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지사항 및 방명록 - 2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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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리13구 | 2018/12/31 13:12 | 나의 즐거운 일기 | 트랙백 | 덧글(116)
키신저, 베트남에서 일방적 철군에 반대하는 이유는?
키신저의 경고...


1968년 11월, 키신저가 한스 모겐소에게 편지, 베트남 전쟁에 대한 다음 입장을 밝혔다고 한다.

"1965년, 내가 처음으로 베트남을 방문했을때, 나는 우리가 하고 있는 일에 희망이 없다는 것을 확신했다. 따라서 나는 정부 안에서 전쟁을 끝내기 위해 노력하고자 결심했다.  이것이 올바른 결정이었는지에 대해서, 우리는 결코 알지 못하게 될 것이다."

이렇게 키신저는 닉슨의 국가안보보좌관이 되기 전부터, 베트남전을 끝내야 된다고 확신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키신저의 베트남전 반대론은 미국의 다른 반전운동가들의 그것과 달랐다. 

키신저는 회고록에서 1969년에 반전운동가들이 주장하던 베트남전에서의 미군의 일방적 철수에 반대한 이유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해명했다.

1969년 1월 (키신저가 닉슨의 국가안보보좌관이 되었다)에 나는 이 전쟁에 대해서 매우 불쾌하게 생각했지만, 나는 몇가지 점에서 다수의 반전 운동가들과 달랐다. 나는 무조건 철수를 선호하지 않았다. 

1969년, 미군 50만명과 동맹군 7만 명이 베트남에 주둔 중이었고, 31,000명이 그곳에서 전사한 상황에서, 어떤 조건으로 전쟁을 끝내는지가 우리와 우리에게 의존하는 사람들 모두에게 중요했다. 

나는 또한 반전 운동가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평화는 우리의 선의에 달려있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동의하지 않았다. 하노이의 강경파들은, 일생을 투쟁의 삶을 살아왔는데, 어떠한 타협도 도덕적 차원에서 거부했다. 베트남 역사의 전설적 무용담에 영향을 받은, 즉 중국,프랑스,일본 그리고 이제 미국을 상대로 한 전쟁의 역사를 의식한, 그들은 승리의 꿈을 달성하면서 자신들의 확고한 영웅주의를 유지하려 했다. 그들은 계산과 필요에 기초할 때만 타협에 나설 것이었다. 협상을 통한 평화는 양측의 위험에 대한 계산의 산물이지, 감정의 분출의 산물이 아니다. 

이러한 판단이 나를 많은 반전운동가들과 영원히 분리시켰다. 심지어 내가 전쟁이 우리의 국력을 고갈시키고, 전쟁을 끝내야 한다는 점에 대해서 그들과 같은 입장을 가지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랬다.

Kissinger, Henry , White House Years,p.235.   
by 파리13구 | 2017/03/24 12:47 | Le monde | 트랙백 | 덧글(0)
홍준표의 한마디...
최순실의 힘? ^^


(촛불 시위와 관련) "국민들이 가장 크게 분노하는 이유는 박대통령이 춘향인 줄 알고 뽑았는데 향단이에 불과했다는 것이다."

-홍준표

2016년 12월 29일
by 파리13구 | 2017/03/24 03:11 | Le monde | 트랙백 | 덧글(0)
키신저, "핵의 시대의 미국 안보의 딜레마"
키신저의 경고...

1950년대에 키신저는 핵의 시대의 개막, 특히 수소폭탄의 개발이 미국 안보에 제기하는 문제를 고민했다. 

열핵 능력의 시대에 미국인들은 일방적 전략적 자세를 포기해야 한다는 것이다. "현대 무기의 파괴력과 속도가 우리의 전통적인 난공불락성을 파괴했고, 세계에서의 힘의 양극화는 전통적인 안전의 여지를 축소시켰다." 이것이 미국안보의 근본적인 딜레마였고, 핵전략의 관심사가 되었다. 대서양과 태평양이라는 거리와 힘의 우위가 더 이상 생존을 보장해주지 못한다. 

미국 보다 약한 적, 소련이 핵무기 개발을 통해서, 미국에 치명적인 피해를 안길 수 있게 되었다. 

결과적으로 미국은 전과는 다르게, 힘의 한계 limits of their power 를 인정해야만 한다. 키신저는 미국 안보 문제에 대한 순수한 군사적 해법은 환상임이 폭로되어야 하며, 정책이 끝나는 곳에서 전략이 시작된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방법은 사치는 미국의 핵독점의 종말과 더불어 끝났다. : "앞으로 우리 문제는 덜 유리한 국가들과 더 유사해지게 될 것이다.  바람직한 것과 가능한 것을 어떻게 연결시킬 것인가 그리고 무엇보다 어떻게 가능한 파국과 더불어 살 것인가."

열핵 시대가 제기하는 곤경이 전쟁이냐 평화냐는 전통적인 양극단을 거의 무의미하게 만들었다. 소련의 적대적 행동에 대한 보복인 전면전은 자살의 행동이 될수도 있다. "그것은 정책의 행동이 아니라 절망일 따름이다." 

하지만 반대로,소련이 팽창주의에 직면하여 전쟁을 포기하고, 평화만을 배타적으로 추구하는 것도 역시 재앙이 될 것이란 키신저의 주장이었다. 1930년대 나치 독일의 팽창주의에 대한 서양의 유약한 대응의 결과인 유화정책의 오류를 지적하면서, 키신저는 "평화 그 자체를 직접적으로 추구하면 긴장이 사라질 것이란 주장만큼 치명적인 것도 없다."라고 주장했다. 그의 박사논문에서 키신저는 다음을 지적했다 : “그러나 평화를 달성하는 것은 그것을 소망하는 것처럼 쉽지는 않다. 역사가, 인간의 소망을 다른 방식으로 실현하거나 그 간구를 너무 완벽히 이루어줌으로써 인간을 좌절시키는, 복수의 신에 비유되는 것도 다 까닭이 있는 것이다. 돌이켜 보건대 가장 평화롭게 보이던 시대에 사람들은 평화를 가장 덜 추구하였다. 평화를 향한 끝 모를 탐색이 이루어졌던 때는 평온함을 달성하기 가장 어려웠던 시기였던 것처럼 보인다. 전쟁의 회피라는 의미에서의 평화가 어떤 국가나 국가집단의 일차적 목표였던 시기에는 언제나 국제체제가 국제사회의 가장 무자비한 구성원의 처분 앞에 무력하게 놓여있었다. 설령 평화를 위한 것이라 할지라도 어떤 원칙들만큼은 타협되어서는 안 된다는 점이 인정되는 국제질서에서는 언제나 세력균형에 바탕을 둔 안정을 최소한 생각해볼 수는 있었다.”  [키신저, 회복된 세계,pp.19-20.]

키신저에 따르면, 소련의 핵개발로 미소 양국간의 핵의 교착상태가 도래할 수도 있다. 핵 교착상태는 소련의 팽창주의에 대해서 미국이 전면전도, 유화정책도 추진하지 못하면서, 속수무책으로 수수방관할 수 밖에 없는 무대책 상태를 말한다. 핵의 교착상태에서 소련의 국지적 팽창이 미국의 안보에 핵전쟁 만큼 치명적일 수 밖에 없다는 것이 키신저의 경고였다. 


Jeremi Suri, Henry Kissinger  and the American Century, Belknap Press (May 1, 2009),pp.144-145.
 
by 파리13구 | 2017/03/23 11:51 | Le monde | 트랙백 | 덧글(2)
키신저, "올바른 것을 실천하는 것의 한계는 무엇인가?"
키신저의 경고...

비록 그것이 올바른 것이라 하더라도, 그것을 무분별하게 실천하는 것은 왜 문제가 될까? 올바른 것을 실천한다는 것 자체가 선한 결과를 보장하는 것은 아니며, 성공이 자동적으로 뒤따르는 것은 아니다. 

힘의 한계 - <보편주의><십자군><이데올로기><이상주의><윌슨>

키신저는 우드로 윌슨의 이상주의에 대한 대안으로 메테르니히의 보수주의 정책을 높이 평가했다. 그는 정치의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악한 것을 통제하는 것이 아니라, 옳은 것에 한계를 부여하는 것이라 주장했다. 한 논문에서 키신저는 다음을 지적했다 :

  “악한 것을 단죄하는 것은 상대적으로 쉬운 일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공적인 도덕성의 단순한 표현이기 때문이다. 반면, 옳은 힘을 행사하는 것을 자제하는 것은 더 어렵다. 왜냐하면, 그것은 올바름이 공간 뿐만 아니라 시간 속에서도 존재한다고 주장하기 때문이다. 비록 고귀하다고 하더라도, 자유의지는 의지를 초월하는 물리력에 의해 제한을 받는다. 따라서 자제의 실천은 사회 질서에 대한 궁극적인 도전인 것이다.” 

세상을 정화한다는 윌슨식 주장은 위험했다. 왜냐하면, 인류에게 변화와 성취를 위한 무한한 가능성을 가지고 전제했기 때문이었다. 이러한 잘못된 자신감이 역사의 평화로운 결말이라는 미국 사상에 영향을 주었고, 이에 따라 미국은 전 세계 방방곡곡에 자신의 사상을 전파한다는 사명감을 가지게 되었다. 심지어 학부 시절부터, 키신저는 다른 이민자 출신들이 그렇게 했듯이, 윌슨식의 선교사적 열정에 공감하지 않았다. 유토피아적 약속에도 불구하고 그랬다. 1951년의 학부 졸업논문에서, 키신저는 ”인생에는 고통과 덧없음이 존재한다. 어떤 인간도 그의 시대와 시대의 조건을 선택할 수 없다. 과거는 현재로부터 많은 즐거움과 미스테리를 앗아갈 수 있다. 부헨발트 나치수용소와 시베리아 강제노동 수용소의 세대는 아버지와 같은 낙관주의를 가지고 이야기할 수 없다. 단테의 희열은 우리의 문명에서 사라졌다.“고 진단했다. 20세기 중반의 인간이 더 나은 미래를 기대할 수 있는 이유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키신저에 따르면, 효율적인 외교정책이 되기 위해서는 힘의 한계의 인정이 필수적이었다. 심지어 핵무기를 독점한 세상에서 가장 강력한 국가 미국 조차도 자신만의 관점에 따라 세상을 변화시킬 수 없다는 것이었다. 이는 관용,협력 그리고 심지어 적과의 화해가 불가피하다는 것을 의미했다. 키신저는 개인과 국가는 나쁜 선택지들 중에서 덜 나쁜 것을 택하는 어려운 선택을 통해서 역사에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국제정치학의 아버지, 한스 모겐소도 같은 입장이었다. “몇 가지 편의적인 행동들 중에서 차악 次惡을 선택하는 것은 도덕적 판단이다.” 

출처- 

Jeremi Suri, Henry Kissinger and the American Century, Belknap Press (May 1, 2009),pp.146-147.


옳은 것의 한계에 대해서 막스 베버도 다음을 주장했다.

“[정치가의 행위와 관련해 볼 때] 선한 것이 선한 것을 낳고, 악한 것이 악한 것을 낳는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다. 차라리 그 반대인 경우가 더 많다. 이를 인식하지 못하는 자는 실로 정치적 유아에 불과하다”.

선과 악이 전도되는 경우는 인간의 역사를 통해서,그리고 일상적인 생활 속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다. 베버의 말을 확대하면 정치적 선의가 결과의 좋음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신념의 정당함은 그 자체로 입증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현실의 구체적 상황에서 옳은 것으로 검증되는 경우에만 입증될 수 있다는 말이다. 


막스 베버, 소명으로서의 정치, 후마니타스, 2013, 84-86
 

by 파리13구 | 2017/03/22 20:42 | Le monde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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