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지사항 및 방명록 - 2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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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리13구 | 2015/12/31 15:06 | 나의 즐거운 일기 | 트랙백 | 덧글(96)
[키신저]50년대 핵전쟁에 대한 공포...
메테르니히,100년의 유럽 평화를 설계하다!



키신저의 박사학위 논문 <회복된 세계- 메테르니히, 캐슬레이 그리고 평화의 문제 ,1812-1822

A World Restored: Metternich, Castlereagh and the Problems of Peace >이 출간된 것은 1957년이었다.

19세기초의 유럽외교를 다룬 이 책의 서론을 시작하는 문장은 다음과 같다. 화두는 핵무기다!


"핵전쟁으로 인한 종말의 위협에 직면한 시대에, 외교가 지금보다 덜 극심한 벌칙들을 수반하고, 전쟁은 제한적이었고, 대재앙은 거의 상상할 수 없었던 시기를 향수어린 눈으로 회고하게 되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또한 지금같은 상황에서 평화를 이루는 일이 최고의 관심사가 되었다거나, 평화에 대한 필요가 평화를 달성할 계기를 제공할 것이라고 여기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다.

그러나 평화를 달성하는 일은 그것을 소망하는 일처럼 쉽지는 않다."


-키신저의 지적처럼, 평화를 소망하는 것과 평화를 달성하는 일을 동일시하는 것은 오류다. 

평화를 소망하기만 하면, 평화가 달성된다고 믿는 자에게 역사의 신은 뒤통수를 치기 마련이다. 

가령, 가장 평화롭게 보이는 시대에 사람들은 평화를 가장 덜 소망했다면, 사람들이 평화를 향한 끝모를 소망을 빈 시기에 세상은 가장 평화롭지 않았다. 

네빌 체임벌린의 유화정책의 비극은 무엇이었나? 그것은 바로 전쟁의 회피라는 의미에서의 평화가 어떤 국가나 국가집단의 일차적 목표였던 시기에는 언제나 국제체제가 국제사회의 가장 무자비한 구성원의 처분 앞에 무기력하게 놓여있음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평화의 소망이 평화의 달성으로 자동적으로 귀결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평화의 달성의 결과인 세계의 안정은 평화추구의 결과가 아닐 수도 있다.   


키신저의 고민은 핵전쟁으로 인한 종말의 위협에 직면한 시대에 국제적 안정은 어떻게 가능한가란 질문이었다. 

그 안정이란 단순히 전쟁을 막는 수준의 위태로운 소극적 평화가 아니라, 적대국들간의 합의에 기반한 적극적 평화를 의미했다.  

그의 박사 논문 주제인 빈체제가 19세기의 유럽협조체제였다면, 키신저의 데탕트 구상이란 20세기식의 냉전협조체제? 가 아니었을까? 
by 파리13구 | 2015/03/26 15:08 | Le monde | 트랙백 | 덧글(1)
68혁명과 데탕트?
메테르니히,100년의 유럽 평화를 설계하다!

[냉전]
[데탕트]
[68혁명]
[키신저]

최근의 외교사 연구 분위기를 보면, 외교사 혹은 국제관계 연구는 사학과가 아닌 정치외교학의 연구 대상이 되어버린 느낌이다. 사학과가 사상사,문화사,사회사 같은 테마를 연구한다면, 정외과는 국제정치학,외교론,외교사 등을 연구한다는 것이다.

이같은 외교사 연구에서의 사학과와 정외과가 분리된 상황에서는 미국의 위스콘신 대학 사학과의 제레미 수리의 권력과 저항- 세계 혁명과 데탕트의 등장,2003년과 같은 정치사회사와 외교사가 결합된 연구가 나오기 어렵다.

수리에 따르면, 키신저의 데탕트 정책의 배경은 무엇인가? 강대국 외교와 60년대말의 세계적 사회저항 운동이 관련있다는 것이다. 즉 60년대말의 세계적인 사회적 정치적 혼란의 등장에 크게 당황한, 냉전의 강대국들이 국제무대에서 안정을 추구하게 되었고, 그것이 바로 데탕트로 귀결되었다는 주장이다. 

물론, 반대 경우도 있다. 이미 널리 알려진대로 도요토미 히데요시 혹은 사이고 다카모리식의 논리, 즉 국내의 불안을 잠재우기 위해서 대외적으로 공격적인 정책을 추진하는 것과 반대의 사례를 보여주는 것이다. 
by 파리13구 | 2015/03/26 13:31 | Le monde | 트랙백 | 덧글(0)
[키신저]착한 사람이 좋은 정책을 만드는가?
[키신저]
[선과악]
[정책]

good man/ good policy
bad man/ bad policy

물론 하나의 가치관을 가지면서, 무엇이 좋은 것이고 무엇이 나쁜 것인지에 대한 구분이 분명해야 한다.

하지만, 분명한 선악관에도 한계는 있다. 특히 선악관을 정치의 문제에 적용할 때 그렇다.

좋은 사람이 좋은 정책을 만든다고 볼 수도 있다. 하지만 역사를 보면, 좋은 사람이 나쁜 정책을 만들 수도 있다.  가령, 제2차세계대전 전야의 영국 네빌 체임벌린의 유화정책은 평화를 간절히 원하던, 좋은 의도를 가진 좋은 정치인의 구상이었다. 하지만 체임벌인의 유화정책은 아돌프 히틀러라는 암초를 만나서 좌초하게 되었고, 이것이 제2차세계대전이라는 재앙으로 귀결되었다는 점은 주지하는 바와 같다. 좋은 의도가 좋은 정책을 보장하지 않는다.

역사를 공부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역사가 우리에게 착한 사람이 좋은 정책을 만든다는 우리의 간절한 믿음에 대한 반면교사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때로는, 나쁜 놈이 좋은 정책을 만들 수도 있고, 반대로 좋은 놈이라도 나쁜 정책을 만들 수도 있다. 

따라서, 나와 내가 속한 편의 좋은 의도만을 강조하면서, 우리의 의도가 좋은 것이기 때문에, 우리의 정책도 좋은 것이라 주장하는 것은 오만일 수도 있다. 

선과 악의 관점으로 역사와 세상을 바라보는 것의 바로 한계가 바로 이것이 아닐까?

이상의 관점을 가지는 것은 키신저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된다.

키신저는 칸트의 영구평화론을 진지하게 고민한 사람이고, 핵무기 시대에 평화야말로 도덕적인 정언명령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이는 조지 캐넌식의 봉쇄정책에 대한 대안으로서의 데탕트의 사상적 배경이 되었다.  또한 19세기초의 유럽 빈체제를 공부하면서, 평화를 위해서는 국제관계에서의 안정과 질서의 적극적 추구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즉 키신저의 외교정책은 이러한 평화라는 하나의 이상을 위한 것이었고, 이런 면에서 그는 도덕적이고, 좋은 사람이라 평가가 가능하다.

하지만, 키신저의 좋은 의도가 좋은 정책만으로 귀결된 것은 아니었다. 가령, 키신저의 실책으로 평가받는 정책들, 베트남전 확대, 칠레 쿠데타, 앙골라 내전, 인도네시아의 동티모르 침공 묵인 등은 좋은 의도가 나쁜 정책으로 귀결될 수도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런데, 이상의 정책들을 나쁜 것이라 인정한다고 하더라도, 키신저를 나쁜 놈으로 규정하고 심지어, 일부의 주장처럼, 키신저를 전범 재판으로 심판해야 한다는 것도 무리한 주장이 아닐까?
by 파리13구 | 2015/03/26 12:35 | Le monde | 트랙백 | 덧글(11)
괴벨스, 독일의 유럽 지배에 대해서...
독일과 소련의 폴란드 침공-1939년 9월...

[독일 제3제국]
[신질서]


"총통은 제국이 전 유럽의 주인이 될 것이라는 확고한 신념을 표명했다. 우리는 여전히 많은 전투에 가담해야 할 것이지만, 이러한 싸움들은 의심할 여지없이 최고의 멋진 승리로 귀결될 것이다. 이 승리가 세계 지배로 가는 길을 열어 줄 것이 매우 명확하다. 유럽을 지배하는 자가 세상을 주도하게 될 것이다."

- 괴벨스

독일 선전장관

1943년 5월 8일

The Führer gave expression to his unshakable conviction that the Reich will be the master of all Europe. We shall yet have to engage in many fights, but these will undoubtedly lead to most wonderful victories. From there on the way to world domination is practically certain. Whoever dominates Europe will thereby assume the leadership of the world.

Joseph GoebbelsReich Minister of Propaganda and close associate of Hitler, 8 May 1943


- 괴벨스는 독일의 유럽지배가 2000년에 실현될 것이라 예상했다고 한다. 

세계적 금융위기와 함께, 독일이 유럽의 패권을 장악한 것이 2010년임을 고려하면, 불과 10년차이로 괴벨스의 예상이 적중했다.

하지만, 그는 두가지 점에서 틀렸다.

첫째, 독일에게 유럽의 패권을 안긴 것은 군인이 아니라 자본과 정치였다는 점이다. 

둘째, 유럽을 지배하는 자가 더이상 세계를 주도할 수 없는 것이 오늘날의 세계질서이다. 유럽은 점점 중심부에서 멀어지고 있다. 
by 파리13구 | 2015/03/25 11:18 | Le monde | 트랙백 | 덧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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