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지사항 및 방명록 - 2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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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리13구 | 2016/12/31 04:54 | 나의 즐거운 일기 | 트랙백 | 덧글(99)
1950년 4월의 한미관계...
다음은 1950년 4월 9일의 경향신문 1면이다. 당시의 한미관계를 엿볼수 있다.   



미국, 한국에 대한 중대 경고- 소위 애치슨 공한의 내용

경향신문 
1950년 4월 9일

-인플레와 선거 개혁하지 않으면 원조삭감

[워싱턴 4월 7일 발]

7일 미국은 한국정부에 대하여 정치적 재정적 개혁을 할 것과 그렇지 못한 경우에 미국원조를 삭감할 가능성에 당면하게 된다는 것을 경고했다.

미국 국무부에 따르면, 애치슨 국무부장관은 3일 주미 한국대사 장면에게 전달한 서한에서, 한국사태에 관하여 다음과 같은 2개 안건에 대해서 심심한 우려를 하고 있다고 표명했다는 것이다.

애치슨이 장면 대사에게 전달한 문서에서, 이 중요한 문제에 관하여 협의코자 무쵸 대사를 소환하고 있다는 뜻을 이승만 대통령에게 통고했다고 한다. 

이 문서에서, 애치슨은 대한민국 국무총리가 지난 달에 주한 ECA 사절단장에게, 한국의 인플레이션 문제는 그대 중대한 것이 아니며, 오히려 디플레이션 위기에 직면해 있다고 말한 것에 대하여 비난하고, 이와 같은 발언 국무총리가 사태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지 못하고 있으며, 한국에게 필요한 긴급 조치를 단행할 의사가 없음을 증명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서 애치슨 장관은 만약 한국이 통화유통량을 감소시키고, 재정을 균형하며, 물가등귀를 억제하지 못한다면, 인플레이션 때문에 ECA원조금을 유효하게 사용할 기회를 상실하게 될 것이라 말했다.

애츠슨 장관은 또한 대한민국 정부가 예산을 고려함 없이 낭비를 하며, 세금징수를 태만히하고 있다고 비난했고, 당초 5월에 예정된 총선거를 12월로 연기하기로 한 정부측 제안에 대해서도 비난했다.

애치슨 장관은 미국의 대한원조는 현실과 대한민국에서의 민주주의 제도 발전에 입각해 있다는 점을 상기시키고, 선거를 원안대로 실시하는 것은 인플레이션을 방지하는 조치를 취하는 것 못지않게 긴급한 것이라 발언했다.

서한의 골자

1) 하등의 통제 기도없이 증대되어가는 인플레이션
2) 한국 헌법에 규정된 자유민주주의 선거의 연기

by 파리13구 | 2016/02/08 04:22 | Le monde | 트랙백 | 덧글(2)
루스벨트,"정책은 과거를 통해 미래를 전망하는 것이다"
키신저의 경고...

미국의 프랭클린 루스벨트는 외교정책의 선택은 과거와의 대화를 통해 미래를 전망하는 것이라 생각했을까? 정책결정자가 정책을 선택할때, 그의 마음 속에서 과거와 미래는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 것일까?

다음 사례를 보면, 과거를 보면 미래를 전망할 수 있다는 대통령의 단순한 역사관이 현재의 정책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를 보여준다. 과거와의 대화를 통한 미래의 전망이 현재의 정책의 선택에 영향을 준다는 것이다. 

어니스트 메이에 따르면, 제2차세계대전 말에 미국의 프랭클린 루스벨트가 유럽에서 스탈린에게 유화적이었고, 양보하는 태도로 나온 것은 이유가 있었다. 그것은 바로 제1차세계대전 이후 미국에서 있었던 일이 가까운 장래에도 반복될 것이란 인식에 루스벨트가 도달했다는 것이다. 즉 미국의 고립주의와 평화주의 경향이 종전과 더불어 부활 것이란 예상이었다. 이렇게 과거에 그랬던 것처럼 미래도 진행될 것이란 인식의 결과가 스탈린에 대한 루스벨트의 유화적 정책으로 귀결된 것이었다.

루스벨트는 제2차세계대전 이후의 미국 여론이 제1차세계대전 이후의 경향과 유사할 것이라 전망했다. 그는 의회에서의 고립주의와 평화주의의 힘을 알고 있었고, 1930년대 미국 여론에서 고립주의와 평화주의 성향이 강했음도 알았다. 나치의 위협이 증가하는 상황에서도 미국의회는 더 강한 중립법을 통과시켰을 뿐이었다. 심지어 프랑스가 독일에 함락당한 후에도, 루스벨트는 영국을 돕는데 어려움을 겪었다. 그리고 1941년말까지 미국 하원은 성인 남성에 대한 징병에 딴지를 걸었다. 

이런 경험을 통해서, 루스벨트는 제2차세계대전이 끝나고, 일단 평화가 찾아오면, 미국내의 고립주의,평화주의 세력이 다시 기승을 부릴 것이라 예상했다.

루스벨트는 1945년 2월에서 처칠과 스탈린을 얄타에서 만났을때 이 전망을 분명히 이야기했다. 미국이 종전 이후 미군의 유럽주둔을 2년 이상 하지 못할 것이라고 말이다. 

그가 왜 이런 틀린 전망을 하게 된 것일까? 그것은 바로 루스벨트가 다음과 같은 사람들을 염두에 두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이램 존슨 hiram johnson, 그는 1919년에도 윌슨의 전후평화 구상에 딴지를 걸었던 자인데 여전히 상원의 외교관계 위원회의 고참 의원이었다. 그리고 중립법을 주창한 상원의원 제럴드 나이도 건재했다. 특히 무기대여법에 끝까지 반대한 오하이오 주의 로버트 태프트 의원이 1944년 대선에서 공화당 예비 후보군이었다. 

뿐만아니라, 워싱턴 타임즈 해럴드, 뉴욕 데일리 뉴스, 시카고 트리뷴 같은 언론도 존슨,나이,태프트와 한 목소리를 냈고, 독자가 1000만명에 달했다. 

이러한 국내 상황을 고려한 루스벨트는 미국 의회가 유럽에서의 철군을 결의할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또한 루스벨트 스스로도 조기 철군을 희망했다. 미국 합참의장과의 회동에서, 루스벨트는 "우리가 유럽에 세력권을 만들어 발목을 잡히면 안됩니다"라고 강조한 적이 있었다. 

따라서, 루스벨트에게 가장 그럴듯하게 보였던 미래는 유럽에서의 미군의 조기 철군이었다. 이렇게 유럽에 대한 미국의 전후 공약은, 미래는 얼마전의 과거에 있었던 것처럼 똑같이 진행될 것이란 예상에 기초했다.


Ernest R. May, "Lessons" of the Past: The Use and Misuse of History in American Foreign Policy, (New York: Oxford University Press, 1973).pp.14-15.   
by 파리13구 | 2016/02/06 03:55 | Le monde | 트랙백 | 덧글(0)
1812년 미영전쟁과 제1차세계대전의 관계는?
키신저의 경고...

[역사적 유추]

대외적 위기에 직면한 대통령은 대응 정책을 결정하면서, 과거의 사건으로부터 교훈을 얻는다. 이를 역사적 유추라 부른다. 그런데, 이 역사적 유추가 항상 좋은 결과만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황당한 유추도 존재한다.

그 사례 중 하나가 미국 우드로 윌슨의 1812년의 미영 전쟁에 대한 교훈이었다. 미-영 전쟁 (미국: War of 1812, 영국: American War of 1812 to 1815)은 1812년 6월 18일에 미국이 영국에 선전 포고를 하면서 발발한 32개월(2년 8개월) 간의 충돌이다. 당시 미국 대통령이 제임스 매디슨이었다.

윌슨은 제1차세계대전초에 미국의 해상권을 두고 영국과 충돌이 발생하자, 당시와 1812년간의 연관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고 한다. "매디슨과 나는 대통령이 된 유일한 2명의 프린스턴 대학 졸업생이다. 1812년 전쟁 당시 상황과 현재의 그것이 유사하다. 나는 영국이 더 막나가지 않았으면 희망한다."

이런 인식하에 윌슨은 신중하게 행동했다고 한다.

May, Ernest R., "Lessons" of the Past: The Use and Misuse of History in American Foreign Policy, (New York: Oxford University Press, 1973). p.ix.

by 파리13구 | 2016/02/05 17:20 | Le monde | 트랙백 | 덧글(0)
막스 베버,"정치가란?”
키신저의 경고...

 -정치란 열정과 균형적 판단 둘 다를 가지고 단단한 널빤지를 강하게 그리고 서서히 구멍 뚫는 작업이다. 만약 이 세상에서 불가능한 것을 이루고자 몇 번이고 되풀이해 노력하는 사 람들이 없었다면,아마 가능한 것마저도 성취하지 못했을 거라는 말은 전적으로 옳고 모든 역사적 경험에 의해 증명된 사실이다.
  
그러나 이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은 지도자이면서 또한 말 그대로의 의미에서 영웅일 수밖에 없다. 지도자나 영웅은 아니라 해도 모든 희망이 깨져도 이겨 낼 수 있을 정도로 단단한 의지를 갖추어야 한다. 지금에라도 그래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들은 오늘날 아직 남아 있는 가능한 것마저도 성취해 내지 못할 것이다.
 
 자신이 제공하려는 것에 비해 세상이 너무나 어리석고 비열해 보일지라도 이에 좌절하지 않을 자신이 있는 사람,그리고 그 어떤 상황에 대해서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라고 말할 확신을 가진 사람,이런 사람만이 정치에 대한 ’소명’을 가지고 있다. 


막스 베버, 최장집 (엮음) ,박상훈 옮김, 막스 베버 소명으로서의 정치 최장집 교수의 정치철학 강의 1, 후마니타스,2013. p.231.

by 파리13구 | 2016/02/05 14:50 | Le monde | 트랙백 | 덧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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