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지사항 및 방명록 - 2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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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리13구 | 2018/12/31 13:12 | 나의 즐거운 일기 | 트랙백 | 덧글(120)
[45년]베트남을 되찾기 위한 드골의 투쟁?
[1900년] 미국에게 필리핀은?

1945년

3월 13일

드골과 미국 대사 회담

 - 루스벨트의 미국이 인도차이나의 프랑스 반환에 대해 회의적인 입장을 보이고, 심지어 인도차이나에서 일본과 싸우는 프랑스 세력을 지원하는 것도 거절하자 드골이 화가 치밀었다.

제퍼슨 캐퍼리 Jefferson Caffery 대사와의 회담에서, 드골은 프랑스에 대한 미국의 태도에 항의했고, 프랑스 제국에 대한 미국의 적대 정책이 프랑스 국민의 심각한 환멸을 초래할 수있고, 이것이 프랑스를 공산주의와 러시아 지배로 이끌 수 있다고 경고했다.

다음 날의 라디오 연설에서, 드골은 인도차이나에서 일본과 싸우는 프랑스 군대에 미국 무기와 원조를 제공할 것을 호소했다. 

한편 런던에서 윈스턴 처칠은 조지 마셜에게, 만약 미국 공군이 프랑스 세력에 대해 무기와 탄약을 제공하지 않아서, 인도차이나에서 프랑스의 레지스탕스가 붕괴한다면, 이는 역사적으로 나쁜 평가를 받게 될 것이라 주장했다.

Gary R. Hess, The United States' Emergence as a Southeast Asian Power, 1940-1950, Columbia University,New York,1987. 143-144.
by 파리13구 | 2017/12/14 13:15 | Le monde | 트랙백 | 덧글(0)
[44년]동남아시아 사령부와 베트남
[1900년] 미국에게 필리핀은?

동남아시아 사령부 South East Asia Command (SEAC) 는 제2차 세계대전 동안 동남아시아 전선에서의 연합군 작전을 총괄 지휘하기 위한 조직이었다.

1943년부터 1946년까지 유지되었다. 

43년 8월, 윈스턴 처칠이 루이스 마운트배튼 을 동남아시아 사령부의 총사령관으로 임명했고, 마운트배튼은 46년까지 이 자리에 있었다.

동남아시아 전선에 프랑스가 참여하는 문제를 두고, 영국과 미국이 갈등했다. 영국이 프랑스의 참여를 주장했다면, 미국은 배제를 주장했다. 미국은 인도차이나 전선에 프랑스 군대가 개입하는 것에 반대했다.

44년의 쟁점은 장개석과 마운트배튼이 인도차이나에서의 작전구역을 정하는 문제와 관련이 있었다. 

영국이 인도차이나 전역을 마운트배튼의 지휘하의 동남아시아 사령부의 작전 구역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면, 미국 합동참모본부는 인도차이나는 중국 전선에 속하고, 장개석 군대의 작전구역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Gary R. Hess, The United States' Emergence as a Southeast Asian Power, 1940-1950, Columbia University,New York,1987. 130.

by 파리13구 | 2017/12/14 11:36 | Le monde | 트랙백 | 덧글(0)
[45년]미국 전략사무국과 베트남
[1900년] 미국에게 필리핀은?


[45년]미국 전략사무국과 베트남

적어도 1944년 말까지 베트남에 대한 미국 정책의 지배 원리는 '반식민주의'라 할 수 있었다. 루스벨트에게 태평양전쟁은 아시아에서 유럽 제국주의를 끝장내기 위한 전쟁이기도 했다. 하지만, 종전이 눈앞에 다가오고, 소련 세력을 견제해야 할 필요가 대두되면서
유럽에서의 소련 세력 견제를 위해, 유럽의 전통적 서방 동맹국과의 관계를 발전시킬 필요가 대두되었다. 이를 위해서 아시아의 유럽 식민지 처리 문제에 대해서 미국이 유화적 자세를 보여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기 시작한 것이다.

다음은 45년 4월, CIA의 전신이라 할 수 있는 미국 전략사무국 Office of Strategic Services  의 관련 보고서이다. 유럽의 냉전을 위해서 아시아에서의 유럽 제국주의에 대해 양보할 수 밖에 없다는 논리였다. 물론 태평양전쟁 동안 항일전쟁을 위해서 호치민의 베트민을 지원한 것도 전략사무국이었다.   
 


"우리는 아시아의 옛 식민지 지역을 잘 관리하면서, 식민지 반란을 사주하는 소련의 영향력을 견제하기 위해서 식민 통치체제의 자유화를 장려해야만 한다. 

우리는 당분간 유럽 제국을 약화시키거나 청산하는데 관심이 없고, 식민지역의 불안과 해체를 초래할 수 있는 국제적 신탁통치를 장려할 수 없고, 동시에 우리가 소련 세력을 견제하는 데 도움을 제공할 유럽 강대국들을 화나게 만들어서는 안 된다. 즉 우리는 남아시아와 남서 태평양에서 영국,프랑스 혹은 네덜란드의 지위를 약화시킬 수 있는 어떤 정책도 추진해서는 안 된다. 어떤 유럽 강대국도 극동에서 강력한 입지를 가지고 있지 않다. 

우리가 최소한으로 할 수 있는 것은 극동에서 그들을 더 약화시키지 않는 것이다. 소련을 견제하기 위한 우리의 관심이 우리를 반식민주의와는 정반대의 방향으로 우리를 이끌 수 밖에 없다."

We should encourage liberalization of the colonial regimes in order the better to maintain them, and to check Soviet influence in the stimulation of colonial revolt. We have at present no interest in weakening or liquidating these empires or in championing schemes of international trusteeship which may provoke unrest and result in colonial disintegration, and may at the same time alienate us from the European states whose help we need to balance the Soviet power. . . . We should avoid any policy that might weaken the position of Britain, France, or the Netherlands
in Southern Asia or the Southwest Pacific. . . . None of the European powers has a strong position in the Far East. The least we can do is to avoid any action that may weaken it further; our interest in developing a balance to Russia should lead us in the opposite direction.

OSS Memorandum, "Problems and Objectives of United States Foreign Policy," April 2, 1945, HST Papers, OSS Files. ; Gary R. Hess, The United States' Emergence as a Southeast Asian Power, 1940-1950, Columbia University,New York,1987. 125-126. 
by 파리13구 | 2017/12/14 04:25 | Le monde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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