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지사항 및 방명록 - 2판...
안녕하세요!
파리13구 블로그 방문을 환영합니다.
이곳은 프랑스 와 한국 사이에서, 올바른 사회란 무엇인가를 고민하는 블로그 입니다.

혁신을 추구하는, 20,30대 독자들을 대상으로,
사회비교, 역사비교를 통해, 올바른 사회란 무엇인가를 고민하고,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믿음을 공유할 수 있는 블로그가 되기를 원합니다.

개인적인 문의는 비공개 덧글을 통해
방명록에 덧글로 남겨주시기 바랍니다.

- 운영자 파리13구...
by 파리13구 | 2018/12/31 13:12 | 나의 즐거운 일기 | 트랙백 | 덧글(116)
54년 중국의 금문도 도발과 미국의 대응...
키신저의 경고...



1954년, 모택동의 중국이 대만을 침공할 것이라는 위협이 고조되었다.

8월 17일 아이젠하워는 대통령 기자 회견에서 이 문제에 대한 질문을 받았다。즉 up 통신의 백악관 출입기자인 스미드는 이렇게 질문하였다。

“대통령.각하、최근 대만의 맞은편 대륙에 중공군이 병력을 증강하여 대만을 공격할지도 모른다는 보도가 전해지고 있읍니다。만일 중공군이 대만을 침공하면 미국은 이에 대해 어떠한 조처를 취할 것입니까?」

이에 대하며 아이젠하워는 다음으로 대답하였다。

“1953년 1월에 대만 해협에 출동하고 있는 미국 제7함대에 대하여 대만에 대한 어떤 침략 행위도 용납하지 말라고 명령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명령은 지금도 유효합니다.“ 

아이젠하워, 아이젠하워, 세계의 대회고록전집 18, 학림출판사, 1977.p.228.

9월 3일, 실제로 중국이 금문도에 대한 도발을 시작하자, 미국은 대응책을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물론 기자회견을 통해서 아이젠하워가 대만 방위 공약을 재확인했지만, 공약을 그대로 이행하여 미국이 대만에 직접적인 군사개입을 하는 것은 세계대전으로 비화될 수도 있었기 때문에, 신중한 정책 토론이 필요했다.

미국은 대책을 고민했다. 미국 합참의 일부 인사들은 다음을 근거로 개입에 반대했다.

덴버에 있는 대통령에게 보내온 앤더슨 국방차관의 보고에 의하면 합동 참모 본부는 이 분쟁에 대한 방위책을 둘러싸고 의견이 대립되어 있다는 것 이었다。이들 중에는 종전의 미국 정책을 시정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었지만、이 대륙 연안의 섬이 군사적으로 보아 대만 방위에는 큰 의미가 없다는 결론에 도달하였다. 그러나 한 사람을 제외하고 전원이、이 섬을 상실하면 심리적으로 큰 타격을  줄 것이라는 점에 동의하였다。그리하여 이들 참모는 미국이 이 섬을 방위해야 한다고 생각한 것이다。그러나 당시에 육군 참모총장 리지웨이 장군은 이 견해에 반대하였다. 그에 의하면 미국은 이 섬을 확보하기 위해 군대를 투입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합동 참모 본부는 이 섬이 지닌 정치적 및 심리적인 가치를 평가하는 비군사적인 문제를 건드려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합동 참모본부는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점에 대하여는 의견을 같이 하였다. 첫째、이 섬은 군사적으로 미국의 대만 방위에 반드시 필요한 것은 아니다。또한 대만군은 미국의 원조가 없으면 이 섬을 확보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아이젠하워 대통령은 미국의 직접 군사 개입에 반대했다. 미국의 개입이 제3차 세계대전으로 비화되면, 그 때의 적은 중국이 아니라 소련이 될 수 있다는 것이었다.

국무장관 덜레스의 입장은 다음과 같았다 : “이 문제는 매우 복잡하여 상반되는 국면을 아울러 염두에 두어야 한다. 즉 중공군이 금문도에 대규모의 포격을 가해왔으므로 우리가 이를 저지하지 않으면 극동에서 큰 재난이 발생하게 된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금문도와 마조도의방위에 개입하면 단독으로 중공과 정면 충돌을 할 우려도 있읍니다。 그러므로 나는 이 두 가지의 길을 모두 피하고 이 문제를 유엔안전보장이사회에 제기하여 대만해협의 분쟁을 중지시키도록 요구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안전 보장 이사회의 결의에 대하여 소련이 받아들이든 거부권을 행사하든、결국 미국으로서는 이득을 보게 될 것입니다”

아이젠하워는 덜레스 장관의 제안에 찬성하였다. 


아이젠하워, 아이젠하워, 세계의 대회고록전집 18, 학림출판사, 1977.pp.229-230.

by 파리13구 | 2017/01/20 17:14 | Le monde | 트랙백 | 덧글(0)
아이젠하워가 매카시즘을 혐오한 이유는?
키신저의 경고...

<매카시 상원의원>

아이젠하워는 공산주의를 증오했다. 그는 대통령에 당선되면 정부 내에서 공산주의자들을 모조리 쓸어내려고 했다. 

공산주의를 혐오한다는 점에서 그는 매카시와 같은 입장이었지만 거기까지 였다. 

아이젠하워는 모든 애국적 국민과 마찬가지로 공산주이 침투에 대해 우려를 갖고, 이를 근절해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이러한 경우에도 결코 비-미국적 방식을 취해서는 안된다고 주장했다. 미국 내 공산주의 타도가 개인의 자유와 인권 옹호하는 미국의 헌법 정신과 모순되어서는 안 된다는 주장이었다. 

1954년 3월 31일, 아이젠하워, 콜럼비아 대학 연설은 매카시즘의 광풍에 대한 그의 입장을 반영한 것이었다. 

불안과 공포 속에서 자신을 잃은 사람들은 조국이나 자기 자신에 대한 신뢰도 잃게 마련입니다。만일 우리가 미국인의 신조에 의혹을 느끼는 개인 또는 당파는 무조건 흉악하기 짝이 없는 존재라고 규정해 버린다면、우리가 자랑 스럽게 생각하는 자유의 길은 종말에 이르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옳다고 생각하는 원칙을 효과적으로 살리기 위해서는 공정하고 냉정한 판단과 용기 및 불굴의 정신을 필요로 합니다. 진리와 자유를 수호하는 길은 공갈이나 협박 또는 히스테리를 필요로 하지 않으며, 또 이런 것을 용납 하지도 않습니다. 다른사람에게 자유의 소중함을 역설할 때 우리 자신이 자유를 실천하고 있어야 합니다.“ 


아이젠하워, 아이젠하워, 세계의 대회고록전집 18, 학림출판사, 1977.p.183.

by 파리13구 | 2017/01/20 14:20 | Le monde | 트랙백 | 덧글(4)
식민지 해방과 미국 냉전전략의 딜레마
키신저의 경고...


20세기 중후반에 영불 제국주의가 몰락하면서, 민족주의 해방의 물결아래 신생 독립국들이 다수 출현했다.

미국과 소련은 세계전략이란 관점에서 이들 신흥국들은 냉전의 질서하에서의 각각의 자기 진영으로 끌어들이는데 사활적 관심을 가질 수 밖에 없었다. 

모스크바는 맑스주의적 식민지 민족해방운동론 같은 이론을 동원, 자주 독립의 길과 공산주의가 모순되지 않은 것처럼 주장했다. 이는 많은 제3세계 엘리트 민족주의자들에게 호소력을 가졌다. 

이와 비교할때, 미국의 입장이 난처했다. 미국은 소련과의 냉전을 위해서, 서양에서 영국과 프랑스라는 동맹국이 필요했다. 

하지만, 탈식민주의의 바람 속에서, 영국과 프랑스는 이 바람에 역행하고, 방해하는 수구적인 제국주의 잔당인 것처럼 보였다. 따라서, 자주와 독립을 원하는 제3세계의 지지를 얻기 위해서, 미국은 영국,미국 제국주의 잔존 세력과 거리를 두는 것이 필요했고, 미국은 영불과는 달리, 제3세계의 자주와 독립을 진정성을 가지고 지지하고, 그들의 자유진영에서 자유와 번영을 누리기를 바란다는 이미지를 심어주는 것이 필요했다.

말하자면, 미국은 냉전이라는 관점에서 영국과 프랑스와의 동맹이 필요했지만, 탈식민주의라는 관점에서, 영불과 대립각을 세우는 것이 필요했던 것이다.  

미국의 이같은 모순적 이해관계가 드러난 것이 베트남과 이집트 수에즈 위기에서 였다. 

아이젠하워의 회고록을 보면, 냉전 구도하에서의 탈식민주의 바람 속에서의 미국 정책의 미묘한 면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적었다.


모스크바는 민족주의자들에게 자주 독립을 위해서는 공산주의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는 것을 암암리에 믿도록 책동하고 있었다. 

특히 과거에 존재했던 관계에 대하여 어떤 강압적인 태도로 나오는 것은 금물이었다. 공산주의를 타도하려는 자유 세계로서는 약소 민족의 독립을방해하거나 지배와 피지배의 현상유지를 꾀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되는 것이다。오히려 이들 약소 민족의 독립 운동을 지원하여 일단 독립한 연후에 국가의 안녕과 질서를 유지하는 유일한 길은 자유세계와 적극 협조하는 데 있다는 것을 이들 신생 국가에게 인식시킬 필요가 있는 것이다.

아이젠하워, 아이젠하워, 세계의 대회고록전집 18, 학림출판사, 1977.p.149. 

by 파리13구 | 2017/01/20 12:25 | Le monde | 트랙백 | 덧글(0)
아이젠하워,1919년과 1945년 미국의 차이는?
키신저의 경고...

1919년의 미국은 두 개의 대양이라는 장애물이 있었기 때문에 아직 대규모의 공격이나 기습을 받을 염려는 없었다. 당시에 미국이 한때 중단된 산업、문화、사회면에 크게 주력한 것은 그만한 까닭이 있었다. 그러나 제2차 대전 이후에는 사정이 달라졌다.

이미 두 개의 원자폭탄이 폭발되어 적의 두 도시를 대부분 파괴하였지만, 이 파괴 병기를 미국이 오래 독점할 수는 없었다. 폭격기는 점점 그 항속 거리, 속도、적재능력을 증가시켜 가고 있었다. 그리하여 대양 횡단 비행은 다반사가 되었다. 또한 소련은 전시 중에 우리의 원조를 받아 최근에 군사적으로도 강력한 힘을 보이고 있었다. 

한편 1945년 가을에 열린 런던 의상 회의에서 이미 비우호적인 태도를 보였으며, 1946년 봄,이란에 군대를 주둔시키려고 한 사실에서 그 음흉한 정체가 드러나기 시작하였다. 소련은 온갖 수단을 다하여、필요하다면 무력으로라도 세계를 지배하려는 야망을 버리지 못하고 있었다. 


아이젠하워, 아이젠하워, 세계의 대회고록전집 18, 학림출판사, 1977.p.70.

by 파리13구 | 2017/01/19 14:26 | Le monde | 트랙백 | 덧글(0)


< 이전페이지 다음페이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