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지사항 및 방명록 - 2판... 나의 즐거운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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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년]미국의 워게임에서 적국은 누구였나? Le monde

[36년] 서안 사변의 장개석과 스탈린?


1931년 만주사변을 도발한 일본을 견제,봉쇄하기 위해서는 미국과 영국의 협력이 필요했다. 

이러한 시대적 당위에도 불구하고, 1932년에 미국이 실시한 워게임에서 미국이 상대한 적은 암흑의 동맹이었다. 그것은 극동에서의 일본과 영국의 동맹이었다. 

돌이켜 보건데, 일본과 손을 잡은 영국이 미국을 공격한다는 생각은 어불성설이었다. 미국 독립전쟁에서의 요크타운 전투의 패배에 대한 보복? 미국에 대한 영국의 채무 관계를 파기하기 위한 공격? 

미국과의 전쟁은 이미 1914년 이전에 영국 측이 포기한 것이며, 심지어 미국 작전계획자들도 영일의 공격 가능성에 대해 낮게 보던 상황에서, 미국의 워게임은 영일 동맹의 공격을 가정했다. 

이 촌극이 암시하는 바는 32년에도 여전히 영미 간의 경쟁의식이 존재했다는 것이다. 과잉된 경쟁의식 탓에, 극동에서의 일본의 도발에 직면해서, 영미 양국은 협력하지 못했다.


참고-

Christopher Thorne, The Limits of Foreign Policy: The West, the League, and the Far Eastern Crisis of 1931–1933 (London, 1972), 75.



[31년]"일본은 극동에서 반공의 보루이다." Le monde

[36년] 서안 사변의 장개석과 스탈린?


만주에서의 일본의 사명은, 서양문명을 대표하여 소련의 팽창주의를 막아주는 것인가?

1931년 만주사변에 대해서 왜 미국은 미미하게 대처한 것인가? 만주 침략으로 일본이 이른바 1923년의 워싱턴 조약체제의 근간을 위협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그 이유들 중 하나는 미국 정부의 반공주의에서 찾을 수 있다. 가령, 미국의 허버트 후버 대통령 (임기 1929-1933)은 일본이 극동에서 볼셰비즘이라는 악의 확산을 막아주는 방파제라는 시각을 가지고 있었다. 

1931년 봄, 미국 국무부 차관보 넬슨 존슨은 국무부 차관 윌리엄 케슬에게 다음을 강조했다. 

"나는 미국의 일본 정책에 대한 당신의 생각에 전혀 반대하지 않는다. 다만, 나의 판단에 따르자면, 나는 우리가 극동에서 일본을 가만히 나둬야 한다고 생각한다. 물론 오랫동안 나의 지론은, 우리가 중국에서 강한 정부와 국가가 탄생하고 발전하는 것을 도와야 한다는 것이 미국의 정책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럼에도 나는 일본이 중국을 지배할 수 있다거나 혹은 지배를 시도한다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나는 일본이 하는대로 내버려 둬야 한다고 생각한다. 중일 두 나라는 서로 상대방을 없애지 않은 채, 자신의 운명을 추구할 것이며, ..만약 만주가 일본의 일부가 된다면, 나는 그것 때문에 왜 우리 미국이 필연적으로 그 소동에 휘말리게 된다고 주장하는 지 알지 못하겠다."

Johnson to Castle, 25 March 1931, Johnson Papers, box 13; Christopher Thorne, The Limits of Foreign Policy: The West, the League, and the Far Eastern Crisis of 1931–1933 (London, 1972), 53.

[32년]오언 래티모어의 만주에 대한 인식? Le monde

[36년] 서안 사변의 장개석과 스탈린?


오언 래티모어 Owen Lattimore 는 1930년대 미국에서 대표적인 동아시아 전문가였다.

래티모어는 1931년의 만주사변을 어떻게 인식했을까?

만주사변을 맞이하여, 래티모어는 관련 서적을 1932년에 출간했다. 

래티모어, 만주-갈등의 뿌리, 1932년 
Lattimore, Manchuria, Cradle of Conflict (New York, 1932)

책에서 래티모어는 만주를 세 개의 문명이 충돌하는 공간으로 규정했다. 이른바 만주에서의 문명 충돌론이었다.

세 문명이란 중국,러시아,서양이었고, 일본은 만주에서 서양문명을 대표해서 투쟁 중이란 주장이었다. 적어도 래티모어의 시각에서 보면, 1931년의 만주사변은 폭력적 침략으로 규정할 수 없었을 것이다. 

만주사변에서의 일본의 침략을 서양문명의 가치를 위한 투쟁으로 인식하는 래티모어 류의 주장이 영향력을 가진 상황에서,

만주를 중심으로 한 미국의 대-일본 정책이 강한 억지력을 가지기는 적어도 당시에는 어려웠을 것으로 보인다. 

[극동에서 일본은 서양문명을 대변한다?]

그렇다면, 궁금해 지는 것이 만주와 중국에서의 일본의 도발이 서양문명 수호를 위한 투쟁이 아닌, 지역 질서를 위협하는 야만적 침략이란 인식,

이러한 미국의 인식 전환이 일어난 것은 언제이며, 이 인식 전환이 미국의 극동 정책에 어떻게 반영되었는지를 알아보는 것이다. 

참고- 

Christopher Thorne, The Limits of Foreign Policy: The West, the League, and the Far Eastern Crisis of 1931–1933 (London, 1972), 16.


"펠레폰네소스 전쟁과 31년의 만주사변?" Le monde

[36년] 서안 사변의 장개석과 스탈린?


국제정치 사상에서 투키디데스의 펠레폰네소스 전쟁사에서 흥미로운 대목은 멜로스 대담이다. 

멜로스 대담은 아테네가 중립국 멜로스를 공략하는 과정에서 진행되었다. 공격에 앞서, 아테네는 멜로스인들에게 항복이냐 전멸이냐 중에서 선택하라고 강요했다. 멜로스측의 아테네의 주장의 부당함에 항의하자, 아테네의 주장은 다음과 같았다 : "강자는 그들의 할 수 있는 힘으로 하며, 약자는 그들이 받아야 들여야 할 일을 받아 들인다."

아테네의 주장은 "힘이 곧 정의이다."라는 것이었다.

1931년 만주사변에 대한 장개석의 입장은 일본침략에 대한 무저항 원칙이었고, 일제의 침략에 대한 항의를 국제연맹에 대한 제소로 끌고간다는 것이었다.

1933년 9월, 일본의 만주 침략에 항의하면서, 국제연맹에서의 중국의 웰링턴 쿠 (구웨이준)이 제기한 것도 다음 논리였다. : 일제의 침략에 대한 국제연맹의 무기력한 대응은 "힘이 곧 정의이다. might is right 라는 논리의 만연을 부르고, 이는 국제정치의 무질서를 야기한다는 주장이었다. 즉 당대의 극동 정세의 징후는 수 년 안에 세계대전의 발생을 암시한다는 것이었다.

만주사변을 즈음한 세계정치와 일본제국과 그를 두둔하는 일부 서양세력이 멜로스 대담에서의 아테네의 논리 "힘이 정의이다."라는 논리를 앞세웠다면, 

결국 세계대전을 승리로 가져올 중국과 미국,영국의 연합국은 "힘이 곧 정의란 논리의 확산은 무질서를 부른다."는 반대 논리로 일본의 침략을 타도했다. 

국제정치 사상에 대한 연합국 세력의 논리는 국제법의 신의성실의 원칙, 즉 약속을 지켜야 한다는 것이었다. 1920년대 초의 워싱턴 조약 체제의 논리, 즉 중국의 영토주권을 서양 열강이 보장한다는 약속을 지켜야 한다는 것이고, 만주사변 등으로 이를 침해하는 일본제국의 도발은 국제질서의 수호를 위해서 응징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일본의 대항 논리는 사정변경의 원칙이었다.)

신의성실의 원칙은 유럽에서 영국의 유화정책을 주도했던 핼리팩스 외무장관 조차도 지켜야 한다고 강조한 것이었다. 핼리팩스 영국 외무장관은 1938년 5월에 이렇게 말했다.

"중국은 법을 지키는 모든 나라들을 위해 싸우고 있다. 중국은 우발적으로 극동에서 자신의 전투를 치르고 있는데, 만약 일본이 승리한다면, 그곳에서의 우리의 권익은 확실히 끝장날 것이다."

이렇게, '힘의 곧 정의인가'를 둘러싼 논란이  펠레폰네소스 전쟁과 31년의 만주사변의 근저에 흐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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