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지사항 및 방명록 - 2판... 나의 즐거운 일기

안녕하세요!
파리13구 블로그 방문을 환영합니다.
이곳은 프랑스 와 한국 사이에서, 올바른 사회란 무엇인가를 고민하는 블로그 입니다.

혁신을 추구하는, 20,30대 독자들을 대상으로,
사회비교, 역사비교를 통해, 올바른 사회란 무엇인가를 고민하고,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믿음을 공유할 수 있는 블로그가 되기를 원합니다.

개인적인 문의는 비공개 덧글을 통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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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운영자 파리13구...

두 개의 한국 우파의 정통성? Le monde

최순실의 힘? ^^




위의 사진은 홍준표의 자유한국당의 우파 역사의 정통성을 주장하는 사진,

밑의 사진은 조원진의 대한애국당의 사진이다.

한국 현대사에 대한 2개의 역사인식과 역사의식이 존재하는 것인가? ^^


아이젠하워 시대의 미국-프랑스 관계? Le monde

[1900년] 미국에게 필리핀은?

국제정치에서 동맹이란 무엇인가? 동맹 속의 갈등은 어느 정도 수준까지 허용되는가? 20세기의 미불관계를 보면, 과연 동맹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2003년 미국의 이라크 침공을 즈음하여, 부시의 미국과 자크 시라크의 프랑스 관계는 좋지 않았다. 당시 많은 미국 관리들이 미불관계를 "어려운","성가신", 혹은 "무용한" 것으로 규정했고, 미국의 이라크 침공에 반대한 프랑스와 독일을 "족제비의 축" Axis of Weasels,” 이라 부르기도 했다. 가령, 한 여론 조사는 미국인의 단지 28%만이 프랑스를 동맹으로 보았고, 심지어 많은 응답자들이 프랑스를 적으로 규정하기까지 했다.

2003년을 즈음한 미불관계의 악화는 새로운 것이 아니었고, 제1차 인도차이나 전쟁 당시의 양국관계를 상기시키는 것이었다.  

냉전 동안 미국과 프랑스는 나토의 핵심 동맹국가였지만, 양국은 인도차이나 문제 처리를 두고 갈등했다. 당시 프랑스 지도자들이 베트민과의 전쟁으로 분투할 동안, 아이젠하워는 프랑스가 강대국 지위를 유지하기 위해서 신경질적으로 행동하고 있고, 감히 미국과 맞먹으려 든다고 비난했다.

그리고 프랑스 총리 피에르 망데스 프랑스 Pierre Mendès France 가 자국이 이 전쟁을 전장이 아닌 협상장에서 끝낼 것이라 발표하자, 미국 국무장관 존 포스터 덜레스 John Foster Dulles 는 미국은 프랑스를 두들겨 패서라도 동맹 관계를 유지하든지 아니면 이 나라와 갈라설 것이라고 주장했다. 

당시에 많은 미국 관리들이 프랑스와의 동맹의 가치에 대해 의문을 제기했다. 프랑스 측도 마찬가지 였다. 그들은 미국과의 협력 관계에 대해서 근심을 가지고 있었다.

이렇게 미국과 프랑스는 유럽에서는 나토라는 틀을 통해서 협력했지만, 극동의 인도차이나에서는 각자 상대방의 동맹으로서의 가치에 대한 의혹을 제기할 정도의 "가깝고도 먼" 동맹국이었다.     


참고-

Kathryn C. Statler, Replacing France: The Origins of American Intervention in Vietnam, University Press of Kentucky; Reprint edition (November 11, 2009),3. 

1950년 이전 미국의 베트남 정책의 유동성? Le monde

[1900년] 미국에게 필리핀은?

Mark Atwood Lawrence, Assuming the Burden: Europe and the American Commitment to War in Vietnam (Berkeley, CA: The University of California Press, 2005)

역사가 마크 로렌스의 연구사적 의의란, 미국의 베트남 전쟁 개입의 뿌리를 규명하기 위해서, 제2차 세계대전 시절의 역사로 거슬러 올라가서, 미국이 다른 선택을 할 수도 있었음을 보여주었다는 점에 있다.

로렌스에 따르면, 유럽의 반식민주의를 열렬하게 반대했던 프랭클린 루스벨트 서거 이후에도, 미국 정부 내부에 프랑스의 식민 통치 부활에 반대하는 목소리가 여전히 건재했다. 특히, 극동 문제를 담당하는 미국 국무부 관리들, 아시아 주재 미국 외교관들, OSS 요원들, 그리고 대기업 등이 미국 정책이 부상하는 아시아 민족주의의 편에 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기존의 연구는 1950년 미국의 프랑스의 전쟁 지원의 불가피성을 강조하면서, 트루먼 정부 시대의 미국의 반식민주의 세력의 힘과 노력을 무시했고, 그들이 일찌감치 프랑스의 제국 부활 기도에 반대하는 미국 정책을 세우려 노력한 점을 무시했음을 고려 한다면, 로렌스의 연구 공헌이 크다고 할 수 있다. 

그의 연구 덕분에, 우리는 1945년-1949년 말까지의 미국의 베트남 정책을 유동성의 관점에서 볼 수 있게 되었고, 이 기간 동안 동남아시아에서의 냉전은 필연적이었다고 볼 수 없게 되었다. 

네빌 체임벌린의 여동생의 한마디... Le monde

전쟁에 대한 체임벌린의 인식 변화...

(조카에게)

"네 아버지는 실패자이며, 어느 정도 내쫓김을 당해 마땅하지만, 

그가 지키고자 했던 모든 것이 아직도 건재하며, 

그리고 심지어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음을 통해 승리한 것처럼,

너의 아버지도 그러했다."


- 체임벌린의 여동생 힐다가 체임벌린의 딸 도로시 로이드에게 한 말

1941년 12월 21일

Chamberlain MSS, BC4/8/9, Hilda Chamberlain to Dorothy Lloyd
[Chamberlain's daughter] 21 Dec. 1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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