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지사항 및 방명록 - 2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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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리13구 | 2014/12/31 14:56 | 나의 즐거운 일기 | 트랙백 | 덧글(93)
"히틀러는 언제 유대인 절멸을 명령했을까?"
독일과 소련의 폴란드 침공-1939년 9월...


[홀로코스트]
[히틀러]



마이클 버레이에 따르면, 1941년 12월 12일의 나치당 고위당직자 회의에서 히틀러가 유대민족의 파괴를 지시했다고 한다. The Reich Chancellery meeting of 12 December 1941

총통부의 히틀러 관저에서 열린 회의였다. 회의에서 히틀러는 감정 혹은 연민 없이, 이제 유대인문제를 정리할 시간이 되었다고 선언했다. 독일에게 수많은 사망자를 안겨준 전쟁의 원인이 된 자들이 자신의 목숨으로 그 대가를 치러야 마땅하다는 주장이었다. 이는 대량학살의 조장이었다.

배경

이 날의 히틀러의 발언은 1939년 1월 30일의 자신의 예언의 실현을 지시한 것이었다.

<<나는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예언자 노릇을 할 때가 아주 많았다. 그리고 대부분은 조롱 받았다. 권력 투쟁을 하면서 내가 언젠가는 이 나라와 독일 민족을 이끄는 지도자가 되어 유대인 문제를 해결할 것이라 했을때 가장 먼저 웃었던 것이 유대인이었다. 한때는 독일에 사는 유대인이 공허한 웃음을 지었을지도 모르지만, 지금은 목구멍이 턱에 걸려 있을 것이다.

나는 오늘 다시 예언자가 되고자 한다. 

만약 유럽 안팎의 국제 유대인 금융 세력이 여러 나라를 또다시 세계대전으로 몰아넣는다면, 결과는 이 세상의 볼셰비즘화, 즉 다시말해 유대인의 승리가 아니라, 유럽에서 유대인라는 종족의 절멸이 될 것이다.>>

진주만 기습으로, 일본이 미국과의 전쟁에 나서게 되었고, 그 결과 1941년 12월 11일 나치 독일은 미국에 대한 선전포고를 했다. 이렇게 전쟁이 세계대전이 되었다.

그리고 선전포고한 다음날인 12월 12일 오후, 히틀러는 나치당의 최고 당직자들과의 회의를 열었다.


회의

12월 12일, 회의가 소집된 곳은 총통부의 총통 관저에서 였다. 회의가 히틀러의 집무실이 아니라 관저에서 열렸기 때문에 공식 기록은 남아있지 않다. 하지만, 괴벨스와 한스 프랑크가 일기를 통해 회의 내용을 기록했다.

괴벨스의 12월 12일 일기는 다음과 같다.

<<유대인 문제와 관련해서, 총통은 말끔한 청소를 결심했다. 그는 유대인에게, 만약 그들이 세계대전을 도발한다면, 그들은 절멸을 당하게 될 것이라 예언했다. 그것은 단순한 선전문구가 아니었다. 이제 세계대전이 발발했기 때문에, 유대인의 절멸은 필연적인 결과임이 분명하다.>>

영문 위키페디아의 관련 항목에 따르면, 유럽의 전쟁이 세계대전이 되었다는 사실 뿐만아니라, 미국의 참전으로, 유럽의 유대인을 미국의 참전을 막기위한 인질로 사용하려던 히틀러의 구상이 물거품이 된 것도, 나치의 유대인 정책의 급진화를 가속화시켰다고 한다. 볼모 가치가 사라진 유대 민족에 대해서, 히틀러가 결국 행동의 자유를 얻게 되었다는 것이다.

1942년 1월의 반제 회의와는 달리, 41년 12월 12일의 회의는 대부분의 나치당 최고위 간부들이 참석했다는 점에서 중요했다. 회의의 의미란 히틀러가 홀로코스트에 대해 몰랐다거나 그가 모르는 상황에서 하급 관리들이 실행한 것이 홀로코스트라는 주장은 사실이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한다.

회의는 유대민족에 대한 나치 체제의 태도의 전환점을 의미했다. 그 이전이 선전,협박,공격 위주였다면, 그 이후는 노골적이고 계획적인 절멸 위주였다.

참석자

아돌프 히틀러
하임리히 힘러
괴벨스
마르틴 보어만
한스 프랑크

불참자

헤르만 괴링
라인하르트 하이드리히 
by 파리13구 | 2014/09/23 13:20 | Le monde | 트랙백 | 덧글(0)
히틀러의 예언- 유대인 문제-1939년 1월 30일
독일과 소련의 폴란드 침공-1939년 9월...


[홀로코스트]
[히틀러]
[유대인문제][최종해결]



1939년 1월 30일, 집권 6주년을 맞아, 히틀러가 독일 제국의회에서 연설하면서, 또 다른 전쟁이 다가오는 것과 유대인 제거 간의 관련성을 공개적으로 드러냈다.


만약 유대인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면, 유럽에는 평화란 없게 될 것이다. 세계는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충분한 능력이 있지만, 우리는 결국 다음 관념과 단절해야만 한다. 즉 우리의 친애하는 하나님께서, 유대민족의 일부가 다른 사람의 몸과 생산적인 노동의 기생충적 수혜자가 되도록 의도하셨다는 개념과 작별을 고해야 한다.

유대인은 다른 민족들이 그런 것처럼, 존경할만한 생산적인 일에 종사해야 하며, 그렇지 않으면 조만간 상상하지 못할 정도의 위기에 굴복하게 될 것이다.

....

나는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예언자 노릇을 할 때가 아주 많았다. 그리고 대부분은 조롱 받았다. 권력 투쟁을 하면서 내가 언젠가는 이 나라와 독일 민족을 이끄는 지도자가 되어 유대인 문제를 해결할 것이라 했을때 가장 먼저 웃었던 것이 유대인이었다. 한때는 독일에 사는 유대인이 공허한 웃음을 지었을지도 모르지만, 지금은 목구멍이 턱에 걸려 있을 것이다.

나는 오늘 다시 예언자가 되고자 한다. 

만약 유럽 안팎의 국제 유대인 금융 세력이 여러 나라를 또다시 세계대전으로 몰아넣는다면, 결과는 이 세상의 볼셰비즘화, 즉 다시말해 유대인의 승리가 아니라, 유럽에서 유대인라는 종족의 절멸이 될 것이다."


-아돌프 히틀러

1939년 1월 30일


- 1941년 12월 11일 히틀러가 미국에 선전포고하면서, 전쟁이 세계대전이 되었다.

1942년 1월 20일, 반제 회의 Wannsee Conference 가 소집된 것은 바로 이같은 상황에서 였다. 히틀러의 1939년 1월 30일 연설에서의 예언, 즉 만약 전쟁이 세계대전으로 비화된다면, 그것은 유대인의 절멸을 의미하게 될 것이라는 총통의 예언을 구체적으로 실현하기 위한 방안이 논의된 회담이었다. 

아돌프 히틀러의 명령으로 소집되었으며 독일 제국 중앙안보국의 유대인 문제 담당국장 아돌프 아이히만을 비롯해 라인하르트 하이드리히가 이끄는 15명의 나치 관료가 참석했다.

유대인 문제의 최종해결을 구체화할 수 있는 방안이 논의되었다.
by 파리13구 | 2014/09/23 12:23 | Le monde | 트랙백 | 덧글(0)
"역사란 무엇인가?"
[역사학]
[역사교육]


우리 모두는 역사란 무엇인지 안다. 단, 우리가 그것에 대해 생각을 시작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하지만 그것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하면, 아무도 그것에 대해 모른다. 

Everyone knows what history is until he begins to think about it. After that, nobody knows.

앨런 그리핀 

—Alan Griffin


-  Alan Griffin, “History,” inWorld Book Encyclopedia, 1962 ed. (Chicago: Field Educational Enterprises Corporation, 1962). 
by 파리13구 | 2014/09/22 15:05 | Le monde | 트랙백 | 덧글(0)
괴벨스의 일기-1942년 3월 27일
독일과 소련의 폴란드 침공-1939년 9월...

[홀로코스트]
[유대인문제][최종해결]
[절멸 수용소]



"루블린에서 시작해서, 폴란드 총독령에서 지금 유대인을 동부로 이송 중이다. 자세히 밝히지는 않겠지만 상당히 야만적인 절차가 동원되고 있다. 대체로 60퍼센트는 정리대상이며, 겨우 40%만 일을 할 수 있다고 본다.

... 유대인에게 내리는 심판은 야만적이지만 너무나 정당한 응징이다. 만약 유대인이 새로운 세계대전을 도발한다면 죗값을 치를 것이라던 총통의 예언이 기가 막히게 들어맞았다. 

감상에 젖어서는 안된다. 우리가 유대인으로부터 보호받지 못하면, 유대인이 우리를 없앨 것이다. 아리아인과 유대인이 생사를 건 싸움을 벌이고 있다. 어떤 정부도 어떤 체제도 이 문제를 한꺼번에 해결할 힘이 없다. 

바로 이 문제에 대해서, 총통은 근본적인 해결책을 굳게 지지하고 성원한다. 전쟁이 우리에게 평화시였다면 우리가 날려버렸을 기회를 제공해 준 것을 신께 감사하자. 우리는 반드시 이 기회를 이용해야만 한다. 

폴란드 총독령의 도시들의 빈 게토들에서, 이제 제국에서 추방된 유대인들이 그 자리를 채우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이 과정은 얼마 뒤에 다시 반복될 수 있다."


- 괴벨스

1942년 3월 27일

그의 일기 중에서... 
by 파리13구 | 2014/09/19 16:35 | Le monde | 트랙백 | 덧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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