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지사항 및 방명록 - 2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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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리13구 | 2015/12/31 15:06 | 나의 즐거운 일기 | 트랙백 | 덧글(97)
하워드 진,펠레폰네소스 전쟁의 교훈은?
투키디데스의 한마디...

(아테네의 경험이 말해주는 바란)

“한 나라가 국내에서는 상대적으로 자유주의적일지라도 국외에서는 매우 잔혹해질 수 있는가?” 

출처-
하워드 진, 오만한 제국-미국 이데올로기로부터 독립, 당대, 134

by 파리13구 | 2015/06/30 16:28 | Le monde | 트랙백 | 덧글(2)
시켈리아 원정,베트남 개입 그리고 도널드 케이건?
투키디데스의 한마디...




아테네의 시켈리아 원정과 미국의 베트남 개입


투키디데스의 펠로폰네소스 전쟁사 중 시켈리아 원정 부분을 읽으면서, 

미국의 베트남전 개입을 결정한 정책결정자들이 투키디데스를 읽었을까란 질문을 가지게 되었다. 

만약 그들이 기원전 5세기 아테네의 역사적 실책에서 어떤 교훈을 배웠다면, 미국의 베트남 개입에는 더욱 신중한 자세를 가지지 않았을까란 생각을 해보았다. 이렇게 아타네의 시켈리아 원정은 미국의 베트남 개입을 묘하게 연상시킨다. 

이런 가운데 미국 역사학자 도널드 케이건의 시켈리아 원정에 대한 재해석을 알게 되었다. 우선 케이건은 누구인가?

케이건은 펠로폰네소스 전쟁 4부작을 기술하여, 이 전쟁사의 대가가 되었다 : 1부 <펠레폰네소스 전쟁의 발발> 2부 <아르키다모스 전쟁> 3부 <니키아스 평화와 시켈리아 원정> 4부 <아테네 제국의 멸망>

역사가 도널드 케이건은 젊은 시절 민주당 지지자였지만, 1969년 학생운동을 보고, 우파로 전향, 이후 보수주의의 주역이 되었다고 한다. 그의 우파로의 전향과 베트남전 반대 시위가 관련이 있다는 것이다. 지난 20년 동안 케이건은 네오콘의 핵심 이론가 였다고 한다. 케이건은 미국이 군사력을 더욱 증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고 한다. 

그렇다면 시켈리아 원정에 대한 케이건의 해석은 어떤 것인가? 우선 케이건은 이에 대한 투키디데스의 해석에 반대했다 : 시켈리아 원정은, 페리클레스 사후 탁월한 지도자를 잃은 어리석은 민주정이 과욕을 부리다 자초했던 파국적인 재앙이다!

케이건은 아테네 민회의 시켈리아 원정 결정은 합리적 선택이었다고 해석했다. 즉 원정 결정은 합리적이었지만, 니키아스가 어설픈 정치 공작을 편 탓에 소규모 원정이 국운을 건 모험으로 변질되고, 니키아스의 거듭된 실책 때문에 아테네군이 전멸 당했다는 것이다. 

이 논리를 베트남전에 대입해보면, 미국의 베트남전 개입은 합리적이었지만, 제대로 개입하지 못했고, 각종 실수들을 연발하면서 재앙으로 변질되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도널드 케이건의 시켈리아 원정에 대한 해석을 고려할때, 미국의 베트남전 개입 정책결정자들이 투키디데스의 펠레폰네소스 전쟁사를 읽었다고 하더라도,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렸을지도 모르겠다.

아테네가 시켈리아 원정을 감행한 것은 대재앙이었지만, 우리 미국의 베트남전 개입은 아테네의 그것과 다를 것이다. 

왜냐하면 우린 아테네가 아니라, 미국이기 때문이다! (미국 예외주의)


참고-

도널드 케이건, 투키디데스, 역사를 다시 쓰다.
by 파리13구 | 2015/06/30 16:09 | Le monde | 트랙백 | 덧글(3)
펠레폰네소스 전쟁사의 교훈은?
투키디데스의 한마디...

"법과 도덕을 고려하지 않고 무조건적으로 힘을 주장하는 강자의 오만은 몰락을 준비한다!"

-장준호, 투키디데스 펠로폰네소스 전쟁사 재구성 중에서

112쪽.
by 파리13구 | 2015/06/30 11:52 | Le monde | 트랙백 | 덧글(0)
투키디데스가 페리클레스를 높이 평가한 이유는?
투키디데스의 한마디...

<페리클레스- 아테네 지도자>


투키디데스는 전쟁기 아테네의 급진적 민주주의를 어떻게 보았을까? 

그에 따르면, 아테네의 전성기는 페리클레스의 치세 동안이었지만, 그가 전쟁 발발 2년 6개월만에 사망하면서 아테네가 내리막길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투키디데스는 페리클레스의 리더십을 높이 평가하면서, 특히 그가 아테네 데모스(민중,인민)에게 끌려다니지 않고, 그들을 지도했다는 점을 높이 평가했다. 그리고 페리클레스 시기의 아테네 정체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해석했다. 민주주의는 명목상일 뿐이었다는 것이다 : "페리클레스 치세 동안 있었던 것은 명목상으로는 민주주의였지만, 그것은 사실상 지도자의 지배였다."

"지도자의 지배"라는 표현이 의미심장하다. 이는 민주주의의 고대 그리스어 표현인 데모크라티아, 즉 데모스의 지배와는 다른 개념이었다. 이렇게 투키디데스는 "지도자의 지배"와 "민중의 지배"를 대립시키며, 페리클레스가 민중의 지배가 아니라 지도자의 지배를 관철시켰다는 점에서 그를 높이 평가했다. 이런 맥락에서 투키디데스는 민주주의를 비판한 사상가들 중 한 명이었다고 평가 가능하다.

펠로폰네소스 전쟁사의 관련 내용을 소개하자면 다음과 같다 : 



페리클레스의 리더십하에서 평화시의 아테네는 그의 온건한 정책 덕분에 안전의 보존을 보장받았고, 그의 지도하에 도시는 최고 전성기를 구가했다 : 그리고 전쟁이 다가오자, 그가 전쟁 중인 아테네에 힘을 제공했던 것이 분명하다. 

페리클레스는 개전 후 2년 6개월 만에 사망했다. 그의 사후에 전쟁에 대한 그의 선경지명이 더욱 분명해졌다. 그는 아테네가 참을성을 유지해야 승리할 수 있고, 해군력 양성에 힘써야하고, 전쟁 동안 제국의 확장을 시도해서는 안되며, 도시를 위기에 빠트릴 수 있는 위험은 피하라고 조언했다. 

하지만 아테네인들은 이와는 정반대로 했다. 

그들은(페리클레스의 후배 정치인들) 전쟁과는 전혀 관련이 없는 정책을 추구했고, 그 동기에는 개인적 야심과 사리사욕이 있었고, 이것 때문에 아테네 자신과 그 동맹국들이 피해를 받았다. 성공은 그것을 선창한 개인의 명예와 이익을 높였지만, 실패는 전체 도시에 영향을 주었고, 전력 war-effort 에 해를 주었다.

이러한 변화의 이유는 페리클레스와 대조되는 것이었다. 그의 힘은 그의 높은 명성과 뛰어난 지성에 기반했고, 그는 분명히 부패하지 않았다. 그는 자유 재량권을 가지고 인민 대중을 통제했고, 인민에게 끌려다니기 보다는 그들을 지도했다. 그는 인민이 듣기를 원하는 것을 그들에게 말함으로써 영향력을 유지하는 부도덕한 방법을 사용할 필요가 있었다. 그는 자신의 명성 덕분에 이미 영향력을 가지고 있었고, 심지어 인민의 기분을 거스르는 말을 하면서 그들을 화나게 만들 준비를 하기도 했다. 가령, 그가 인민이 위험하게도 지나치게 자신감이 넘친다고 생각했을때, 그는 연설을 통해서 그들에게 충격을 주어서 평정심을 유지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반대로, 그는 인민이 비합리적인 공포로부터 자신감을 되찾도록 할 수 있었다. 

페리클레스 치세 동안 있었던 것은 명목상으로는 민주주의였지만, 그것은 사실상 지도자의 지배였다.  

참고-

투키디데스, 펠레폰네소스 전쟁사, 상권 ,196-198
by 파리13구 | 2015/06/30 11:40 | Le monde | 트랙백 | 덧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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