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지사항 및 방명록 - 2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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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리13구 | 2016/12/31 04:54 | 나의 즐거운 일기 | 트랙백 | 덧글(98)
해리 트루먼의 한국문제에 대한 인식 변화...
역사가 마거릿 맥밀런 Margaret MacMillan

[한국전쟁]
[해리 트루먼]
[한국정책]



1950년 6월의 해리 트루먼 회고록에 따르면, 트루먼의 한국전쟁 개입 의지는 마치 오래전부터 형성되어온 일종의 역사의식의 산물인 것처럼 보인다.

트루먼은 그의 회고록에 다음과 같이 기록했다 :

나는 만주와 에티오피아 그리고 오스트리아에서 일어났던 이전 의 몇 가지 사건들을 되돌아보았다. 민주주의가 행동에 실패했을 때마다 그것이 침략자들에겐 성공할 수 있는 빌미가 되었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마치 히틀러와 무솔리니와 일본이 10년,15년,20년 전에 자행했던 것처럼 공산주의가 한국에서 움직이고 있었다. 만일 남한이 몰락하도록 허용된다면 공산주의 지도자들은 의기 충천하여 국가들을 유린하고 감히 내 조국의 해안선에까지 이를 것이 라고 확신했다. 만일 공산주의자들이 자유세계의 아무런 저항을 받지 않고 대한민국으로 자신의 세력을 확장하게 된다면, 어떠한 약소국도 강력한 이웃 공산주의자들의 침략과 위협에 저항할 용기를 갖지 못할 것이다. 만일 이러한 일들이 아무런 도전도 없이 용납 된다면, 그것은 제2차 세계대전을 불러 일으켰던 역사적 유사사례 들이 보여 주듯이 제3차 세계대전을 의미하게 될 것이다 

출처-
Harry S. Truman, Memoirs, 2 Vols. Ⅱ,Years of Trial and Hope'. 332-33.


하지만, 리처드 노이스타트,어니스티 메이에 따르면, 적어도 1949년까지 한국문제와 미국의 군사개입 문제에 대한 트루먼의 인식은 이와 정반대였다고 한다. 

가령, 국가안보 보장회의에서 트루먼은 비스마르크의 다음 발언, 

"발칸은 온전한 포메라니아 척탄병 일개 연대 보다도 더 중요한 가치를 가진다고 할 수 없다."
"Balkans were not even worth the healthy bones of a single Pomeranian musketeer,"를 패러디해서 다음과 같이 말하기도 했다는 것이다.

[비스마르크,1878년 2월, 제국의회에서의 연설 중에서...]

“남한은 온전한 미주리 방위병의 목숨 보다도 더 중요한 가치를 가진다고 할 수 없다”고 트루먼이 1948년에 결론내렸다는 것이다. 

그리고 1949년 국가안전 보장회의에서 한국문제가 다시 논의되었는데, 흥미로운 것은 이 회의에는 1950년 6월의 결정을 내린 핵심 멤버들을 모두 포함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이 회의에서 그들이 내린 결론은 다음과 같았다 : “한국이 미국에게 전략적 가치가 거의 없으며, 미국이 한국에 군사력을 사용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그들은 트루먼 정부의 대한정책의 기본노선을 재확인했다. 

그렇다면 제기되는 질문은 다음과 같다 : 남한이 군사적으로 가치가 없다고 평가했음에도 왜 트루먼은 1950년에 한국전선에서 미군 개입을 결정하게 되었는가?  

[출처-리처드 노이스타트,어니스티 메이, 역사활용의 기술, 84]


by 파리13구 | 2015/08/03 20:20 | Le monde | 트랙백 | 덧글(1)
케네디의 한마디...
역사가 마거릿 맥밀런 Margaret MacMillan

[케네디]
[쿠바 미사일 위기]

쿠바 미사일 위기가 한창인 시절, 케네디 대통령은

"항상 말을 안 듣는 개자식들이 있단 말이야"란 발언을 했다고 한다.


- 1962년 10월 27일

미국의 U-2 정찰기가 쿠바 상공에서 소련 미사일에 의해 격추되자...

케네디는 격추에 대해서 즉각 보복하지 않고, 신중하게 기다리는 쪽을 선택했다.
by 파리13구 | 2015/08/03 17:49 | Le monde | 트랙백 | 덧글(0)
[쿠바위기] 역사는 두번 반복되는가?
역사가 마거릿 맥밀런 Margaret MacMillan

[카터]"오인이 국제적 위기의 원인이 될 수 있나?"

칼 맑스는 <루이 보나파르트의 브뤼메르 18일>에서 다음을 주장했다 : "역사는 두 번 반복된다. 한 번은 비극으로, 다른 한 번은 희극으로"

미국 외교정책사에서 소련과 관련된 중요한 쿠바 위기는 두번 있었다. 1962년과 1979년! 전자가 핵전쟁으로 인한 세계를 멸망의 위기로 몰아갈 뻔했던 비극이었다면, 후자는 미국측의 오해에서 기인한 희극이었다.

카터 정권하의 제2차 쿠바위기는 어떤 것이었을까?

미국 정치학자 뉴스태트와 역사학자 어니스트 메이는 <역사활용의 기술>에서, 오해가 국제적 위기의 원인이 될 수 있기 때문에, 문제의 전후 사정을 알아야, 불필요한 시행착오를 피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가장 인상적인 예를 들자면, 1979년의 쿠바 위기다.[참고- 1962년 10월의 쿠바 미사일위기와는 다른 위기였다.] 1979년 여름에 최근 소련이 쿠바에 전투 부대를 배치했다는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이 소문은 소련과 미국이 긴장 국면에 돌입하던 시기에 났을 뿐만 아니라, 소련이 핵무기를 포함한 군사력을 쿠바에 집중시킨 1962년 쿠바 미사일 위기를 생생하게 상기시키기도 했다. 당시의 위기는 흐루시초프가 케네디 대통령의 요구에 승복해 로켓과 핵무기를 철수하면서 끝이 났다. 케네디 대통령은 그 대가로 미국이 쿠바를 침입하지 않겠다는 암약을 맺었다. 그렇다면 과연 소문의 소련 전투 부대는 과거와 비슷한 위기의 시발점이었을까? 그리고 소련이 군대를 철수하기로 한 1962년의 합의를 명백히 위반한 의도는 무엇이었을까?

카터 대통령의 국가안보담당보좌관 즈비그뉴 브레진스키 (Zbigniew Brezinski)는 정보부에 진상 조사를 요청했다 8월 중순의 보고서에 따르면,쿠바에 소련군이 있는 것이 확실했다. 곧바로 아이다호 주 상원의원이자 상원외교위원회 위원장인 프랭크 처치(Frank Church)가 기자 회견을 가졌다 :  “대통령은 입장을 분명히 해야 한다. 우리는 서반구에 대한 러시아의 침입을 참는 데 한계가 있다.”

위기는 거의 9월 내내 계속됐다. 그리고 카터 행정부가 기밀문서들을 검토하는 과정에서 두 가지 사실이 서서히 드러났다. 

첫째, 케네디 대통령이 소련 지상군의 철수를 요구하긴 했으나 나중에는 그것을 고수하지 않았다. 

둘째, 이것은 무척 당혹스러운 사실인데,소련군은 1962년 이래 줄곧 쿠바에 주둔해온 것으로 보였다. 카터 행정부의 국무장관 사이러스 밴스(Cyrus Vance)는 이렇게 썼다.

“간담이 서늘하다. 〔쿠바에 주둔한〕 소련 지상군에 대한 정보가 정보부의 공식 기록에서 사라졌다.” 


출처-

마거릿 맥밀런, 역사 사용설명서, 218-220

by 파리13구 | 2015/08/03 17:26 | Le monde | 트랙백 | 덧글(4)
정책결정자와 역사 활용...
역사가 마거릿 맥밀런 Margaret MacMillan



리처드 노이스타트,어니스티 메이에 따르면, 정책결정자가 된다는 것은 당면한 사건들에 대해서 선택을 내리는 것이고, 그 결과에 대한 책임을 지는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자신이 내린 선택의 기준으로 역사를 자주 활용한다고 한다.


정부 안에서나 밖에서나,정책결정자들은 역사를 활용한다. 그들은 매일 다른 사람들의 과거 경험을 활용한다. 그들은 비서들에게 일종의 역사연구 즉, 파일을 찾거나 기억을 점검하거나 회고들을 비교하는 업무를 맡긴다. 그들은 서류에서 엄청난 양의 단어들을 보게 된다. 한때 고위관료(딘 러스크)였던 분에 따르면, “대중들은 대통령이나 국무장관이 읽고 생각할 시간이 없다고 보지만,사실은 정반대다. 그들은 상당 시간을 정부 안팎에서 만들어진 자료를 읽는데 할애하고 있다.” 우리가 여기서 주장하고자 히는 것은, 현재 활용되는 역사를 좀 더 고찰하고 체계화 시킨다면 더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출처-

리처드 노이스타트,어니스티 메이, 역사활용의 기술, 32.
by 파리13구 | 2015/08/03 16:14 | Le monde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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