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지사항 및 방명록 - 2판...
안녕하세요!
파리13구 블로그 방문을 환영합니다.
이곳은 프랑스 와 한국 사이에서, 올바른 사회란 무엇인가를 고민하는 블로그 입니다.

혁신을 추구하는, 20,30대 독자들을 대상으로,
사회비교, 역사비교를 통해, 올바른 사회란 무엇인가를 고민하고,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믿음을 공유할 수 있는 블로그가 되기를 원합니다.

개인적인 문의는 비공개 덧글을 통해
방명록에 덧글로 남겨주시기 바랍니다.

- 운영자 파리13구...
by 파리13구 | 2016/12/31 04:54 | 나의 즐거운 일기 | 트랙백 | 덧글(105)
[국제정치학]기독교 사상과 자위권...
마키아벨리,"이탈리아는 위기다!"

국어사전에 따르면,

자위권自衛權

명사 <법률> 국가 또는 국민에 대한 급박한 침해에 대하여 실력으로써 방위할 수 있는 국가의 기본적 권리.

그런데, 성경, 특히 신약은 뺨을 맞은 것 같은 침해에 대해서 어떻게 대처하라고 말하고 있을까? 성경은 자위권을 인정하는가?

가령, 신약성경 마태복음의 6장 29절-45절 말씀은 다음과 같다.

악한 자를 대적하지 말라(눅 6:29-30)

(마 5:38) 또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갚으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마 5:39)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3)악한 자를 대적하지 말라 누구든지 네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 대며 또는 악을
(마 5:40) 또 너를 고발하여 속옷을 가지고자 하는 자에게 겉옷까지도 가지게 하며
(마 5:41) 또 누구든지 너로 억지로 오 리를 가게 하거든 그 사람과 십 리를 동행하고
(마 5:42) 네게 구하는 자에게 주며 네게 꾸고자 하는 자에게 거절하지 말라

원수를 사랑하라(눅 6:27-28, 32-36)

(마 5:43) 또 네 이웃을 사랑하고 네 원수를 미워하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신23:6, 스9:12
(마 5:44)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마 5:45) 이같이 한즉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아들이 되리니 이는 하나님이 그 해를 악인과 선인에게 비추시며 비를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에게 내려주심이라.

칼 프리드리히에 따르면, 자위권과 기독교사상과 관련해서, 기독교 사상은 자위권에 대해 부정적이었다고 한다. 즉 반격하기 보다는 참는 것이 낫다고 가르쳤다는 것이다.


<자위권과 기독교사상>

-자연법自然法 에 따라 人間이 자위권自衛權 을 가진다는 것은 자명한 것으로 생각되어 왔었다. 그러나 이 명제命題 는 자위권을 행사하는 것이 어디까지 허용되는지에 관한 결정적으로 중요한 질문에 대하여는 대답을 주지 아니하고 있다는 의미에서 형식적이었다. 基督敎 理論은,「다른 한 쪽 뺨」이라는 관점에서 뿐만 아니라 불행不幸 을 人間의 견실적 堅實的• 道德的 情熱을 시험하려는 神의 섭리에 의하여 내려보낸 시련으로 보는 옛 유대 理論의 觀點에서, 그것이 허용許容되는 범위範圍를 분명히 좁혔다. 확실히 지배적인 생각은 반격反擊을 가하기 보다는 참는 것이 낫다는 것이었다. 공격자攻擊者 와 맞부딪쳤을 때, 특히  억압적抑壓的인 정부政府와 맞부딪쳤을 때 소극적消極的으로 참을성 있게 고통을 감수하는 역할役割이 기독교인基督敎人 에게 주어졌던 것이다. 시이저에게 시이저의 것을 주는 것一이것은 괜찮은 일인지도 모른다——뿐만 아니라 시이저가 요구要求하는 것이면 그것을 요구要求할 권리權利가 있는지 없는지 너무 깊이 따지지 아니하고 시이저에게 주는 것, 그것이 진정한 基督敎人의 적절한 행동양식行動樣式이라고 생각되었었다. 이 점은 저 유명한 로마書 13장의 구절과 같은 「말씀」뿐만 아니라 수없이 많은 성인과 순교자의 실제 행동에 의해서도 분명히 지적되고 있었다. 

[칼 프리드리히, 입헌적 국가이성- 안보와 헌법의 수호- 동성사,1987.pp.19-20.]

by 파리13구 | 2016/05/02 17:04 | Le monde | 트랙백 | 덧글(2)
임지현,곽준혁 그리고 민족주의의 문제..
마키아벨리,"이탈리아는 위기다!"


과거에 임지현 교수가 민족주의는 반역인가라는 문제로 한국사회의 민족주의 인식에 대한 도발적인 문제제기를 던졌다면,

곽준혁의 관련 연구는 "애국심도 반역인가"라는 일종의 반론이 될수 있다고 생각한다.

애국심과 민족주의의 차이는 무엇일까?

곽준혁에 따르면,

“애국심이란 민족이나 민족 공동체가 아니라 실제 삶을 영위하는 정치 체제 또는 정치 질서에 대한 애정이자 동일한 정치 체제하에서 함께 생활하는 구성원들에 대한 애정을 말한다. 

이 때 민족주의와 구별되는 애국심에 대한 논쟁은 전정치적(pre-political)인 동질성을 전제 조건으로 하는가, 그리고 어느 정도까지의 시민적.정치적 권리의 향유를 중요하게 상정하는가의 문제를 중심으로 벌어진다”

- 출처

곽준혁, 민족주의 없는 애국심과 비지배 평화원칙 , .아세아연구. 제46권 4호, 2003, 314-315쪽


임지현의 민족주의 비판은 그 시의적 적절함에도 불구하고, 

공동체주의와 자유주의 논쟁이라는 차원에서 이해해 본다면,

자유주의 입장을 대변한다고 생각한다. 

임지현이 바람직하고 생각하는 시민은 민족이라는 공동체에 비판적인 자유주의자인가? 


민족주의가 문제이고, 반역이라고 하더라도, 

인간과 공동체의 관계는 여전히 문제가 되고,

민족이라는 정치적 전망으로 소급되지 않는, 비-민족적 공동체에 대한 인간의 정치적 전망은 여전히 고민대상이 된다. 


이런 관점에서, 

곽준혁의 연구는 민족주의가 반역임을 인식함에도 불구하고,

사회적 존재인 인간은 여전히 공동체를 이루어 살아갈 수 밖에 없다는 현실에서,

인간과 공동체는 어떤 조화로운 관계를 이룰수 있는지에 대한 고민을 제기한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고 생각한다.


공동체는 그 구성원에게 왜 애국심을 가져야 하는지에 대한 설명을 제공해 주어야 하고,

이를 바탕으로 공동체 구성원간의 연대가 생성가능한데,

임지현의 민족주의의 비판에는 바로 이같은 공동체에 대한 고민이 결여되어 있다는 점에서 그 한계를 가진다고 생각한다.

민족주의 없는 애국심이 필요한 것이 아닐까?
by 파리13구 | 2016/05/02 14:02 | Le monde | 트랙백 | 덧글(2)
1494년 피렌체와 대한민국...
마키아벨리,"이탈리아는 위기다!"



1494년 프랑스 샤를 8세가 이탈리아를 침공했다. 이 침공에 따른 충격에서 마키아벨리의 사상은 출발한 것으로 보인다. 

어떤 의미에서, 그의 사상은 문명을 자랑하던 이탈리아가 어떻게 하여 북쪽의 야만인들에게 그토록 쉽사리 무너졌는가에 대한 치열한 반성의 결과이다. 

[곽차섭. (2012). 마키아벨리의 꿈. 동서인문학, 46,p.13.]

마키아벨리는 야만인의 손에 의해 해방된 이탈리아를 보고자 하는 소망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꿈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이다.

[프리드리히 마이네케, 이광주 역, 국가권력의 이념사, 한길사, 2010.p.108.]

곽준혁에 따르면, 오늘의 대한민국과 1494년의 피렌체는 닳은 꼴이라 한다. 역사적 유추가 성립가능하다는 것이다.


<피렌체와 대한민국>

2014년 대한민국은 여러 가지 측면에서 1494년의 피렌체를 닮았다. 중국의 부상, 일본의 우경화, 러시아의 견제, 미국의 전략이 동북아시아의 불확실성을 더욱 가중시키고 있다. 그리고 예측 할 수 없는 북한의 행동이 시민의 일상을 늘 위협한다. 마치 중국은 프랑스처럼 보이고, 북한은 참주 아래 생기를 잃은 밀라노 같다. 일본은 옛 영화를 찾기에는 너무나 정체되어 있는 베네치아 같고 러시아는 이해관계는 있지만 여력이 없는 막시밀리안 I세의 신성 로마제국처럼 보이며, 미국은 뜻을 관철하기 위해서라면 언제라도 힘을 발휘할 수 있는 페르난도 2세가 다스리던 스페인의 모습을 연출한다.

그래서인지 우리 사회는 어느 때보다 ‘힘’에 대한 열망이 커지고 있다. 중국의 부상과 일본의 우경화에 자극을 받아, 폐쇄적이고 공격적인 민족주의와 전체주의적이고 폭압적인 집단주의의 위험이 곳곳에서 감지된다. 그리고 1494년 메디치 가문이 추방된 이후 자기만이 나라를 구할 수 있다고 말하던 대중 정치인들의 무능력에 대한 마키아벨리의 조소를 일반 시민들의 얼굴에서도 쉽게 발견할 수 있다.39 ‘힘’에 대한 열정은 있지만,‘힘’이 필요한 이유와 ‘힘’을 갖출 방도를 알지 못했던 피렌체의 혼란을 되돌아보게 만드는 것이다. 


[곽준혁, 마키아벨리 다시 읽기-비지배를 꿈꾸는 현실주의자, 민음사, 2014.pp.59-60.]




- 그렇다면,

박근혜는 메디치 가문의 적자일까?

그리고, 한국의 사보나롤라는 누구일까? ㅠㅠ 


1494년의 피렌체는 대한민국의 미래인가?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한국의 마키아벨리인가? 
by 파리13구 | 2016/05/02 12:06 | Le monde | 트랙백 | 덧글(2)
마키아벨리,막스 베버 그리고 정치가의 소명?
마키아벨리,"이탈리아는 위기다!"

마키아벨리가 한국정치를 보았다면?

아마도 마키아벨리는 한국에서 이상주의와 현실주의의 오해에 대해 문제제기를 했을 것이라 본다.

마키아벨리는 정치적 현실주의자라고 평가를 받지만, 수많은 그의 관련 글에서 "마키아벨리의 꿈"이란 표현이 나온다. 심지어 "마키아벨리의 꿈"이란 제목의 논문도 있을 정도이다.

현실주의자도 꿈을 꿀 권리가 있을까? 그렇다면 현실주의자가 꾸는 꿈이란 현실주의인가, 이상주의인가?

곽준혁의 지적처럼, 희망없는, 꿈없는 현실주의는 잔인하다.

따라서, 마키아벨리가 한국 정치를 보았다면, 그는 다음과 같이 발언했을 것이다.

‘보수는 꿈이 없고, 진보는 삶을 모른다’

이러한 문제제기는 막스베버도 동의했을 것이다.

최장집이 지적한 베버 정치철학의 핵심이, “신념윤리와 책임윤리의 변증법적 결합"이라면, 이는 꿈을 잃은 보수와 삶을 외면한 진보를 위한 정치철학적 처방이라 할 수 있다. 

신념윤리는 정치가 스스로 가지는 내면적 신념, 곧 가치 그 자체라고 할 수 있다. 이와 달리 책임윤리는 그러한 신념을 현실 속에서 이행해야 할 책무를 가리킨다. 베버는 이 두 가지는 따로 떨어질 수 없으며, 서로 끊임없이 변증법적인 영향을 주고받는 이율배반적 구조를 이룬다고 봤다. 곧 자신의 가치와 신념에 충실하되, 현실을 그대로 인지하는 사실적 접근을 통해 긍정적인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것이 정치가의 소명이라는 것이다.

결국, 마키아벨리와 막스 베버가 주장하는 정치가의 소명이란,

정치가 현실주의냐, 이상주의냐의 문제가 아니라, 이상과 현실 혹은 현실과 이상간의 조화가 아닐까?
by 파리13구 | 2016/05/02 11:16 | Le monde | 트랙백 | 덧글(5)


< 이전페이지 다음페이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