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지사항 및 방명록 - 2판... 나의 즐거운 일기

안녕하세요!
파리13구 블로그 방문을 환영합니다.
이곳은 프랑스 와 한국 사이에서, 올바른 사회란 무엇인가를 고민하는 블로그 입니다.

혁신을 추구하는, 20,30대 독자들을 대상으로,
사회비교, 역사비교를 통해, 올바른 사회란 무엇인가를 고민하고,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믿음을 공유할 수 있는 블로그가 되기를 원합니다.

개인적인 문의는 비공개 덧글을 통해
방명록에 덧글로 남겨주시기 바랍니다.

- 운영자 파리13구...

타키투스의 한마디... Le monde



"그들은 황무지에 분쟁을 조장하고, 그것을 평화라 불렀다."

-타키투스

로마제국의 영국지배에 대해서...

[1885년] "비스마르크와 판데위기?" Le monde


1885년 3월 30일

북부 아프가니스탄 판데에서 영국이 지원하는 아프가니스탄군이 러시아군과 무력충돌했다. 

판데 위기에 대해서 독일의 비스마르크는 다음과 같은 인식을 가졌다.

비스마르크와 판데 위기

비스마르크가 빌헬름 1세에게,
“만약 러시아군이 해외 전쟁을 치르지 않는다면, 제국과 로마노프 왕조의 국내 안보를 위협할 것이다. 만약 아시아에서의 이런 갈등이 끝난다면, 러시아 군대는 서쪽 국경에서 새로운 전쟁을 찾을 것이다. 지난 수 년 동안, 아시아에서 평화의 전망이 밝아지기 시작하자, 러시아의 포병전력이 즉시 증강되었고, 서쪽 국경에서 진지 구축 작업이 강화되었다.” 비스마르크가 빌헬름1세에게, 1885년 5월 1일; 

Stone, James. “Bismarck and the Great Game: Germany and Anglo-Russian Rivalry in Central Asia, 1871-1890.” Central European History, vol. 48, no. 2, 2015, 155.

판데위기로 중앙아시아에서 일격을 당한 영국이 극동에서 반격한 것이 바로 같은 해 4월의 거문도 사건이었다.

비스마르크의 아시아 정책이자 대러시아 정책은,
러시아가 국력을 서쪽의 유럽이 아니라, 동쪽의 아시아에서 소모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따라서 비스마르크의 독일은 러시아의 적극적 아시아 정책을 지원했다. 

한국에서의 묄렌도르프의 활동은 이런 맥락에서 이해된다. 최문형은 묄렌도르프가 비스마르크 동아시아 정책 실행을 위한 출장소장과 같았다고 했다. 

비스마르크가 지원한 러시아의 적극적인 아시아 정책의 끝에는 러일전쟁의 비극이 있었다. 

러일전쟁 패배 이후, 러시아는 다시 관심을 서쪽으로 돌렸다. 그리고 그 유럽중시정책의 끝에는 바로 제1차 세계대전과 제정 러시아의 몰락이 기다리고 있었다. 

제1차 세계대전은 러시아가 동쪽에서 뺨맞고, 서쪽에서 분풀이한 것에서 기인했고, 그 배후에는 비스마르크의 아시아 정책이 있는 것인가?

그리고 러시아가 동쪽을 포기하자, 일본의 한국 지배는 역사의 필연이 된 것인가?

클리타이메스트라의 한마디... Le monde

클리타이메스트라, “군중은 정말 골치아픈 존재예요.” 

에우리피데스, 아울리스의 이피게네이아, 그리스비극, 264.


트로이 원정을 앞둔 그리스 연합군에게 신탁은 원정군 사령관 아가멤논의 딸 이피게네이아의 희생을 요구했다. 

주요 당사자들은 미케네 공주의 죽음을 원치 않았다. 

이피게네이아의 죽음을 가장 강력하게 주장한 것은 그리스의 병사들이다. 

클리타이메스트라가 군중을 비난한 것은 바로 이 때문이었다.

오늘날 프로야구 감독이라면 공감할 것이다. ㅠㅠ

"산토리니 테라 화산과 터키의 보즈다그 산?" Le monde


기원전 1550년 경 그리스 산토리니의 테라 화산이 대폭발을 했다. 화산 폭발은 3-4일에 불과했지만, 화산재가 바람을 타고 에게해 전역으로 퍼지면서 재앙을 연출했다. 

그림 속 붉은 표시는 터키의 보즈다그 산 부근의 골쿡 호수이다. 테라 화산에서 514 킬로미터 떨어진 곳이다. 바로 이 호수에서 12 cm 두께의 테라 화산재 층이 발견되었다. 1) 

고고학 발굴 성과에 따르면, 고대의 테라 화산 폭발의 화산재는 산토리니 섬의 동쪽, 터키의 소아시아와 크레타 섬에서 주로 발견되었다. 이는 편서풍 때문이었다. 

말하자면, 그리스 본토는 화산재의 피해가 미미했다는 것이다. 바로 테라 화산 폭발과 편서풍 때문에 그리스 본토의 미케네 문명과 크레타의 미노아 문명의 운명이 바뀐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기원전 1550년의 테라 화산 폭발이 미노아에게는 재앙이 그리스 본토의 미케네 문명에게는 기회가 되었다는 것이다. '바람의 신'이 화산재를 소아시아와 크레타 섬 쪽으로 날려보낸 것이다. 오늘의 우리에게는 편서풍이지만, 그리스인들은 제피로스(Zephyros)라 불렀을 것이다. 제피로스가 탄생시킨 것은 보티첼리의 비너스 뿐만 아니라 미케네의 패권이었던 것이다.

기원전 1420년

미케네인이  크레타의 미노아 정권을 붕괴시키고, 크노소스를 정복했다. 2) 

1) Bettany Hughes,Helen of Troy, 72.

2)마이클 우드,트로이 잊혀진 신화, 339.

1 2 3 4 5 6 7 8 9 10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