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지사항 및 방명록 - 2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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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리13구 | 2014/12/31 14:56 | 나의 즐거운 일기 | 트랙백 | 덧글(95)
"헌법재판소가 민주주의를 파괴할까?"
"대선이 네거티브로 흐르는 이유는?"

헌재의 반다수결주의를 바라보는 입장들은?

헌법재판소가 중요한 판결을 내릴때마다 보수와 진보가 첨예한 각을 세운다. 이번 헌재의 통진당 해산 및 소속 의원의 의원직 박탈 결정도 마찬가지다. 특히 이번 판결에 대해서 일부 진보는 헌재가 민주주의를 파괴했으며, 따라서 헌재를 해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최장집에 따르면, 헌법의 기본목적은 민주주의의 대표성과 민주주의적 가치를 제약하는 것이다. 헌법에 기초한 민주주의, 즉 헌정적 민주주의란 민주주의의 다수결주의에 대한 제한이며, 민주적으로 이루어진 의사결정을 헌정적 제약에 종속시키는 것이다.

헌재가 민주주의적 다수결주의를 제한할 수 있다는 것을 소위 <반다수결주의 문제>라 부른다.

비켈에 따르면 "사법심사가 우리의 체제에서 반다수결주의적 힘이라는 것은 근본적인 난제이다. 연방대법원은 입법부의 활동 혹은 선출된 행정부의 행동을 위헌적이라 선언할 때, 실제로 인민의 대표들의 의사를 좌절시키는 것이 된다. 그것이 바로 사법심사(헌법재판)이 비민주주적이라는 주장이 제기되는 이유이다."

헌재 위헌심판의 반다수결주의 문제를 어떻게 볼 것인가? 여기서 민주주의와 헌정주의가 충돌함을 볼수 있다. 민주주의의 다수결주의와 인민의 자기결정권을 강조하는 입장은 사회문제의 과도한 사법화에 대한 공포로 인해 제왕적 사법부의 등장 가능성과 민주주의 축소를 주장한다. 반면, 입헌주의 강조파는 민주주의 다수결이라도 틀릴수도 있다는 것과 전제적 다수의 횡포에 대한 사법적 견제장치가 필요하고, 이것이 바로 헌재의 위헌심판이라 주장한다. 

민주주의에서 헌법재판소의 역할에 대해서, 월린은 전자의 입장을 민주적 헌정주의 democratic constitutionalism로, 후자를 헌정적 민주주의 constituional democracy 로 규정했다.

전자의 대표적인 예는 기원전 5세기, 기원전 4세기의 아테네 민주주의였다. 고대 그리스 아테네의 민주적 헌정주의는 시민의 높은 정치참여가 보장되었고, 인민주권과 자치정부 원리에 보다 충실했다. 반면, 후자인 헌정적 민주주의는 법치주의가 강조되고 정치생활이 제도화되고, 보다 안정적이라 주장되었다. 

이렇게 민주적 헌정주의적 관점에서 헌재의 반다수결주의는 민주주의에 반하는 것이다. 하지만, 헌정적 민주주의 관점에서 보자면, 헌재의 반다수결주의는 다수결의 횡포에 대한 사법적 보호장치인 것이다. 

이상과 같이 원리적을 볼때, 헌법의 기본 목적은 민주주의의 대표성과 민주주의적 가치를 제약하는 것이며, 헌재가 반다수결주의를 따른다고 할때, 

민주적 헌정주의자가 헌재에 대해서 "반-민주주의"로 비판하는 것은 오해의 소지가 있다. 민주주의에 대한 비판과 견제가 헌법과 헌재의 사명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른 한편, 최장집의 주장처럼 "헌법은 민주주의를 정초하는 제도적 토대이지만, 민주주의가 헌법에 의존하면 할수록 부정적인 효과가 커진다."는 것도 사실이다.

헌법재판소의 이번 판결로 민주주의와 헌정주의간의 충돌을 더욱 심각하게 만들 가능성이 있다.

민주사회에서 헌법재판소의 역할은 어떤 것인가? 어떤 헌법재판소가 민주주의와 헌정주의간의 조화인가를 고민할 때다.  

특히 헌재의 민주주의 견제를 헌재의 반-민주주의적로 오해해서는 안된다. 헌재의 견제가 민주주의자의 상식과 조화되는지 여부가 문제해결의 실마리가 아닐까?

마지막으로 대한민국 헌법재판소는 87년 민주화운동의 산물임을 민주주의자가 잊어서는 안된다. 
by 파리13구 | 2014/12/19 14:43 | Le monde | 트랙백 | 덧글(9)
이정희와 박근혜...
"대선이 네거티브로 흐르는 이유는?"

이정희와 박근혜...

오늘은 박근혜 대통령 대선 승리 2주년 기념일이다.

그런데, 우연이지만, 바로 오늘 헌법재판소는 통합진보당에 대한 해산 및 소속 의원의 의원직 상실을 명령했다.

2년전 대선후보 텔레비전 토론을 떠올리게 되었다.

그 토론에서 이정희는 왜 대선에 출마했냐는 박근혜 후보의 질문에 대해서, "당신을 떨어트리기 위해서 나왔다"고 말했다.

그로부터 2년 정도가 지난 지금, 이정희의 통합진보당은 해산의 운명을 맞이하게 되었다. 

아무튼, 당시에 박근혜를 떨어트린다고 대중앞에서 공언했던 이정희는 오늘 지옥을 경험했다.  

박근혜는 무서운 여자다. 

오늘 당선 2주년을 맞은 박근혜는 이정희의 통진당 해산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까?

사필귀정? 

반대로 이정희는 어떤 생각을할까?

정치보복?


by 파리13구 | 2014/12/19 11:37 | Le monde | 트랙백 | 덧글(6)
운명의 역사가 있을까?
비르투 virtu


[운명]
[결정론][자유의지]

운명은 결정된 것인가 아니면 운명은 인간의 개척대상인가?

운명에 역사가 있는가? 아니 정확히 말한다면 운명에 대한 사람들의 생각은 변해왔을까? 

만일 우리가 위대함을 달성하기 위한 노력에 실패한다면 그 잘못은 누구에게 있는가?

셰익스피어의 줄리어스 시저를 보면, 카시우스가 브루투스에게 다음과 같이 말한다.

잘못은 "우리의 별들이 아니라 우리 자신에게 있다."

위대하지 못한 인간의 잘못을 점성술 처럼 태어날 당시의 별의 위치에 물을 수 없다는 것이다.

운명론에도 역사는 있다.

운명은 결정되었는가 아니면 인간은 운명을 개척할 수 있는가?

특히 전자와 관련되어, 운명결정론을 설파한 책이 바로 보에티우스의 <<철학의 위안>>이다. 

보에티우스 이전의 운명에 대한 로마인 고전적 해석은 인간이 운명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이러한 운명개척론 분위기에서, 보에티우스는 운명을 다르게 정의했다. 그에 따르면, 운명의 여신은 "눈먼 힘"으로 자신의 선물을 완전히 무심하게 무차별적으로 나눠준다. 여신은 잠재적인 친구가 아니라 단지 무자비한 힘이다. 운명의 여신의 상징은 조수의 밀물과 썰물 처럼 멈출 수 없이 돌아가는 변화의 수레바퀴다.

기독교 승리 이후의 중세적 운명결정론은 여신은 은혜를 베풀 때 인간의 장점에 매우 무관심하고 부주의함으로써, 운명의 재화가 전혀 추구할 가치가 없다고 가르쳤다. 세속적 명예와 영광에 대한 욕망은 실로 완전히 무의미한 것이었다. 

보에티우스에 따르면, 운명은, 운명의 여신의 변덕스러운 전횡에도 불구하고, 신의 자비로운 섭리를 따르는, 신의 보조자다. 왜냐하면, "행복이 지상의 유한한 삶에서 나타나는 우연적인 것들에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로 하여금 모든 세속적인 일을 경멸하고 속세에서 해방되어 천상의 환희 속에서 크게 기뻐하도록 하는 것이 신의 계획의 일부이다. 

보에티우스는 바로 이러한 이유로 신이 이 세상의 재화에 대한 통제권을 무책임한 운명의 손에 맡겼다는 것이다. 즉 신의 목표는 충족함은 부를 통해 얻을 수 없고, 권력을 왕위를 통해 얻을 수 없고, 존경은 지위를 통해 얻을 수 없고, 명성은 영광을 통해 얻을 수 없다는 것을 우리에게 가르치는 것이다.

운명은 신의 섭리란 명제는 단테와 페트라르카에게 영향을 주었다.

운명은 신의 섭리이고, 운명은 신의 보조자라는 중세적 해석이 도전받은 것은 바로 르네상스 시대때 였다.   
by 파리13구 | 2014/12/17 16:43 | Le monde | 트랙백(1) | 덧글(1)
비르투 virtu
[마키아벨리]
[비르투]

비르투는 라틴어 virtus에서 유래했다. 이 단어는 남성을 의미하는 vir에서 유래했다.

마키아벨리는 비르투를 다음 의미로 사용했다고 한다.

간혹 이 단어는 악덕 vice에 대응하는 것으로 미덕을 의미하며,

많은 경우에 역량, 능력, 기술, 활력, 결단력, 힘, 기백, 용기, 용감함, 용맹, 무훈 등을 뜻한다. 

이렇게 비르투가 지칭하는 대부분의 성품은 남성이 갖추기에 적당한 것이다. 

마키아벨리에게 비르투란 어떤 자질, 즉 군주로 하여금 운명의 일격을 견뎌낼 수 있게 하며, 운명의 여신에게 환심을 사게 하며, 자기 자신을 위해서는 명예와 영광을, 그리고 정부를 위해서는 안전을 확보함으로써 군주다운 명성의 정점에 오르게 하는 자질로 다루고 있다. 
by 파리13구 | 2014/12/17 10:48 | Le monde | 트랙백(1) | 덧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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