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지사항 및 방명록 - 2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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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운영자 파리13구...
by 파리13구 | 2015/12/31 15:06 | 나의 즐거운 일기 | 트랙백 | 덧글(97)
이란 핵협상 합의와 북한...
이란 핵협상을 일단락지은 오바마 대통령이 마지막 과제라고 할 수 있는 북핵 문제에 눈을 돌릴 가능성이 존재할까?

이에 회의적인 입장에서는 다음을 강조할 수 있다.


"동아시아에는 이슬람국가가 없다는 것!" ㅠㅠ


이슬람국가로 혼란 상태의 중동에서, 이란이 지역의 구세주가 될 수 있을까?

지난 2014년 6월,프랑스 주간지 쿠리에엥테르나쇼날 사설은 다음을 지적했다.

"이같은 혼란속에서 한 나라가 결정적인 역할을 할 것으로 전망된다. 그것은 바로 과거에 국제사회의 왕따였던 이란이다. 이란은 테러와의 전쟁에서 미국의 가능한 동맹 상대가 되었다. 비록 이란이 시리아 독재자 엘-아사드를 무조건적으로 지원한다고 하더라도 말이다. 테헤란의 혁명수비대가 이슬람 칼리프를 만들고자 하는 이슬람국가 전사 무리 보다는 더 사귈 가치가 있는 것처럼 보이는 오늘이다."


이란 핵협상 타결이 중동에서의 미국과 이란간의 데탕트라면,

데탕트에 대해 반발할 것이 분명한 이스라엘와 사우디 아라비아를 설득해서,

이란이 포함된 새로운 중동평화과정을 어떻게 연출할 것인지가 

미국의 중동전략의 주요 관심사가 될 것이라 본다. 


이런 맥락에서 중동평화과정은 이제 시작에 불과하다.
by 파리13구 | 2015/04/04 08:31 | Le monde | 트랙백 | 덧글(2)
티비쇼 진품명품의 재앙?
한국의 신분제 역사와 관련해서 전설로 전해지는 이야기다.


어느날, 티비쇼 진품명품이란 프로에 

한 참가자가 집안 대대로 소중하게 가보로 물려 내려오는 고문서 감정을 의뢰했다.



그런데 그 감정 결과는?

노비문서 였다고 한다. 

ㅠㅠ
by 파리13구 | 2015/04/01 05:48 | Le monde | 트랙백 | 덧글(5)
[키신저]50년대 핵전쟁에 대한 공포...
메테르니히,100년의 유럽 평화를 설계하다!



키신저의 박사학위 논문 <회복된 세계- 메테르니히, 캐슬레이 그리고 평화의 문제 ,1812-1822

A World Restored: Metternich, Castlereagh and the Problems of Peace >이 출간된 것은 1957년이었다.

19세기초의 유럽외교를 다룬 이 책의 서론을 시작하는 문장은 다음과 같다. 화두는 핵무기다!


"핵전쟁으로 인한 종말의 위협에 직면한 시대에, 외교가 지금보다 덜 극심한 벌칙들을 수반하고, 전쟁은 제한적이었고, 대재앙은 거의 상상할 수 없었던 시기를 향수어린 눈으로 회고하게 되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또한 지금같은 상황에서 평화를 이루는 일이 최고의 관심사가 되었다거나, 평화에 대한 필요가 평화를 달성할 계기를 제공할 것이라고 여기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다.

그러나 평화를 달성하는 일은 그것을 소망하는 일처럼 쉽지는 않다."


-키신저의 지적처럼, 평화를 소망하는 것과 평화를 달성하는 일을 동일시하는 것은 오류다. 

평화를 소망하기만 하면, 평화가 달성된다고 믿는 자에게 역사의 신은 뒤통수를 치기 마련이다. 

가령, 가장 평화롭게 보이는 시대에 사람들은 평화를 가장 덜 소망했다면, 사람들이 평화를 향한 끝모를 소망을 빈 시기에 세상은 가장 평화롭지 않았다. 

네빌 체임벌린의 유화정책의 비극은 무엇이었나? 그것은 바로 전쟁의 회피라는 의미에서의 평화가 어떤 국가나 국가집단의 일차적 목표였던 시기에는 언제나 국제체제가 국제사회의 가장 무자비한 구성원의 처분 앞에 무기력하게 놓여있음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평화의 소망이 평화의 달성으로 자동적으로 귀결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평화의 달성의 결과인 세계의 안정은 평화추구의 결과가 아닐 수도 있다.   


키신저의 고민은 핵전쟁으로 인한 종말의 위협에 직면한 시대에 국제적 안정은 어떻게 가능한가란 질문이었다. 

그 안정이란 단순히 전쟁을 막는 수준의 위태로운 소극적 평화가 아니라, 적대국들간의 합의에 기반한 적극적 평화를 의미했다.  

그의 박사 논문 주제인 빈체제가 19세기의 유럽협조체제였다면, 키신저의 데탕트 구상이란 20세기식의 냉전협조체제? 가 아니었을까? 
by 파리13구 | 2015/03/26 15:08 | Le monde | 트랙백 | 덧글(1)
68혁명과 데탕트?
메테르니히,100년의 유럽 평화를 설계하다!

[냉전]
[데탕트]
[68혁명]
[키신저]

최근의 외교사 연구 분위기를 보면, 외교사 혹은 국제관계 연구는 사학과가 아닌 정치외교학의 연구 대상이 되어버린 느낌이다. 사학과가 사상사,문화사,사회사 같은 테마를 연구한다면, 정외과는 국제정치학,외교론,외교사 등을 연구한다는 것이다.

이같은 외교사 연구에서의 사학과와 정외과가 분리된 상황에서는 미국의 위스콘신 대학 사학과의 제레미 수리의 권력과 저항- 세계 혁명과 데탕트의 등장,2003년과 같은 정치사회사와 외교사가 결합된 연구가 나오기 어렵다.

수리에 따르면, 키신저의 데탕트 정책의 배경은 무엇인가? 강대국 외교와 60년대말의 세계적 사회저항 운동이 관련있다는 것이다. 즉 60년대말의 세계적인 사회적 정치적 혼란의 등장에 크게 당황한, 냉전의 강대국들이 국제무대에서 안정을 추구하게 되었고, 그것이 바로 데탕트로 귀결되었다는 주장이다. 

물론, 반대 경우도 있다. 이미 널리 알려진대로 도요토미 히데요시 혹은 사이고 다카모리식의 논리, 즉 국내의 불안을 잠재우기 위해서 대외적으로 공격적인 정책을 추진하는 것과 반대의 사례를 보여주는 것이다. 
by 파리13구 | 2015/03/26 13:31 | Le monde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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