 이에 대해서 그동안 아무도 말하지 않이한 것, 즉 우리 사서에서는 자오리천황의 10개년 동안 72번이나 황제 헌원과 싸워 승리했다고 나오지만 중국측 사서에는 그와 반대로 치우천황이 패한 것으로 나온다. 필자는 그래서 중국측 주장을 옳다고 여기는 것은 치우천황의 9려지역, 즉 호남지역 출신으로 일어나 황제 헌원과 10개년동안 처렬하게 싸우다가 패하여 중원땅을 황제에게 내여주고 북쪽 변방 청구에 가서 나라를 세웠다는 것이다.
② 이를 뒤바침하는 것으로는 당시 웅시왕족 출신 신농씨의 8대손 유망왕도 역시 황제에게 쫓겨나 만주지역으로 옮겨갔다는 기록이 있다(동국 력대기).
③ 청구국은 자오리(치우)천황의 후로 기록에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그 마지막 단웅 천제가 지금 만주지역 웅씨의 단국 웅백왕의 공주 신웅씨를 아내로 맞이했다(단제 세기)는 것으로 보아 그 무렵에 청구국은 이미 쇠망의 길로 들어 아마도 청구에서 몽골을 거처 지금 만주 단국 땅에 들어와서는 나라의 형태를 유지할 수 없게 되었던 것이 아닌가 싶다. 청구국은 약 400개년 동안 유지되었다고 보여진다.

3-1. 중국 력사의 시작

① 여기서 짚고 넘어갈 것이 있으니 중국의 력사는 자오리(치우)천황 당시(B.C. 3700개년) 황제 헌원이라는 토착민이 일어나 치우천황과 여러번 싸워 마침내 중원의 넓은 땅을 차지하고 황제가 되었다는 사실이다.
② 다시 말해서 황제 헌원은 중국 최초의 황제로서 력사에 등장하게 되었으니 우리 환인 천황의 력사보다 약 3500개년이 뒤진 것이다.
③ 그럼으로 제갈공명의 고향 양주에 공명의 사당 입구에 비가 서 있는데 거기 새기기를 “황제 건국○○○년”이라 했으니 이것이 정확한 기록이다.

3-2. 웅씨족과의 관게

① 위에서 이미 언급한 바 있지만 환웅천황 당시 그 곳 토착민으로 보여지던 웅씨족과의 구혼관게가 이루어지고 그들이 이미 국가형태를 유지하고 있었음으로 그 나라가 우리 민족의 속국이 되어 내려오다가(3한관경 본기) 그와 소전씨의 아들이 신농씨이니 신농씨도 웅씨족이었다. 그 후손 유망(8)이 역시 황제 헌원에게 쫓겨 만주지역으로 나가 나라를 세웠으니(단기고사) 3 5제기에 웅씨 나라들 중에 단국이 가장 강성했다는 기록으로 보아 환웅천황 당시부터 제후국으로 내려오던 그 웅씨 왕국이 만주지역으로 옮겨 단제시대에 강국을 이루었고 마침내 단제께서 그 외손이 되었다.
② 단제 11대 도해제 당시 유위자와 웅씨왕의 설화가 나오는 것으로 보아 그 웅씨 왕족과 관게가 환웅천황으로부터 시작해서 약 2000개년동안 이어저 왔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4. 단제 조선국

① 단제(단군)는 청구국 마지막 천황 단웅과 단국 웅시왕의 공주 신웅씨와의 사이에서 태어났으니 웅씨왕 유백의 외손이 된다( 5011개년 전).
② 그가 신인의 덕이 있어 14세에 웅씨왕이 듣고 그를 비왕(섭정)으로 삼아 24개년을 지냈다.
③ 웅씨왕이 전사함으로(3환관경 본기) 그 뒤를 이어 왕위에 올랐으니 이 때를 단군(단왕)시대라 할 것이다.
④ 그 단군시대가 얼마를 지냈는지 알 수 없으나 후에 그의 덕망이 온 천하에 떨치게 되어 마침내 9(환구깃대)의 백성들이 일어나 그를 추대하여 옛 9환의 땅을 어울으는 황제의 위에 올으게 한 것이다(단제세기).
⑤ 기록에는 국인이 모아 단국으로부터 나와 아사달(지금 하르빈)에 이르러 단목 아래에서 그를 황제로 추대했다 하나 필자의 소견으로서 9환의 사람들이 백두산에서 그를 추대하여 제위에 올으게 하고 후에 아사달에 나가 도읍을 정했다고 보는 것이다.
⑥ 단제 행년이 130세라 한다.

4-1. 단제의 년대

① 평양 단제릉의 유골 탄소화학 측정으로 그의 출생년대가 약 5011년 전이라 한다.
② 그렇다면 지금까지 알려진대로 단제의 출생년대가 B.C. 2333년이 아니고, B.C. 2973년에 대항하니 약 640개년 소급되는 바이다.

4-2. 단제 조선의 범위

① 이미 말한대로 9(환국)의 백성들이 모아들에 제위에 올으게 했고 혼일9(混一九桓)이라 옛 9환의 령토를 통1했다는 기록으로 보아 청구국으로 망해들어간 유민들이 단제 인물이 나니 그에게 모아들어 연국력을 회복시킨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당시는 중국의 요와 같은 때라 했으니 그 요의 나라는 하나의 미약한 존재가 아니었던가 싶다.
② 단제 6대 달문제 때에는 조공을 바치는 나라가 대국이 2, 소국이 20이요, 부락이 3600이라 했다.
③ 단제 이후 약 1200여개년이 지나기는 했지만 14대 고불제 대에는 인구가 18000만이었다 하니 당시 인구비례로 보아 그 령토가 어느 정도이었는가를 짐작하게 한다.
27대 두밀제 때에는 수밀리 운양 구다원제국에서 사신을 보내고 공물을 바쳤다 했으니 수밀리국은 Sumer를 가트기 것이니 Sumer나라가 그 당시까지 속국으로 지속되었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4-3. 단제라 칭해야 한다

① 이미 말한대로 단군이라 한 것은 웅씨왕이 전사하고 단제게서 그 뒤를 이어 왕위에 올랐으니 그는 웅씨왕의 직게(계가 아님으로 단왕이 아닌 단군이라 칭했음 즉하다. 그러나 얼마후에 9환의 백성들이 옛 9, 즉 환인천황 당시의 읍민들이 모아들어 황제의 위에 올으게 했으니 이제는 단군이 아니고 단제라 칭해야 한다는 것이 필자의 주장이다(이전에 대야발선생만이 단제라 칭한 것을 보였다).
② 군()이라는 것은 왕()보다도 낮은 지위이다. 그래서 연산이나 광해를 왕이라 하지 않고 군이라 했던 것인데, 단제를 군이라 칭함은 어불성설이다.
③ 단군이라 했기 때문에 최남선 같은 이는 단군을 무답소속으로 보고 단군은 11종의 무당출신으로 보는 망발까지 했던 것이다.

4-4. 기자에 대하여

① 우리나라 사대주의자들이 막연하게 기자 조선설을 날조해서 기자 천년 운운하게 된 것은 어처구니 없는 일이다.
② 우리 환단고기의 주체사관에 의하면 은나라가 B.C. 1123(기묘)년에 망하고 기자가 태산에 피신하여 3개년이 지나 마한왕(아도왕?)이 소식을 듣고 살피고 돌아왔다(3한관경기)했고 번한의 솔귀왕이 기자의 무리를 받아들여 료서지역에 거하게 했다 했고(단기고사) B.C. 1123년에 은이 망하고 3개년 지나 B.C. 1120년에 기자의 무리가 우리땅으로 들어오게 된 것이다.
③ 그리고 단제 25대 솔라제 37, B.C. 1114년에 기자가 서화(중국)로 돌아갔다 했으니 그렇다면 기자의 무리가 B.C. 1120년에 우리땅(수유)에 들어왔다가 그 자손을 남겨두고 7개년 후에 떠났다는 말이 된다.
④ 그리하여 단기고사에 따르면 번한 34대 토단황이 기자의 아들을 맞나보고 의분심을 갖었다 한 것으로도 그 자손들은 이 땅에 머물렀던 것을 알 수가 있다.
25대 솔라제 대에 기자가 서화로 돌아갔는데 26대 추로제 때부터 기자의 자손(아들?)으로 보이는 기백(箕伯)을 수유후로 삼았다 한 것으로 번한에서 기자의 자손들을 후로 봉했다는 것을 알 수가 있으니 여기서부터 기후까지 19사람의 기씨가 수유후로 나온다(단서).
-----------
*
필자 소개; {조국통일 범민족 연합} 남측본부 초대의장
*
이 글은, 민주노총 정책연구원 등 5개 단체가 2008 12 6~9일 프랑스의 파리에서 개최한 [2008 파리 국제정책 포럼(파리 포럼)]에서 필자가 발표한 내용이다






놀랍지 않은가? 전형적인 유사역사학 주장이지 않은가.

진보운동과 유사역사학간의 만남이라... ㅋㅋ..

충격과 실망 그 자체다.


나는 민노당 운동과 유사역사학은 서로 화해할 수 없는 서로 다른 두개의 사고라 생각해 왔다.

물론, 강희남 선생님의 역사인식이 민노당의 공식 역사인식인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민노당 주최 행사에서, 유사역사학 논의가 진지한 테마로 다뤄진다는 점에 유감을 보낸다.


정말이지,

유사역사학에 대한 민노당의 공식입장은 무엇일까

만약 민노당이 환단고기류의 역사인식에 호감을 가진다고 한다면,

그들이 표방하는 진보운동의 내용, 그 장래에 큰 의구심을 가질 충분한 이유가 있다고 생각한다.


민노당 운동과 유사역사학이 조속히 이혼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들의 만남 자체가 이데올로기적 불륜이라 생각되기 때문이다.

민노당이 진정한 진보운동의 친구로 남기를 간절히 바라며, 이 글을 마치고자 한다.

 

 




덧글

  • 소시민 2009/01/26 15:59 # 답글

    지구의 배꼽(중심부)이라 할 수 있는 Pamir고원이 최초 인류의 발상지라는 것은 동서양이 공히 인정하는 통설로 되어있는 것 같다.

    여기서 한 바탕 웃었습니다 ㅋㅋㅋ

  • 파리13구 2009/01/26 16:14 #

    ^ ^
  • 白色相簿 2009/01/26 16:18 # 삭제 답글

    그럴 일은 없을 것이다.
  • TSUNAMI 2009/01/26 16:18 # 삭제 답글

    민족이라는 어휘 하나로 친일적성격의 위서에서 태생한 대륙사관이 극좌계열의 사상체계에도 등장하는 걸 보면 '민족'이라는 개념과 이상에 너무 매몰되어 있던 민족해방계열의 문제가 초래한 -어떻게 보면 - 당연한 귀결이라고 생각합니다.(버엉)

    (김지하 시인이 여기에 빠져서 이상한 방향으로 간 것도 진짜 안타까운 일이지만)
  • 파리13구 2009/01/27 01:30 #

    네...
  • 2009/01/26 16:20 # 삭제 답글

    한국 진보 무시하나여^^

    자칭 진보면서 독재왕조 빨아주고 우리민족의 위대성에 자위질하는

    한국 진보 무시하나여^^
  • .. 2009/01/26 16:34 # 삭제 답글

    이런 이유로 진보신당이 생겨난 건 아닐까요..
  • 파리13구 2009/01/27 01:30 #

    그렇겠죠...
  • muse 2009/01/26 16:45 # 답글

    한국의 진보단체들에 세계적인 기준의 '진보'를 들이대는 것 자체가 시껍할 일이죠.

    포럼발제문 한 문단도 채 읽기 전에 눈앞이 하얗게 변하면서 혼백은 안드로메다로 고고~
  • 파리13구 2009/01/27 01:30 #

    ^ ^
  • Esperos 2009/01/26 16:48 # 답글

    "지구의 배꼽(중심부)이라 할 수 있는 Pamir고원이 최초 인류의 발상지라는 것은 동서양이 공히 인정하는 통설로 되어있는 것 같다."

    ......생명공학을 전공하는 사람으로서 이런 말만 들으면 천동설을 주장하는 사람을 보는 듯합니다.
  • 파리13구 2009/01/27 01:31 #

    ^ ^
  • 에톤 2009/01/26 16:59 # 답글

    민족이란 개념에 심취하다 보니 벌어지는 일이죠.
    NL과 PD가 갈라지는 이유도 있고요.
  • 파리13구 2009/01/27 01:32 #

    네...
  • 행인 2009/01/26 17:12 # 삭제 답글

    북환은 대동강문명설을 주장하기 때문에 환빠가 북환에서 태어났으면 모두 수용소행입니다.
  • 나인테일 2009/01/26 17:18 # 답글

    '민족주의' 좌파™ 민노당한테 뭘 기대하십니까..(....)
    좌파보다 민족주의가 앞서는 쟤네들이 집권했을 경우엔 히틀러의 재림이 될겁니다.ㄲㄲ
  • 파리13구 2009/01/27 01:32 #

    기대많이 안합니다..
  • Sanai 2009/01/26 17:19 # 답글

    저거 한 4년 전에 읽은 환빠의 책 내용 그대로......(...)
  • 파리13구 2009/01/27 01:32 #

    네...
  • 이준님 2009/01/26 17:33 # 답글

    외국에서는 극우나 할 이야기를 "좌파"가 한다는 것부터가 개그이지요
  • 파리13구 2009/01/27 01:33 #

    개그네요..^ ^
  • rumic71 2009/01/26 17:52 # 답글

    역시 한국에서는 좌우가 바뀌어 있다는...
  • 어울림 2009/01/26 19:25 # 삭제 답글

    현 민노당은 민족 좌파(말이 좋아 민족 좌파지 그냥 종북주의자들..)들의 소굴입니다.

    '진정한 진보 정당'은 진보신당이지 민노당이 아녜요.
  • 파리13구 2009/01/27 01:34 #

    그렇군요...
  • 지나가던비만 2009/01/26 20:53 # 삭제 답글

    일차적으로 애국과 민족주의를 바탕에 앞세운 극우파 정당이 좌파정당이라고 하는 것이 분단이란 특수한 현실의 반영이고, 이차적으로 광신적 민족주의 집단은 고대사와 혈통주의에 집착하는 (팍스 몽골리카나!) 경향은 드문 일이 아님. 따라서, 광신적 민족주의의 민주노동당과 고대사 종교집단의 친화력은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됨. 물론 이 결합이 낳을 파국은 제정일치임.
  • 파리13구 2009/01/27 01:34 #

    파국은 막아야겠죠...
  • 초록불 2009/01/26 20:54 # 답글

    민노당의 현 위상이니 뭐니를 떠나서 한국의 좌파들의 상당수가 유사역사학에 경도되어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유시민조차도 유사역사학적 사고를 선보이고 있으니 말 다했죠.

    http://orumi.egloos.com/3370835
  • 파리13구 2009/01/27 01:35 #

    유시민.. 너 마저도...
  • 들꽃향기 2009/01/26 21:36 # 답글

    민노당의 특정 계열은 이념적 배반이 아니라고 느낄겁니다. 특히 '민족'이 모든 가치의 우선이라고 느끼는 '유사좌파'들도 상당히 많으니깐요. ;;;

    그런 계열에선 특히 신채호의 사학을 거의 경전에 가깝게 인식하는 성향이 있는데, 그 성향이 유사역사학이 이식될 수 있는 상황을 만드는게 아닐까 싶습니다. 결국 유사끼린 유유상종 하는게 아닐까 싶어요 OYL
  • 파리13구 2009/01/27 01:35 #

    ^ ^
  • 헬마징가 2009/01/26 22:14 # 답글

    "좌파 민족주의 휴머니스트"

    세상만사를 선과 악의 대결로 바라보고, 자랑스럽고 당당한 한민족을 중심에 내세우면

    서, 오직 감성에 치우친 비난만으로 자신의 존재가치를 주장하는, 오직 대한민국에만

    존재하는 기괴한 퓨전의 결과물이죠.



  • 파리13구 2009/01/27 01:36 #

    기괴합니다....
  • 마음 2009/01/26 23:55 # 답글

    일반적인 극우파나 우파들은 민족국가가 세워지는 과정에서 형성된다는 점에서 비춰보면 한국은 그 점에서 좀 독특한편이다.

    반공=국시임을 더욱 강화시킨 한국전쟁과 세계냉전의 영향으로 한국의 지배층은 그 출발부터 한국전쟁의 구세주 미국에 압도적으로 경도 되었고 그 바람에 오히려 좌파내에서 민족주의 성향이 아주 강했던 게 사실이다.

    -우석훈 촌놈들의 제국주의 P 65

    대한민국 이라는 나라가 워낙 역사가 복잡해서,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우파 좌파의 개념을, 대한민국 땅에서 적용하자면 여러모로 낭패당할 듯합니다.
    공부하길 강요하는 세상이군요. 공부나 하러가야할 듯.
  • 파리13구 2009/01/27 01:36 #

    저두요....
  • 風林火山 2009/01/27 00:11 # 답글

    황당신기는 이제 아시아를 넘어 유럽까지 뻗쳐가는군요 ㄷㄷㄷㄷ
  • 파리13구 2009/01/27 01:36 #

    ^ ^
  • 黑白 2009/01/27 02:01 # 답글

    지구의 배꼽은 에어즈락 아니었던가요?
  • 파리13구 2009/01/27 02:18 #

    ^ ^
  • 키시야스 2009/01/27 02:12 # 답글

    일단 환단미싱링크부터 해결하고 말좀 할것이지...
  • 파리13구 2009/01/27 02:18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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