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지사항 및 방명록 - 2판... 나의 즐거운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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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은 프랑스 와 한국 사이에서, 올바른 사회란 무엇인가를 고민하는 블로그 입니다.

혁신을 추구하는, 20,30대 독자들을 대상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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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운영자 파리13구...

"모택동과 시진핑의 차이?" Le monde


홍콩에 대한 시진핑의 강경 정책을 보면, 그는 모택동이 가지는 어떤 여유를 가지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특정 국면에서 모택동은 苦撐待變 의 자세로 임하기도 했다. [苦撐待變 고통을 감내하며, 변화를 기다린다. Endure bitterness, await change.]

서두르지 않고, 바람직한 변화가 올때까지 100년, 심지어 1000년도 기다릴 수 있다는 자세로 협상에 임하는 여유를 가졌다는 것이다. 

가령, 미중화해를 위한 협상에서,


모택동, "대만은 작은 문제입니다. 세계가 큰 문제입니다." 1)

모택동과 키신저의 회담에서, 미중관계의 뜨거운 쟁점인 대만 문제에 대해서,

모택동- 그들은 반혁명 분자들의 집단이에요. 그들이 어떻게 우리랑 협조를 하겠어요? 난 당분간 대만 없이 할 수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100년쯤 지난 다음에 끼워주면 될 것 아닙니까! 세상사 모든 것을 너무 급하게 서두르지 맙시다. 그렇게 서두를 필요가 어디 있겠어요. 1200만명 남짓 살고 있는 자그만 섬에 지나지 않는걸.
주은래- 지금은 1600만명이나 됩니다.
모택동- 하지만 미국과 우리의 관계를 말하자면, 100년씩이나 걸릴 것이 없다고 생각해요.
키신저- 그 말씀을 믿고 싶습니다. 그보단 훨씬 빨리 이루어 질 것이라 생각합니다.
모택동- 하지만 그건 당신네가 결정할 문제입니다. 우린 서두르지 않을 거예요. 미국이 필요성을 느낀다면 할 수 있습니다. 미국이 지금은 할 수 없다고 느낀다면, 우리는 후일로 미루어도 괜찮습니다.

1)Kissinger, Diplomacy ( New York: Simon & Schuster, 1994),p.726.



1979년 중국이 베트남을 공격한 이유는? Le monde

[54년]지압,디엔비엔푸 공격을 연기한 이유는?




조슈아 아이젠만 Joshua Eisenman 은 제3차 인도차이나전쟁 즉, 1979년 중국의 베트남 공격을 화국봉 (화궈펑)과 등소평의 권력투쟁의 관점에서 해석했다.

1979년 2월 17일 중국 인민해방군 20만이 과거의 사회주의 동맹국 베트남을 공격했다. 16일 동안의 전쟁은 파괴적이었다. 베트남군이 중국군에 큰 피해를 주었다. 비록 중국군이 적의 방어선을 돌파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전쟁은 중국의 승리 선언으로 끝났다. 이 전쟁으로 21,000명이 전사했고, 그 중 중국 전사가가 13,000명으로 추정된다. 

아이젠만의 논문은 중국의 전쟁 결정을 국내 권력투쟁의 관점에서 해석한다. 

공격 결정은 모택동 사후의 중국의 권력투쟁의 일환으로, 두 개의 파벌 즉 모택동의 인민전쟁론 Mao’s People’s War strategy 계승파와 그 경쟁파인 인민군 현대화파의 갈등의 산물이라는 것이다. 

이 논문은 두 파벌의 갈등을 1959년부터 1981년까지 6단계로 나누어 분석했다. 

논문의 결론은, 등소평의 베트남 공격 결정은 중국 인민군의 현대화를 가속화하기 위한 것이며, 탈-모택동화 그리고 그의 공산당내 경쟁자 화국봉을 패배시키고, 마침내 등소평이 중국을 통치하기 위해서 결정한 것이라는 주장이다.  

Joshua Eisenman (2019): China’s Vietnam war: a domestic politics
perspective, Journal of Contemporary China

- 베트남 공산화에 대한 미국의 초기 공포는 도미노 효과였다. 베트남 인민군이 인도차이나 해방전쟁을 벌이고, 공산화의 물결이 아시아 각지로 퍼져나가는 사태를 우려했다.

하지만, 제3차 인도차이나 전쟁 이후 중국은 베트남 국경에 막대한 군사력을 유지했고, 베트남도 국경 수비를 위해 상당한 병력을 배치할 수 밖에 없었다. 즉 중국이 베트남발 공산화에 대한 저지 세력으로 등장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원래 미국이 해야할 역할을 등소평의 중국이 대신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김정은이 남한 주사파에 대해 가지는 의심은?"


김정은과 남한 주사파의 대랍과 갈등은 가능한가? ^^


김정은은 최근 북미관계의 악화에 대해 이런 생각을 가져 볼 수도 있다.

남한 보수주의자들은 문재인 정부가 주사파라 주장한다.

김정은은 대남 도발의 수위까지 조절하면서, 지난 총선에서 여당이 압승할 수 있는 국제적 조건 조성에 노력했다.

하지만, 이른바 주사파의 압승에도 불구하고, 북미관계 개선의 전망은 어둡기만 하다. 

무엇이 문제인가?

남한 주사파는 미제를 혐오한다. 그들의 친북 역사관은 백두혈통이 자랑하는 미제에 대한 투쟁에 대한 찬양이다. 

그런데, 백두혈통의 김정은이 미제의 수괴 도널드 트럼트와 악수를 한다? 골수 반미 주사파가 이런 친미 김정은을 어떻게 볼까? 

남한 주사파가 원하는 김정은의 모습은 무엇인가? 트럼프와 악수하는 김정은인가, 아니면 미제에 맞서 끝까지 투쟁하는 김정은인가? 

만약 남한 주사파가 원하는 것이 미제와 투쟁하는 반미투사 김정은이라면, 북미관계 개선에 주사파가 제동을 걸거나 고춧가루를 뿌리는 것도 가능하다.

김정은으로서는 한번쯤은 남한 주파사들이, 평양의 미제와의 데탕트를 반대하거나, 혹은 방해하는 것이 아닐까 의심할 수도 있다.  왜냐하면 남한 주사파들은 꼴통이니까 말이다. ㅠㅠ

베트남전 역사에서 하노이는 미제와 평화협상에 나서는데, 남베트남 민족해방전선이 딴지를 놔서 진땀을 흘린 적이 있다. 

"베트남 민족해방전선과 남한 주사파?" Le monde

[54년]지압,디엔비엔푸 공격을 연기한 이유는?




한국 보수가 주사파에 대해 가지는 환상 중 하나는 그들은 북한 체제에 절대 충성,복종할 것이라 전제하는 것이다. 

베트남전의 역사와 비교해 본다면, 전쟁을 통해 미국이 이해하기 시작하는 것은 이른바 공산주의 동맹체제의 작동 방식이었다. 

전쟁 초기 미국 당국자들은 공산주의가 '한 몸통'이라 전제했다. 모스크바가 심장과 머리 역할을 하며, 그들의 명령에 국제공산주의 세력이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며, 호치민의 하노이도 크렘린의 수족이며, 그들의 저항은 국제공산주의의 세계 지배전략의 일환이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호치민이 스탈린의 주구였는가? 관련 사실을 바탕으로 볼때, 스탈린은 호치민을 혐오했다. 마찬가지로 호치민도 스탈린을 좋아하지 않았다.  스탈린의 소련과 호치민의 베트남은 사회주의 형제관계였지만, 후자는 자율성을 가지고 있었다.

린든 존슨 시대의 미국의 대소련 베트남 전쟁 외교의 한계는 소련과만 합의하면, 베트남 전쟁을 끝낼 수 있다는 환상에 기초했다. 마치 크렘린이 하노이의 베트남 노동당에게, "전쟁을 그만해라, 이제 많이 묵었다 아이가"하면 베트남전이 끝날 것 처럼 말이다. 하지만 모스크바가 하노이에 행사할 수 있는 영향력은 분명 존재했지만 한계가 있었다. 특히나 소련의 대베트남 영향력은 모택동의 중국의 견제를 받았다. 소련이 전쟁을 끝내라고 하노이를 지나치게 압박하면, 중국이 소련을 수정주의자, 사회주의의 배신자, 민족해방운동의 방해꾼이라 비난했을 것이고, 소련의 국제적 위상에 상처를 가했을 것이다. 

이는 하노이와 남베트남 민족해방전선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러시아 역사가, 일라 기득 I.V. Gaiduk 에 따르면, 미국 당국이 생각한 것과 다르게, 하노이의 베트남 노동당과 남베트남 민족해방전선의 관계도 후자의 자율성이 돋보였다고 한다. 1)  하노이의 정책결정에 후자가 자동적으로 복종하는 그런 관계가 아니었다는 것이다. 워싱턴이 전쟁 정책을 정하는데 미국 여론의 눈치를 보듯이, 하노이도 민족해방전선의 견제를 받았다는 것이다. 가령, 하노이가 미국과 평화협상을 하기로 결정한다고 해서, 민족해방전선이 무기를 놓고 평화협상에 동의하는 그런 것이 아니라, 북쪽과 무관하게 남쪽은 사이공 체제 타도 투쟁을 계속할 수도 있었다는 것이다. 

민족해방전선과 유사하게, 남한 주사파도 자율성을 가진다고 가정할 수 있다. 평양의 명령에 무조건 복종하는 존재가 아닌 자율성을 가진 존재로 주사파를 가정한다면, '쐐기전략'이 가능해진다. 평양과 주사파가 이해를 달리할 이슈를 개발해서 양자의 사이가 자연스럽게 멀어지게 만든다는 것이다.

평양의 명령에 복종한다는 낙인이 한국에서의 주사파의 정치세력으로의 존립에 대한 치명적 위협이 된다는 것을 그들 스스로 깨닫게 될 날이 오기를 바란다. 

어떻게 보면, 김정은이 남한의 이른바 '꼴통' 주사파에 대해 성가심을 가질 수도 있다. 가령, 김정은 체제의 생존을 위해서는 미제 타도가 아니라, 미제와의 공존이 필요하다. 그런데, 남한의 반미 주사파가 김정은의 친미적 외교에 어떻게 반응할까? 백두혈통 김정은이 하면 무엇이든 옳다고 복종할까? 아니면 김정은의 친미 행보에 주사파가 고춧가루를 뿌릴 수 있을까? 베트남전의 역사를 보면, 주사파가 베트남의 민족해방전선 수준의 자율성을 가지고 있으면, 김정은의 노선 변화를 방해하는 꼴통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한국의 주사파 정책은 평양과 남한 주사파 간의 입장 차이에 주목하고, 이를 적절하게 이용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백두혈통에 대해 가지는 남한 주사파의 스테레오 타입 혹은 고정관념, 프레임이 김정은 정책결정의 자율성을 침해할 수 있다는 것이다.

1) I.V. Gaiduk, The Soviet Union and the Vietnam War (Chicago 1996). 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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