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지사항 및 방명록 - 2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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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리13구 | 2012/12/23 15:00 | 나의 즐거운 일기 | 트랙백 | 덧글(29)
“한나라당이 어렵게 된 이유?"

“한나라당이 어렵게 된 이유는 현 정권에 관여했던 인물들의 전횡을 포함해, 서울시장 보궐선거가 열린 자체도 해당된다. 한나라당 의원들의 지역구에서 다 하고 있는 무상급식 문제를 오판해 당을 어렵게 만들었으니 거기에 관련된 사람들도 당연히 책임을 져야 한다”


- 이상돈

한나라당 비상대책위원

- 특히, 이상돈은 나 전 의원이 서울 중구 출마 의사를 밝힌 데 대해 “오세훈 시장이 출마하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주장했다고 한다.

by 파리13구 | 2012/01/31 18:57 | Le monde | 트랙백 | 덧글(1)
"중소국경분쟁에 대한 닉슨의 결심은?"

1969년 여름, 중국과 소련간의 전쟁 발발 조짐이 높아만 갔다.  중국과의 국경에 배치된 소련군 병력은 42개 사단, 즉 백만 대군이었다. 당시 소련의 관리들은 전 세계의 지인들에게 만약 소련이 중국의 핵 시설을 선제공격한다면 그들 정부는 어떻게 반응할 것인지 알아보기 시작했다고 한다.


만약 이번 충돌을,미국식 냉전의 이데올로기라는 관점에서 보면, 미국의 적인 공산주의 진영의 자중지란 自中之亂이 분명했고, 경우에 따라 미국은 마치 산꼭대기에 앉아 호랑이 두마리의 싸움을 지켜보는 사냥꾼의 입장에서, 정세를 관망하면서 이익을 볼 수도 있었다.


그렇다면, 미국의 닉슨은 실제로 어떤 결정을 내렸을까? 헨리 키신저에 따르면 다음과 같다. 즉 닉슨은 이데올로기가 아니라, 지정학적 고려에 입각해서 정책을 수립하겠다는 결심이 확고했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만약 힘의 균형에 근본적인 변화가 생긴다면, 미국은 모종의 대책을 수립해야만 했다.

1969년 8월, 국가 안보 위원회에서 닉슨은 한가지 결심을 했다. 당시로서는 충격적이었다. 즉 당시의 상황에서, 소련이 한층 더 위험한 상대이며, 따라서 중소전쟁에서 만약 중국이 참패하면, 미국의 이익에 반한다는 결론을 내린 것이다. 이는 닉슨 대통령이 중국 문제에 관한 한, 지정적학 고려가 다른 모든 고려를 압도한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는 것이다. 이것을 당시에 키신저는 다음과 같은 정책으로 정리했다고 한다 : 만약 소련과 중국이 대치할 경우, 미국은 중립적 입장을 취하겠지만, 그런 틀 안에서 가능한 한 최대로 중국 쪽으로 기울 것이라는 것이다.


키신저의 회고에 따르면, 이는 미국 외교 정책에서 혁명적 순간이었다고 한다. 즉, 20년 동안이나 접촉도 없었고, 한국에서 한차례의 전쟁과 대만문제로 두 차례의 군사적 충돌을 했던, 한 공산주의 국가의 생존에 대해 미국이 지정학적 전략적 이해관계를 가진다고 미국 대통령이 선언했던 것이다! 

by 파리13구 | 2012/01/31 18:11 | 유럽외교사 | 트랙백 | 덧글(0)
중소국경분쟁과 중국외교...
모택동의 혁명적 외교의 결과는?

1969년 3월, 중소국경분쟁이 심각해지자, 중국은 소련과의 전쟁 가능성을 진지하게 고민하게 되고, 특히, 소련과 중국이 충돌할 경우, 미국이 소련을 지원할 가능성에 대해 경계하기 시작했다.

이같은 외교적 위기에 직면해서, 소련이 중국을 대규모로 침공할 경우, 중국을 미국이라는 카드를 집어들어야만 하는가의 문제를 논의했다고 한다.

이에 대해, 천이는 스탈린이 히틀러와 맺었던 독소불가침조약을 검토해봐야 한다고 제안했다고 한다.

한편, 예젠잉은 삼국지에 나오는 제갈량의 전략을 소개했다고 한다 : "우리는 위,촉,오 3국이 자웅을 겨루던 시절, 제갈량의 기본 원칙을 예로 삼을 수 있다. 즉 동쪽으로 오와 동맹을 맺어, 북쪽의 위에 맞선다는 전략이다."
by 파리13구 | 2012/01/31 17:24 | 유럽외교사 | 트랙백 | 덧글(0)
모택동의 원교근공 遠交近攻 ?

모택동의 혁명적 외교의 결과는?

1960년대말, 자신의 혁명적 외교의 결과로 중국의 고립이 심화되었다는 점을 실감한 중국의 모택동은 고립을 청산할 방안을 모색하게 된다. 그것은 바로 미국과의 화해였고, 바로 여기서 원교근공 遠交近攻 의 교훈이 적용되었다. 즉, 먼 나라와 친교를 맺고 가까운 나라를 공격하라는 것이었다.

1969년 마오의 주치의는 그와의 대화를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모택동이 나에게 수수께끼를 냈다. 하루는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 이걸 생각해 보게. 우리 북쪽과 서쪽에는 소련이 있고, 남쪽에는 인도가 있으며, 동쪽에는 일본이 있어. 만약 이들이 모두 힘을 합해 사방에서 우리를 공격한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한다고 생각하나?


주치의가 당혹감을 드러내자, 그는 계속 말을 이었다 : 다시 생각해 보게. 일본의 저 너머에는 미국이 있어. 우리 조상들은 가까이 있는 적과 싸울 때는 먼 나라와 손을 잡으라고 가르치지 않았던가?"

by 파리13구 | 2012/01/31 17:01 | 유럽외교사 | 트랙백 | 덧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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