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지사항 및 방명록 - 2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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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리13구 | 2014/12/31 14:56 | 나의 즐거운 일기 | 트랙백 | 덧글(93)
"누구에게 나치식 경례를 할 자격이 있는가?"
독일과 소련의 폴란드 침공-1939년 9월...


[독일]
[폴란드 점령]




제2차 세계대전 동안의 나치의 점령정책의 특징은 혼란,모순,일관성의 결여라 할 수 있다.

가령, 옛 폴란드에서 나치 경례가 좋은 예가 된다.

나치는 폴란드인에게 나치 경례를 강요했을까?

몇몇 지역에서 폴란드인들은 독일 장교가 지나갈때 나치 경례를 해야만 했다. 

하지만 다른 지역에서 폴란드인이 경례를 하는 것이 금지되었다. 나치 관료의 논리는 다음과 같은 것이었다. 즉 나치 경례가 독일인의 특권이자, 벨기에,네덜란드,노르웨이 같은 동료 게르만 인종의 특권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폴란드,체코,우크라이나 같은 하등 인종은 경례할 자격이 없다는 것이었다.

결국 나치 점령당국은 경례를 의무로 만들 수 없었다. 나치는 이 문제에 개입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그 결과는 혼란을 더욱 가중시킬 뿐이었다.


- 출처

Mark Mazower, Hitler's Empire: How the Nazis Ruled Europe, 93쪽


- 폴란드인에게 나치 경례의 자격이 있는지에 대한 문제에 대한 나치의 공식 원칙도 부재한 나치 독일 당국에게 

일관된 점령 정책을 기대하기는 무리였다고 생각한다. 
by 파리13구 | 2014/08/20 16:53 | Le monde | 트랙백 | 덧글(0)
폴란드인에 대한 나치 독일의 정책을 보니...
독일과 소련의 폴란드 침공-1939년 9월...


[제2차 세계대전]
[독일][폴란드]
[점령정책]



제2차세계대전의 역사에서,

폴란드 침공은 1939년 9월 1일 나치 독일군과 동맹국 슬로바키아군 및 추가로 9월 17일 소련군이 폴란드 영내에 무력 침공한 사건을 말한다.

위의 지도에서 볼 수 있듯이 폴란드는 독일과 소련에 의해 분할점령되었다. 그리고 독일 점령지는 폴란드 서부와 폴란드 총독부로 분할되었다. 전자는 독일제국에 편입되었다.


점령된 옛 폴란드에서 나치 독일은 다음과 같은 폴란드인 대책을 수립했다고 한다.


폴란드인들은 2등시민으로 간주되었다. 그들은 공공 해변, 수영장, 공원을 이용하는 것이 금지되었다. 그들의 대학은 폐쇄되었고, 정치,문화 조직들은 해산되었다. 그들의 옛 도서관들과 미술관이 체계적으로 약탈당했고, 소장품들은 독일로 운송되었다. 

군복을 입는 것이 금지되었고, 심지어 교복도 금지되었다. 그들은 정류장의 뒤쪽을 이용해야만 했고, 버스와 기차에서도 그래야 했으며, 필요시에 독일인에게 자리를 양보하기 위해서 서서 가야만 했다.   

성인은 제복을 입은 독일인에게 경례를 해야했고, 만약 그것을 하지 않으면 두들겨 맞았다. 그들은 독일 장교가 지나갈때 고개를 숙여야했고, 장교들이 지나갈때 길을 비켜야 했다. 

상점주인들은 독일 손님을 먼저 응대해야만 했고, 폴란드인들은 제한된 시간에만 상점을 이용할 수 있었다. 

폴란드인들에게는 독일인 보다 적은 식량이 배급되었다. 물론 폴란드인이 유대인 보다는 약간 더 받았다. 

초콜렛이 금지되었고, 우유는 독일 어린이만을 위한 것이었다. 독일 당국은 열등한 인종에게는 음식이 덜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심지어 폴란드 아동들은 독일의 동화 영화를 보는 것도 금지되었다. 폴란드 아동에게 독일적인 감정 가치를 전달하는 것이 심각한 문제를 야기할 수 있기 때문이라는 이유 때문이었다.



-출처

Mark Mazower, Hitler's Empire: How the Nazis Ruled Europe, 92-93쪽
by 파리13구 | 2014/08/20 16:20 | Le monde | 트랙백 | 덧글(0)
16세기 독일의 한 흉악범 전단...
중세 유럽의 수배전단?


[흉악범]
[신상공개]




한국의 경우에도 일부 흉악범의 얼굴을 포함한 신상을 공개할 것인지가 논점이지만,

흉악범 얼굴을 대중에게 공개하는 전통은 16세기 독일의 마인츠에서도 확인된다.



다음은 1540년 마인츠에서 공개된 유아 살해범 한젠 폰 베르슈타트의 그림이다.

이는 수배전단인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 그림은 범인을 잡기 위한 수배전단이 아니다. 

세인의 이목을 집중시킨 흉악 범죄를 세상에 널리 알리기 위해, 범인을 처형한 이후에, 이 놈이 바로 그 놈이라는 것을 알리기 위해 곳곳에 내건 전단이었다. 상당한 양이 배포되었다.

이는 없는 놈을 잡아달라는 호소가 아니라, 이미 체포해서 처형한 다음에 갖은 욕설을 퍼붓기 위해서 만들어진 그림이다. 



-참고

그뢰브너, 너는 누구냐?, 123쪽
by 파리13구 | 2014/08/18 17:32 | Le monde | 트랙백 | 덧글(1)
중세 유럽의 수배전단?

[신분]
[신분증]
[수배전단]



2014년 대한민국을 뜨겁게 달군 유령사냥의 대상이 유병언이었다는 것은 주지하는 바와 같다. 

박근혜 대통령을 비롯한 많은 한국인들이 유병언 사냥에 나섰지만, 그것이 한창일 동안 그는 이미 사망한 상태였던 것이다. 

한국의 사법 당국은 심지어 유병언 수배전단 배포를 위한 임시반상회를 개최할 정도로 열성적이었지만, 결국 그를 산채로 검거하는 것은 이미 불가능한 일이었다. 따라서 온국민이 유령사냥을 했던 것이었다.


수배전단에도 역사가 있을까?

오늘날 한국의 수배전단은 이미지 중심이고, 신체적 특징을 구체적으로 묘사하는데 중점을 두고 있지만, 

수배전단 초창기의 역사에서, 특히 14세기초 유럽의 수배전단은 다음과 같은 특징을 가지고 있었고, 이것이 바로 현재와 과거간의 차이를 드러낸다고 생각된다. 



발렌틴 그뢰브너의 너는 누구냐?에 따르면 다음과 같다.


(수배전단의)초기 형태에서 도시가 발행한 추방당한 사람들 명단이든, 종교 재판관이 유포한 이단자들 명단이든, 모두 이름만 달랑 적어 넣은 것에 지나지 않았다.

1309년, 종교재판관 베르나르 기가 프랑스 남부에서 카타르파의 페트루스 아우테리와 그의 추종자 2인을 찾기 위해 배포한 일반 서한은 수배 중인 이단자를 잡는 데 결정적인 단서를 제공한 사람에게 신이 내리는 영원한 은총과 함께 현세에서의 적절한 보상도 약속하고 있다. 하지만 보상을 바라는 사람을 난처하게 만드는 것은 수배 전단에 적힌 이름 외에 아무것도 적혀있지 않다는 사실이다. 그저 "어둠 속에 숨어 암약하고 있다"는 썰렁한 설명 뿐이었다.

1311년 9월 피렌체가 발표한추방자 명단도 썰렁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쌀토 가문 출신은 전부" 라든가, "미켈레 베르티니 혹은 일명 카넬로와 그의 친척들" 같은 식이다.

1332년 뉘른베르크가 발행한 이단자 명단은 이름만 적혀있었다. "율리히 슐츠, 일명 베르더" "로이트빈 부인의 두 아들"

1333년 힐데스하임이 발행한 명단은 더욱 기괴하다. "한 무명의 남자"

더 엉뚱한 것은 1380년 쾰른의 수배 전단이었다.


"혹시 체르시트 라고 아는 사람?"
by 파리13구 | 2014/08/18 16:25 | Le monde | 트랙백(1) | 덧글(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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